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푸른들영농조합 정진구 상무

최미향 기자l승인2019.07.10l수정2019.07.1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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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 좋은 서산의 콩을 사용해 만든 두부

“진정한 로컬푸드는 생산자에서 최종 소비자까지 로컬이어야”

 

▲ 푸른들영농조합 정진구 상무

 

 

<프롤로그>

고려 말기의 성리학자 이색은 “나물죽도 오래 먹으니 맛이 없는데, 두부가 새로운 맛을 돋우어 주어 늙은 몸이 양생하기 더없이 좋다”는 구절을 쓴 바 있다. 문헌에 나올 만큼 ‘역사담은 두부’를 만드는 푸른들영농조합 정진구 상무.

한국농업벤처대학교 졸업식 날 그는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농산물 패션쇼를 했다. 그 자리에서 엘비스 프레슬리의 복장을 하고 나온 그는 겨드랑이에 직접 제배한 콩을 주렁주렁 달고 자신의 소망 하나를 사람들에게 외쳤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록의 황제! 정진구는 두부의 황제!”

그가 외치는 당당한 말은 그곳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과 동시에 박수를 받았다. 지금부터 정진구 대표의 ‘삶과 이야기’를 들으며 초여름 더위를 물리치기 바란다.

 

Q 어린 시절 얘기를 해 달라.

 

저희 부모님은 먹고 사는 것에 바빠서 주로 우리를 방목하셨어요. 당시는 뭐 다 그랬지 않아요? 장남인 제가 그 정도였으니 제 밑에 동생은 더했죠 뭐. 이것이 또 스스로 자생력을 키우는 원동력이 되었지만요.

제 고향은 서산입니다. 밑으로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우린 모두 서산에서 태어나서 서산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했어요.

저는 제가 생각해도 무지 내성적인 아이였던 거 같아요. 심지어는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말을 못해서 가질 못했으니까요. 한마디로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아이였죠. 그러다보니 집에서는 “우리 진구만큼 착한 아이는 드물다”는 말을 들었어요. 말썽이 뭔지도 몰랐어요. 그렇게 보이지 않아요?(웃음).

 

Q 학창시절에도 두부에 대한 관심이 있었나?

 

있었다면 제가 식품학과 쪽으로 선택했겠지요. 저는 전자 쪽 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부모님과 약간 신경전을 벌였어요. 저는 경북에 있는 ‘구미전자공고’를 진학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또 무늬가 장남인지라 어머니와 의견이 달랐습니다. 늘 옆에서 바라보고자 했죠. 그런데 장남이 그것도 인문계가 아니라 실업계(공고)를 선택했으니 두 분은 아주 큰 실망을 하셨죠.

입학시험을 보러 가는 전날, 서산에서 출발하는데 어머니가 글쎄 미역국을 끓여 주셨지 뭐예요. 그때는 멋도 모르고 맛있게 먹었는데 나중에 보니 제 발목을 잡기위한 수단이었어요. ‘미역국 먹고 떨어지라’는 뜻이었죠. 그런데 죄송하게도 턱하니 붙었으니 어머니의 실망이 얼마나 크셨겠어요(웃음).

 

Q 두부를 만들게 된 계기는?  

 

▲ AT에서 식품전시회 때 벤처농업대 동기인 한지일 씨와 함께

 

옛날에는 지금처럼 교육에 신경이나 썼나요. 그냥 10원 20원을 아끼기 위해 아등바등 생활고에만 매달린 분들이 우리 부모님 세대아니겠어요. 여름이면 (두부)양도 적고 사람 쓰기도 애매하니까 아버지는 저희 형제에게 부탁을 하시곤 하셨죠.

지금도 기억나는 건 중학교 때였는데 친구들과 만리포로 놀러가기로 이미 약속이 되어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날 일손이 부족한 거예요. 일단 저는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공장으로 나가 일을 거들었습니다. 어쩌면 이것들이 두부와 인연을 맺어 지금까지 이 자리에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는 영업을 해오시고 우리는 두부를 만들고. 나름 분업화된 직장이었지요(웃음).

 

Q 직업으로 뛰어들었는데?

 

가만 보니 벌써 20년 전 일이네요. 대학에선 전자를 전공했어요. 그러다보니 방학이면 인지 공장으로 내려와 기계 제어장치를 만지면서 두부 생산에도 관여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국방의 의무를 다 하고 사회로 복귀를 했어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학교를 다니고 여유가 있으면 그동안 했던 것처럼 아버지를 돕고...

어느날 졸업시즌이 되었고 취직을 하려고 알아보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아버지가 제게 차를 선물해 주셨어요. 얼마나 기뻤을지 상상이 가시나요? 시야가 탁 트인 큰 차, 그것은 바로 화물차였죠.

“이 차를 가지고 새벽시장에 두부납품해라!” 제가 앞에서도 말씀 드렸죠. 아주 착했다구요(웃음). 그날부터 지금까지 두부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Q 후회해 본 적 있나?

 

▲ 푸른들 제조시설

 

직장을 가진 사람들이 한번쯤은 다들 겪는 일 아닌가요? 저도 그랬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화물차가 왔고 저도 모르게 가업에 뛰어들었잖아요. 처음에는 아버지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좀 더 깊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부자지간에 함께 일하는데 부딪치는 면이 없겠어요? 특히 세대차이는 극복이 잘 안되더라고요.

