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생태수도 순천...람사르 습지 순천만을 가다

【기획】 천수만·가로림만의 생태관광 길을 찾다

 

▲ 순천만 습지 전경

 

잘 보전된 자연자원은 인근 주민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관광객에는 휴식의 공간을 제공한다. 개발되지 않은 상태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즐기는 ‘자연관광’이나 지역사회가 관광으로부터 정당한 이익을 얻도록 하는 ‘공정여행’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지역의 자연과 문화의 보전에 기여하고, 생태교육과 해설을 통해 참여자가 환경의 소중함을 느끼는 여행. 이것이 바로 생태관광이다. 이에 서산시에서는 천수만 부남호 역간척 및 가로림만국가해양정원 등 생태복원과 해양생태 관광거점을 조성하는 대형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시점에서 기획취재를 통해 전국 성공모델을 벤치마킹하고, 생태관광 우수프로그램을 점검함으로써 그 방향성을 찾고자 한다. - 편집자 주

 

겨울 초입 시베리아에서 서산 천수만을 중간 기착지로 도착한 흑두루미는 본격적인 추위가 몰려오면 좀 더 따뜻한 순천만으로, 그곳에서 영양보충을 한 다음 일본 이즈미시로 날아간다.

3월 봄이 시작되면 반대로 일본 이즈미시에서 추운 겨울을 보낸 흑두루미들이 순천만을 거쳐 천수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고향 시베리아로 힘찬 날개짓을 한다.

이처럼 흑두루미로 이어지는 서산시와 순천시의 관계는 형제의 도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흑두루미를 바라보는 양 도시의 시각은 전혀 다르다.

전남 순천시에서 흑두루미는 ‘보배’중의 ‘보배’다. 흑두루미는 7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순천시의 부의 원천이기도 대한민국 생태수도 순천을 만든 원천이기도 하다. 반면 서산시 천수만에서 흑두루미는 천덕꾸러기다. 일부 조류학자와 동물보호가, 그리고 환경단체의 관심대상일뿐 주민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한다. 먹이나누기 현장 출입금지 푯말은 훼손되기 일쑤다. 무엇이 이토록 엄청난 차이를 만들었을까? 순천국가정원 1층에 자리 잡은 순천시 지역공동체활성화센터 모세환 대표를 만나 그간의 여정을 들어 보았다.

 

1992년만 해도 순천만은 ‘버려진 땅’

골재 채취 반대 투쟁...생태적 가치 재인식 계기

 

▲ 갯벌이 살아 있는 천수만 갯벌. 거차마을 뻘배 체험장

 

1992년 만 해도 순천만은 ‘버려진 땅’이었다. 시의 무관심 속에 무단 투기한 쓰레기가 넘쳐났다. 순천시 동천하도 정비사업을 계기로 1993년부터 민간 업체의 골재 채취 사업이 시작됐다. 순천만 갯벌 약 1m 아래에는 미세한 모래가 쌓여 있는데, 순천시가 이를 채취할 수 있도록 허가를 내준 것이다. 골재 채취가 이뤄졌던 장소는 현재 순천만을 찾는 관광객이 가장 좋아하는 갈대숲 탐방로가 있는 곳이다.

마을 주민의 제보로 골재 채취 사실이 지역 시민·환경단체에 알려졌다. 이들은 환경영향평가 등을 요구하며 사업허가 취소를 촉구했고, 1996년 전문가가 최초로 생태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세계적으로 희귀한 철새와 다양한 염생식물의 존재가 보고되었고, 갈대숲이 갖는 정화기능이 알려지면서 순천만의 생태적 가치가 재조명받게 됐다. 순천만의 가치를 인식한 시민들은 순천만갈대제를 개최하였고 순천만살리기에 나섰다. 결국 1998년 순천시는 사업 허가를 취소하고 2년 뒤인 2000년 순천만자연생태공원 조성 사업에 착수했다.

이후 순천만의 역사는 새롭게 쓰여졌다. 2003년 1월 해양수산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 고시된 데 이어, 2006년 1월 국내 연안 습지 최초로 순천만 갯벌(28㎢)이 람사르 습지로 등록됐다. 이후 순천만은 한국관광공사 선정 국내 최우수 경관 감상형 관광지로 선정됐으며, 2008년 6월 국가 지정 명승 제41호로 이름을 올렸다.

순천시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순천만 주변 지역 7.73㎢을 생태계보존지구로 지정해 난개발을 막고, 생물 다양성을 위해 전봇대 282개도 뽑았다. 철새들의 먹이 활동을 감안해 매립지 농경지 둔치에 습지를 복원하고 무논 습지도 조성했다.

2015년 순천만과 맞닿은 동천 하구 일원의 습지 5.394㎢를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하고, 2016년 1월 람사르 습지로 등록했다. 이로써 순천시는 관내 2개 람사르 습지를 갖게 돼 연안~하구~논 습지로 이어지는 주요 생태축을 구축하게 되었다.

