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73세 노인 살아있는 각설이 강국환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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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73세 노인 살아있는 각설이 강국환 선생
  • 최미향 기자
  • 승인 2019.06.19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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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은 나이와 비례하는 것!

▲ 각설이 강국환 선생

모든 날 모든 순간이 나로 인해 행복했으면…….

 

<인터뷰에 앞서>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고상하게 색소폰을 불던 남자가 갑자기 정색을 하고 각설이로 둔갑한다? 여러분이 현장에 있었다면 과연 어떨 것 같은가.

서산시 읍내동 호수공원 어딘가에 바로 이런 분이 나타난다는 소식을 듣고 기자는 한달음에 정체를 알고자 그곳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도대체 누굴까.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수소문을 해봤지만 어디에도 그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자는 요양원에서 어르신들의 웃음이 되어 열심히 봉사하는 모습을 포착했고 담판에 그가 바로 강국환(73세) 각설이 선생임을 알 수 있었다.

▲ 어르신들 앞에서 각설이 공연을 하고 있는 모습

Q, 약간 덜 떨어진 듯 한 인물묘사로 인기를 끌고 있는 각설이를 하는 이유는 뭔가?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각설이 타령이 매력적인 이유에 대해 얘기하려고 한다. 요즘 세상이 보통 어지러운가. 이럴 때는 세태풍자를 하는 것이 이만한 게 또 없다. 각설이가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도 사람들은 각설이니까 그다지 개의치 않는다. 그러니 이만한 짜릿함이 또 어디 있겠나. 관객과 함께 울고 웃을 수 있어 포기할 수가 없다.

우리 아내는 내가 각설이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이해는 한다. 하지만 나는 이날까지 살아오면서 남들 다 하는 술, 담배는 물론이고 화투 한 장 잡아보지 않았고 그 흔한 다방커피 한번 마시지 않았다. 늘 일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 아침에도 제초제 만여 평 다 주고 요양원봉사도 다녀왔다. 만약 다른 사람에게 내가 매야 할 콩밭을 미루고 나오면 욕하는 사람 있겠지. 하지만 나는 절대 미루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좋아하는 드럼, 색소폰, 전자오르간, 장구, 각설이를 두루두루 하고 다녀도 (아내에게)미안하지는 않다.

Q 악기를 만진다는 자체도 사실 쉬운 게 아니다. 어떻게 하나도 아니고 그 많은 악기를 다 배웠나?

사실 음악은 끼, 소질, 돈의 3요소가 맞아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감사하게도 거기에는 좀 합당한 것 같다(웃음). 그런데 난관은 있었다.

나는 음암면 부장리에서 태어났다. 당시에는 다들 가난했는데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가방끈이 좀 짧다. 악기를 배우려니 음악이론 때문에 많이 막히더라.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악착같이 배우면서 피나는 노력을 했다. 색소폰 같은 경우는 단 하루도 쉬지 않고 호수공원에 나가 연습을 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내 할 일 다 해놓고, 남은 시간 좋아하는 취미생활 하는데 누가 뭐라 하겠나. 우리 딸은 이런 아빠를 응원해 준다. “아빠보다 연세가 낮은 분들도 병원에 계신 분들이 많은데, 그 분들보다 나이도 더 많은 우리 아빠가 어르신들을 기쁘게 해주니 너무 좋아요.” 아들은 무반응이긴 한데 은근히 USB도 사다주고 하는 걸 보면 그다지 싫어하진 않는 것 같다.

 

Q 각설이 공연을 해야 하면 연습할 곳이 있어야 하지 않나?

 

나는 이불속과 차 안, 그리고 내가 움직이는 모든 장소가 연습장이다. 사실 말이지 각설이는 혼자서 연습해야 한다. 인사도 때와 장소에 따라 다 다르고 멘트도 틀리다. 그러니 연습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평상시 콧노래도 미친 사람마냥 한다(웃음). 때로는 옥녀봉 뒷산에서, 오늘은 제초제 주면서, 내일은 또 작물 심은 밭에서 고라니 쫓으며…….”

▲ 성심요양병원에서 공연 봉사를 하고 있는 모습

Q 각설이를 하면 관객들의 반응은 어떤가?

처음 각설이 공연을 했던 날이 기억난다. 어르신들이 다들 좋아하실 줄 알았다. 그런데 별 반응이 없더라. 약간 실망해서 갈등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한번 마음먹은 것은 해내는 성격이라 꿋꿋하게 해 나갔다. 하다 보니 차츰차츰 좋아해 주시더라.