30대 중반에 두부 만드는 일을 그만두고 뛰쳐나왔습니다. 그때 한 일이 학습지 방문교사였어요. 영어를 가르쳤죠. 안어울리죠?(웃음).

그러던 중 갑자기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셨습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공장으로 돌아왔고 그때부터 이날 이때까지 본격적으로 두부공장을 맡다시피 하면서 운영하고 있어요.

제가 들어와서 노후화된 인지공장 대신 식품안전이 대두되는 시점에서 양대동으로 이사를 했고, HACCP인증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천직으로 알고 일하고 있어요.

 

Q 가장 기뻤던 일은?

 

HACCP인증을 획득했던 일이예요. 부모님 때는 그냥 두부 만드는 일에만 전력 질주하셨지 시스템을 새롭게 정비한다는 것은 생각못하셨잖아요.

저는 우선 한국식품안전관리인증제도인 HACCP을 하기로 생각했어요. 마침 제도가 진행된다는 걸 알고 지원을 했습니다. 3개월 전부터 집중하여 서류를 보완하고 현장 정리를 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죠. 매일 땀범벅이었으니까요.

그 결과 HACCP인증을 단 한 번에 획득하였고, 그 기세를 몰아 전통식품인증까지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가 정말 너무 기뻤어요.

 

Q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 '사랑의집 나눔회' 회원들과 함께

 

저는 현재 서산 ‘사랑의 집 나눔’ 회원입니다. 특별한 기술이 없는 관계로 그곳에서 노동력을 제공하죠. 이 단체는 1년에 한 채씩 집을 지어 취약계층에게 제공합니다.

몇 해 전, 우리 직원 중 지적 장애인 남매의 집을 추천하여 입주하게 한 것이 가장 보람 있어요. 저희 직원들 중 3~4명은 반드시 장애인을 고용합니다. 그 중 안타까운 남매가 있었는데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장애인이셨어요. 그러니 사는 게 어땠을지는 안 봐도 아시겠죠?

저는 그것을 알고 ‘사랑의 집 나눔회’에 남매의 사정을 얘기했고, 그로부터 1년 후 드디어 입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그렇잖아요. 때로 다른 사람이 힘든 상황에 놓여있을 때, 이를 헤쳐 나가도록 도와주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자기에게 닥친 문제들도 동시에 풀리는 현상 같은 거요.

자신의 현실을 북돋워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일인 것 같습니다.

 

 

Q 속상한 일은?  

 

지금껏 제가 먼저 직원을 해고한 적은 없었어요. 그만큼 ‘한번 맺은 인연은 항상 소중하게 이어가자’고 하는 것이 제 주관이었죠. 그런데 근로자들 아주 일부분은 (일)잘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한마디 말도 없이 갑자기 결근하고... 그러다 며칠 지나 “그동안 일한 월급 달라”고 할 때입니다. 사전에 충분히 얘기하면 얼마든지 될 텐데.... 그땐 정말 힘이 쫙 빠져요.

 

 

 Q 힘들 때 극복 방법? 

 

▲ 식문화체험중인 정진구 상무

 

 제 인생의 신조가 뭔 줄 아세요? 바로 ‘아직 오지 않은 일에 미리 걱정하지 말자!’입니다. 그냥 ‘즐기자’ 뭐 이런 거죠.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두부인생 벌써 20년쨉니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왜 어려움이 없었겠습니까? 항상 따라다니는 인력난, 자금난, 특히 물건은 가져가고 대금을 안주는 일 등등.

이것은 비단 저 뿐만이 아니라 사업하시는 분들 대부분은 한번 쯤 당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요. 이런 것 보다 더 힘든 일이 있어요. 바로 ’암흑같이 긴 고통의 터널‘이 언제 끝날지 모를 때입니다. 끝을 모르잖아요. 그것이 어떤 종류든 간에 말이죠. 그래서 저는 무조건 부딪치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즐기죠. 이게 또 애매해서 처음엔 어려운데 하다보면 되더라고요(웃음)

 

Q 자녀들이 대를 잇겠다고 한다면?

 

▲ 보길도 가족여행

 

내 자녀가 한다면? 글쎄 생각 안해봤는데.... 사실 이 일은 남자도 하기 힘든 일이에요.

제게는 딸이 셋 있습니다. 막상 질문을 받고 보니 그 애들이 힘에 부칠 것 같아 망설여지기도 하네요.

그럼에도 원하면 잇도록 해야죠. 대신 그동안 제가 체계를 먼저 잡아놓고 애들은 그냥 와서 시스템만 점검할 정도? 뭐 그렇게만 된다면 물려줘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Q 서산시대 독자들에게 특별히 하고 싶은 말?

 

우리 서산에는 지역 농산물을 가공해서 만들어내는 제품, 즉 로컬푸드로 우수한 제품들이 많습니다. 장거리 운송을 거치지 않은 지역농산물이라 신선함은 물론 농민과 소비자에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로컬푸드의 실천은 생산자에서 최종소비자까지 로컬이여만 가능하다고 봅니다. 일반 소비자뿐만 아니라 기업·관·군 등의 관계자분들도 로컬푸드가 진짜 로컬이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에필로그>

부지런히 움직이는 만큼 기회의 문은 넓을 것이란 걸 안다.

멋진 꿈을 꾸는 그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보며 응원하겠다”는 말을 끝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최미향 기자  vmfms083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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