순천만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순천국가정원이다. 순천시는 2013년 4월 순천만에서 북쪽 약 4㎞ 지점에서 순천정원박람회를 개최했다. 해마다 증가하는 순천만 방문객을 도심으로 유도하기 위한 목적이기도 했다. 여수엑스포 개최를 계기로 다소 앞당긴 개최였지만 이는 순천만으로 밀려오는 개발 압력을 막아내는 저지선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제는 국가정원과 순천만 사이에 건물 짓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모세환 대표는 순천만살리기 성공요인에 대해 “순천시민들은 생태보전의 가치를 이미 알고 있었다. 지역사회 저변에 시민사회의식이 충전되어 있었다고 보면 된다. 순천의 힘, 동력은 시민, 곧 주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설명했다.

 

생태보전지구 지정 주민반대 극심 ‘험난한 여정’

공무원들의 헌신적인 설득과 희생은 촉진제

 

▲ 순천부읍성 서문안내소. 원도심 문화의 거리 갤러리 겸 안내소 역할을 수행한다.

 

순천만 조성이 처음부터 주민의 지지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순천만에서 어로 활동을 하거나 농사를 짓는 습지에 인접한 11곳 마을 주민 대부분은 2003년 순천시가 순천만 일대를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하려고 하자 갈대를 불태우며 강하게 반발했다. 2006년 람사르 습지에 등록할 때와 2009년 생태계보전지구를 지정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순천시는 주민과의 만남을 멈추지 않았다. 공청회를 열어 주민들을 설득했다. 환경단체에겐 주민과 행정 사이에서의 중재자 역할을 부탁했다. 공무원들의 헌신은 눈물겨웠다.

그동안 3명의 지자체장 모두 순천만 생태복원의 가치를 이어 실천했고, 생태계보존지구 지정에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사업설명회’ 대신 ‘사업설득회’라고 현수막을 걸게 한 간부직 공무원의 결단도 후일담으로 전해지고 있다.

“동네 개들이 우체부에게는 짖어도 순천시 공무원에겐 꼬리를 흔들 정도였다”고 주민들은 당시 설득 작업에 참여했던 공무원들의 헌신적 노력을 회상한다. 만나는 주민들마다 이구동성으로 공직자를 신뢰하는 사회분위기는 무척 인상 깊었다.

25년의 공직생활을 개발과 보존의 갈등 속에서도 순천만을 자연과 사람에게 돌려주는데 노력해 온 최덕림 국장은 ‘생각하는 공무원이 세상을 바꾼다’는 철학으로 행복한 시민을 위해서는 고독한 공직자가 되라고 까지 말한다.

순천시 지역공동체활성화센터 모세환 대표는 “대한민국 생태수도 순천은 슬로건이 아니라 도시의 목표”라고 힘주어 말했다.

 

순천시, 대한민국 생태수도로 ‘우뚝’

주민참여를 넘어 주민주도형 자치시대 ‘활짝’

 

▲ 순천만 습지 칠게와 짱뚱어 상징물. 나무테크 아래로 펼쳐진 순천만 습지는 살아있는 자연생태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철새들의 낙원 순천만습지. 순천만에는 60~70년을 살아가는 두루미를 비롯해 노랑부리저어새, 큰고니, 검은머리물떼새 등 국제적으로 보호되고 있는 철새 희귀종을 볼 수 있다. 순천만에서 발견되는 철새는 230여종으로 우리나라 전체 조류의 절반가량 된다.

습지에 설치된 나무데크를 걷다가 아래를 보면 갯벌 속을 들락거리는 수많은 칠게와 짱뚱어를 볼 수 있다. 살아있는 자연생태 그대로다. 주민들은 갈대밭을 가꾸고, 해양쓰레기를 수거하거나 겨울 철새 지킴이 활동도 한다. 지역 촌로들은 단순히 흑두루미 숫자를 세는 일에서 이제는 흑두루미 종류를 분류하고 무리의 증감을 걱정하는 수준의 전문가가 되었다. 일자리를 통한 생태보전의 순천시 주민참여 정책이 돋보인다.

또 주민들은 순천만 관련 정책 결정 과정에도 빠지지 않는다. 순천시는 시의회, 전문가, 주민, 시민단체를 망라한 ‘순천만습지위원회’를 구성해 자문 역할을 강화했다.

경제적인 효과도 한몫했다. 주민의 주머니가 두둑해진 것이다. 시는 순천만 관리와 운영에 투입되는 예산과 별도로 매년 10억의 예산을 편성해 주민 지원사업을 시행한다. 2014년에는 시민단체의 제안으로 순천만 입장료 수익의 10%를 주민이 원하는 사업에 쓸 수 있도록 순천만습지보전·관리 및 지원 조례도 제정했다. 매년 7억 원가량이 주민을 위해 쓰이고 있다.

