문형상 컬럼리스트

독불장군은 결국 외롭다. 힘을 가지고 있을 때는 어쨌든 우러름 받고 따르는 사람도 있지만, 껍데기가 되었을 때는 누구하나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있을 때 잘해 라는 말이 맞다. 그러나 이것은 사적 영역이고, 공적으로 봤을 때는 심각한 사태가 초래된다. 자기의 판단이 옳고 자신의 행동만이 정의롭다고 여긴다. 자칫 길이 아닌 곳으로 향하고 필연적으로 부패를 동반한다. 본인은 청렴결백일지 모르지만 주변에서 그렇게 구렁텅이로 몰아가고, 결국 살갗에서 뼈까지 썩어 들어가게 되어 있다.

도둑질도 아는 사람이 한다고 했다. 남의 집 담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그 집의 구조는 물론 누가, 몇 명이 살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무작정 문을 부수고 침입한다면 십중팔구 낭패 볼 수밖에 없다. 도둑질 기술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부정부패도 연이 닿고 내부사정을 알아야 해먹는다는 말이다. 요즘 사회의 화두가 ‘김영란법’이다. 그러나 한 가지 놓친 게 있다. 공직자의 직권남용과 직무유기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해주고, 되는 것을 안 되게 하는 것만이 직권남용이 아니다.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문어발처럼 늘어나는 조직 확대와 이에 따른 방대한 예산집행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직권남용이다. 이를 견제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가진 집단이 지방의회이다. 그래서 법에 따라 주민들이 직접 선출하며 아낌없이 시민의 세금을 그들에게 세비로 지급한다. 그런데 문제는 알아야 도둑질을 하는 법, 예산서 하나 들여다 볼 줄 모른다면 무슨 재주로 주어진 고유권한을 행사할 수 있겠는가. 몰라 침묵하는 것은 바보취급 당하는 것으로 끝낼 일이지만, 알고도 입을 다무는 것은 직무유기를 넘어 범죄행위다.

요즘 공직자들이 술 밥 얻어먹고 관련된 업자의 편의를 봐준다거나 불법을 눈감아 주는 경우는 아주 극소수, 아니 없다고 본다. 그 정도로 공직자들이 형편없지는 않다. 특히 지역사회일수록 민원인과의 검은 밀착은 요원하다. 한 치만 건너도 이 사람 저사람 서로 연결된 관계로 특정인만을 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노릇이다. 그런 이들에게 예비 범죄자 취급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비애가 들 수도 있다. 잔챙이 도둑은 차라리 귀엽기라도 하다.

정말로 우리가 두 눈 부릅뜨고 감시를 해야 하는 대상은 시민의 세금을 개인의 쌈짓돈쯤으로 여기고 생색내기를 일삼는 독불장군들이다. 그 독불장군은 스스로 외로워지기 전까지는 이 같은 행위를 늦추지도 멈추지도 않는다. 게다가 그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자리에 있을 때 신세를 진 사람에게 상응하는 호의를 베풀고, 자신의 앞날을 위해 자리 만들어 주기 하는 것은 생색내기의 선을 넘는 행위다. 이쯤 되면 생색내기도 차라리 귀여운 행태다. 초록은 동색이고 가재는 게 편이라고 이를 방관하는 집단도 독불장군의 호위병쯤으로 치부한다면 과한 얘기일까.

때문에 먹고 사는 데에 바쁘다는 핑계로, 일용할 양식의 절실함으로 사회에 대한 무관심은 무형유형의 재앙을 불러온다. 누구를 막론하고 그 재앙을 비켜갈 수는 없다. 정치행위는 우리네 생활 구석구석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사회정의는 다음의 문제이다. 나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손해를 입히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쌍심지를 켜야 한다. 아는 자들이 아는 자들끼리 모여 북 치고 장구 치며 사는 당신들의 천국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시민을 졸로 보는 독불장군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괴물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견제와 협력의 세 축인 의회와 언론, 시민단체의 존재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 축들이 권력에 밀착되고 또 다른 권력기관으로 전락한 사회는 끔찍하다. 고독한 독불장군을 끝임 없이 양산할 것이며, 독불장군이 설치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분란과 갈등을 야기한다. 웃는 자가 있으면 우는 자도 있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지만, 최소한 공정한 기회는 누구나에게 주어져야 한다. 아울러 배부르고 등 따스한 사람에게는 불멸의 영역이고, 가진 것 없는 민초들에게는 빈 하늘만 쳐다보게 해서는 곤란하다.

 

 

 

저작권자 © 서산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