요즘은 어르신들이 찾는다. 그럴 때는 하루 두세 번씩도 가서 공연해 드린다. 서산에 있는 요양원은 60%를 다 하는 것 같다.

Q 각설이를 하면서 혹시 기억에 남는 일은 없었나?

왜 없겠나. 무지 많다. 나는 가만 보면 비위가 좀 남다른 것 같다. 각설이를 한창 연습할 때였는데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산시청 앞 관광차가 세워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다가가 보니 아주머니들이 대략 30분가량 타고 계시더라. 기회는 이때다 싶어 “타도 되냐?”고 물었다. “여자들만 여행가는 차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배짱 두둑하게 말했다. “나를 남자로 보지 말고 동등한 여자로 봐 달라”고(웃음). 그때 그중에서 가장 연장자인 듯 한 분이 “저렇게 타고 싶어 하는데 한번 태워보자”고 그러더라. 얼씨구나 싶어 차에 올라 노래도 하고 각설이도 했다. 끝나고 나니 너무 좋아하시면서 전화번호도 묻고 다음에 다시 찾아와서 공연해 달라고 부탁도 하더라.

때로는 호수공원에서도 20여 명이 있으면 다가가 “노래 한자락 해도 되냐?”고 물어본다. “해도 된다”고 하면 그곳에서 노래 한 토막을 해 드리고 애드리브도 치면서 한바탕 재미나게 각설이공연도 한다. 주로 맞춤식이다. 연세 드신 분들에게는 창을 불러드리는가 하면 젊은 사람들에게는 또 그에 맞는 것으로, 아무튼 적절하게 좋아하는 것을 찾아 들려드린다.

Q 혹시 또 잘 하는 것이 있나?

권투중계를 좀 한다. 30년 전 전국노래자랑에 몇 번 출연했는데 그때 (권투)중계를 해서 많은 박수갈채를 받고 수상도 했다.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잘하는 것보다 내가 걸었던 발걸음들을 나열해 보면 어떠냐.

나는 어려웠던 시절에 태어난 사람이라 이것저것 안 해본 것이 없다. 그중에서도 양복점과 양장점을 직접 운영했는데, 당시 6개월 속성으로 배워 가계를 오픈했는데 잘 됐다. 이 외에도 과수원과 한국냉동수입고기 등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접해봤다. 지금 와서 가만히 돌아보면 내가 선택한 것 중 가장 멋진 일은 바로 악기와 각설이를 만난 일이다.

▲ 제2회 찾아가는 우리문화공연 후 기념촬영

Q 앞으로의 꿈은?

나이 들면 돈 많은 것도, 지위가 높은 것도, 많이 배운 것도 모두 다 필요 없다. 그냥 건강하고 얼마만큼 현재 삶에 만족하느냐가 관건이다. 한때는 나 또한 돈을 벌기위해 악착같이 살았다. 하지만 이제 한해 두해 시간이 흐르면서 돈 욕심이 없어졌다. 그냥 베풀고 나누는 삶이 좋더라. 어쩌면 성숙은 나이와 비례되는 것 같다.

꿈이 있다면 내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사람들에게 행복과 웃음을 선물하는 전도사가 되고 싶다. 그것이 악기가 되었든, 각설이가 되었든…….

<대문을 닫으며>

그러고 보니 강국환 선생은 지난해만 봐도 500포기의 김장배추를 심어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눠주었다. 또한 석남동 2천여 명 어르신들에게 효잔치 비용으로 거금을 선뜻 내어놓기도 했다.

그는 말한다. 각설이 화장을 할 때 그렇게 기분이 좋다고. (각설이)분장을 하기위해 화장품 매장을 방문하러 가는 것도 묘한 매력이라며 웃는 그의 얼굴에 동심의 미소가 보인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도 했다. “살다보니 비탈길도 나타나지만 또 어느 때가 되면 잔잔한 호수 같은 평안한 길도 나타나더라. 그럼에도 혹여 힘이 들어 헤어 나오지 못할 때에는 내가 부르는 노래 한 자락 듣고 각설이도 들으며 치유되기를 바란다.”

선생을 만난 날은 여름 아침이 구름을 부른 점심나절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순간 서너 자락 습한 햇살을 놓곤 휑하니 나가버렸다. 우리 앞에 놓인 햇살이 그날따라 유난히 눈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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