그러나 순천만 습지, 순천만국가정원이 인근 산업도시인 여수, 광양만은 일터로, 아이들을 키우며 행복하게 살고 싶은 곳은 순천시라는 주민들의 바램을 다 설명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대규모 산업단지가 있는 곳도 아닌 인구 28만 명의 순천시에 매년 인구가 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원도심으로 향했다.

신시가지가 형성되면서 원도심 공동화가 사회문제화 되자 순천시와 시민들은 원도심에 문화의 거리를 만들었다. 문화의 거리는 순천의 오래된 이야기와 풍경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각종 갤러리와 아틀리에, 공방, 카페 등이 밀집돼 있다. 주변 골목에는 팔마비, 순천향교, 옥천서원, 기독교 역사박물관 등이 산재한다. 순천시는 정부의 도시재생 정책이 만들어 지기 훨씬 이전에 문화재생, 공동체 회복을 계획하고 실천했다.

사업초기 2년 동안 지원한 임대료 기간이 끝났음에도 문화의 거리로 입주하는 작가들이 줄은 선다. 그만큼 문화가 살아 있는 원도심으로 탈바꿈했다. 무엇보다 주변 주택가 골목 내 집집마다 1평 정원을 조성,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었다. 순천시는 골목을 정비하면서 집집마다 자투리 땅에 1평 정원을 만들었다. 정원이 없는 주민들은 타이어나 볼쌍스런 주차금지 장애물보다 예쁜 화분을 내놓는다. 정원이 집 안에서 담장 밖으로 나온 것이다. 정원관리는 주민자치위원회에서 한다.

 

▲ 순천시는 원도심 식당을 매입, 어린이와 주민들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무료 한옥글방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는 책 읽는 도시라는 의외의 환경이 작동했다. 순천은 인문학의 도시다. 도시 곳곳에 작은 도서관이 넘친다, 부모와 아이들은 ‘작은도서관’에서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한다.

“아이들을 잘 키워내는 일은 사회의 책임이고 의무입니다. 우리 사회는 어린이들에게 정당한 성장의 권리를 보장하고 꿈과 희망을 키울 기회의 평등을 확대해 주어야 하며, 가능한 한 최선의 창조적 성장 환경과 최선의 봉사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대한민국 제1호 기적의도서관이자 어린이 전용도서관인 민과 관이 함께 운영하는 순천기적의도서관 설립목적이다.

순천시는 원도심 재생에 나서면서도 우선적으로 식당을 매입해 복합문화공간 ‘한옥글방’을 만들었다. 순천시민이면 누구나 무료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글방이다. 순천시가 대한민국 생태수도로 우뚝 선 동력이 시민의 독서와 문화사랑에 있다는 것이다.

사실 수많은 도시를 생태 도시와 비생태 도시로 명확히 구분할 수는 없다. 많은 도시들이 생태 도시를 지향하고 있지만, 지향, 노력, 성취의 강도에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우리 서산시가 생태 도시인가 비생태도시인가를 살펴보려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성을 살펴보면 된다.

첫째, 생태 도시는 자연 생태계의 보전을 위해 도시적 생태계를 보호하고 환경오염을 줄이는 ‘자연성’의 원칙을 추구한다. 둘째, 생태 도시는 지역의 자급자족적인 경제활동 실현을 뜻하는 ‘자급자족성’의 원칙을 추구한다. 셋째, 생태 도시는 ‘사회적 형평성’의 원칙을 추구한다. 넷째, 생태 도시는 도시계획 및 개발 전반에 걸쳐 지역 문제에 관한 이해 관계자들의 자발적이고 협동적 참여를 통해 만들어 가는 ‘참여성’의 원칙을 추구한다. 마지막으로, 생태 도시는 지속 가능한 도시를 위한 모든 의사 결정 과정에서 항상 미래 세대의 이익을 고려해야 하는 ‘미래성’의 원칙을 추구한다.

우리 스스로에게 묻자. 서산은 생태도시인가?

한 도시의 미래비전은 산업단지 조성이나 기업유치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람이 살고 싶은 도시. 미래세대에게 물려주고 싶은 도시를 위해 지금 우리는 중장기적 종합 계획을 수립하고 단기적으로는 구체적인 실현 과제를 찾아 실천해 나가야 한다.

 

<글 싣는 순서>

① 금강과 서해바다가 만나는 생명의 보고 ‘금강하구’

➁ 다양한 생물종이 가득한 연안 습지 ‘순천 순천만’

➂ 우리나라 해안선의 특징을 모두 품고 있는 ‘남해 앵강만’

④ 모래톱이 넓게 발달한 철새도래지 ‘부산낙동강 하구’

⑤ 생태환경의 새로운 보고로 탈바꿈한 저력 ‘울산 태화강’

 

 

※이 취재는 충청남도 지역언론지원사업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저작권자 © 서산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