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걸어.... 마음을 눕히다

담양 DamYang

 

 

#1, 비움과 채움의 조우

 

 

적당한 아침나절, 우리를 태운 버스가 담양으로 달리다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우리를 하차시켰다. 휴대폰 카메라를 켜고 서둘러 자리를 빠져나오니 우리 앞에 펼쳐진 풍경은 마치 중국 태항산의 어느 협곡을 연상케하는 그림을 펼쳐놓았다.

멀리 백악기 말에 생긴 절리(節理)가 산중턱에 보인다. 함께 한 동행인들은 눈에 넣기보다 렌즈에 담기에 여념이 없었다. “서보세요. 자 여기보세요” 연신 카메라 봉사자들이 외치는 소리가 가파른 절벽 산허리 하얀 구름 조각과 함께 유유히 흐르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비움과 채움의 갈림길에서 서서히 일상을 잊어 갔다.

 

#2, 느리지만 깊고 진한 담양호

 

 

용추봉과 추월산 사이에서 흐르는 물이 바로 아래 담양호를 이루어 우리를 유혹했다. 며칠 전부터 아날로그 감성이 가득 담긴 심장 사이로 담양호의 시원한 바람이 속을 비춰주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여행하면 자연과 인간이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그런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었다.

이곳 담양호를 건너게 해주는 아름다운 목교를 보는 순간, 그냥 막 저냥 막 눈에 넣고 36계 줄행랑을 치고 싶었다. 참으로 참하다. 목교를 지나니 엿장수 아지매의 엿가락 소리와 함께 부드러운 곡선미를 뽐내는 호반의 수변 데크와 담양호 용마루길이 이어져 있다.

잔잔하면 잔잔한 대로 투박하면 투박한 대로 사람을 맞는 발아래 담양호, 느리지만 깊고 진한 데크의 잔스러움과 함께 너무도 조화롭다.

그 모습에 빠져, 한참을 수려한 호수경관을 바라보노라니 그만 여기에 주저앉아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추월산과 과녁바위산이 바라보이고, 비네산이 햇살을 등에 얹고 눈 맞출 수 있는 아름다운 곳. ‘아~ 우리 서산은 어디 마땅한 곳이 없을까?’ 자꾸만 부러운 생각에 걸음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3, 메타세쿼이어 길에서 쉼을 만나고, 관방제림에서 마음을 눕히다

 

 

 

현대인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치유의 힘을 느끼고 싶어요”라고. 하지만 어디서 해야하며 어찌해야 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물론 나부터 그렇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무는 푸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키 큰 나무는 치유를 하는 또 하나의 살아있는 힘이란 걸.

길을 걷다 보니 행간의 여운을 음미하는 시인의 글처럼 나도 모르게 이국적인 풍경에 취해 발을 헛디뎠다. 하지만 그러면 또 어떠랴. 그냥 그 자리서 연장을 풀고 가만히 고개 들어 하늘을 보았다. 멀리 남도의 초록빛 동굴 향기가 마음을 부드럽게 두드렸다.

함께 한 선생님이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택시기사 민우가 메타세쿼이어(Metasequoia) 가로수 사이로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에 행복해하는 모습이 바로 여기서 촬영되었대요”라며 자신도 두 팔을 벌리고 먼 하늘을 올려다 보는 체스처를 취했다.

‘그래. 여행은 때로 누군가도 되어보았다가, 또 때론 시간을 한번 쯤은 거슬러 살아볼 때도 있어야지.’

 

 

이런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영광의 숲인 관방제림(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대상)을 만났다. 느릿느릿 원을 그리고 이리저리 뜀박질도 해보며 걷게 되는 길.

그냥 말없이 걸었다. 발아래 자전거를 타며 지나는 사람과 한가로운 물줄기가 평안을 안겨준다.

 

 

#, 대빗 사이로 마음을 부르는 죽녹원

 

 

여행에 한 눈을 팔다보니 까맣게 잊었던 위장이 반란을 일으켜 난리북새통이다. 가까운 곳에 들어가 대통밥과 떡갈비를 먹고나서야 움직인 죽녹원. 바람이 들러 여름을 부르고 있는 곳 답게 습한 공기가 대숲에 가득하다.

이제부터 죽림욕장에서 힐링을 할 차례다. 상반기를 마무리하고 하반기를 맞이 한 우리의 전사 42명! 어쩌면 이들은 그동안 애쓴 자신을 스스로 다독이고 싶어 이곳에 몰려왔는지도 모르겠다. 신사처럼 우뚝 솟은 대숲 한가운데서 우리는 어느새 숨 죽인 우리의 또 다른 시간을 발견하며 화들짝 놀랐다.

 

 

가만히 목을 들어 하늘을 봤다. 그곳에는 오래도록 서걱이는 추억이 반짝이는 빛과 함께 들어와 동심을 선물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서산에서는 차마 외칠 수 없는 얘기를 임금님 귀에다 전하며 마음껏 웃었다.

사실, 처음 버스에서 내렸을 때 “담양 참 좋다!”라고 했던 것이 집으로 오려고 버스를 다시 타면서도 같은 말이 반복되어 나왔다.

개천이 흐르는 사잇길로 네발 자전거가 흘러 다니고 있는 아름다운 담양. 그곳의 여름이 우리를 부른 건지 바람이 간지럽혀 우리를 깨운 건지 망설이는 사이, 담양의 여름은 그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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