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허당(聚虛堂) 한기홍의 서산갯마을

▲ 한기홍 향토사학자

서산의 지명 중에서 성터와 관련된 지명이 활성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활성동(活城洞)이 있었는데 지금은 동문2동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그러니까 동문2동(구 활성동)의 어원은 활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활성은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 의하면 통일신라시대에 축성된 토성(土城)이다. 조선환여승람 고적조(古跡條)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 활성(活城) 고지도

活城(활성)

在瑞山面市場南端(재서산면시장남단)

高三尺袤八十間(고삼척무팔십간)

諺傳新羅時農城(언전신라시농성)

『활성은 서산면 시장 남단에 있으며

높이는 3척이고 길이는 80간이다.

전해오는 말에 신라 때 농성이라 한다.』

 

농성은 군사적 목적의 성이 아니라 읍성과 성격이 비슷한 성격의 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백제가 멸망하고 통일신라시대에 서산 지역의 통치를 위해서 쌓은 성인 것이다. 즉 통일신라시대에 서산의 치소는 활성이었던 것이다.

성의 모양이 활을 닮았다고 해서 활성이 되었다고 전해지기도 하지만 한자로 표기하면 활성(活城)이기 때문에 활(弓) 모양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잘못 전해진 말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일제시대의 지도에서도 확인되지만 활성의 모양은 원형에 가깝다.

활성은 문헌상 신라시대에 축성된 토성이므로 신라시대 이후 조선시대에 서산읍성이 축성되기 전까지 행정의 중심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활성은 서산이 도시화되는 과정에서 그 터가 서산초등학교와 전화국 등으로 바뀌었다. 도시의 규모가 커져가면서 지금은 활성의 성벽이었던 곳의 일부분만 주변 지형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일, 이 년 전에 서산시문화도시사업단에 의하여 진행된 ‘활활 프로젝트’를 통해서 옛 활성에 대한 이야기와 그리고 활성터 안내판을 통해서 어렴풋하게나마 활성을 그려볼 수 있다. 그리고 활성 주변에 소재하는 오래된 가옥 담장에 그려진 벽화 작품들이 이곳이 과거에 활성이 소재했던 장소라는 것을 알려줄 뿐이다.

그 외에 활성에 관한 기록은 서산의 교육에 관한 기사를 다루었던 동아일보 기사에 나오는데 1927년 서산면 동문리 활성야학회가 있었는데 김낙현, 박인성, 전영석, 최용안 씨가 활동했다고 한다. 또 활성에는 일제시대에 서산초등학교가 지금의 장소로 이전하기 전까지 고아구제원이 있었다.

 

<활성에 대한 주변 지역주민 인터뷰 내용>

 

옛날에 성터가 있었다. 장로교회가 여기 있었다. 활성이라는 지명이 생긴 것은 성이 활모양으로 되어 있어 활성이라 했다고 들었다. 활성의 성터는 전화국을 지으면서 성터가 없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옛날 기억으로 마을 공동샘이 지금의 이 이발소 아래 서쪽으로 있었고 그 곳이 짱구 세탁소에서 올라가는 옛날 길이다. 지금은 페도되어 사용하지 않는다. -성심이발관 대표

 

활성 성터가 지금도 남아 있다. 번화2로 주변의 서산초등학교 담장 쳐져 있는 곳을 보면 높낮이가 확연히 차이 나는데 그 곳이 성터이다. - 중앙상가번영회 회장

 

서산초등학교 있던 장소 주변의 뚝이 높았다. 뚝이 높아서 미끄럼틀을 타던 기억이 있다. KT 있던 곳에 집이 있었고 올라갈 때는 주변에 아카시아나무가 있었다. 당시에 초등학교 운동장은 지금의 운동장이 있는 곳이 아니고 그 아래쪽에 있었다. 학교가 동쪽을 바라보며 가로로 있었다. 나중에 위에다가 운동장으로 새로 만들었다. 그것이 지금의 서산초등학교 운동장이다. 어렸을 때 성벽 주변에서 전쟁놀이를 했다. 그곳에는 넓고 움푹 파인 곳이 있었고 집이 두 채 정도 있었다. 운동장이 학교 교실보다 위에 있는 학교가 흔하지 않다.

활성 밑에 집이 있어서 어머니가 나를 그곳에서 낳으셨다. 당시에는 시내외곽이었는데 지금은 구도심이 되고 말았다. 당시는 활성 남쪽으로는 집들이 많지 않았다. - 둥지마루 대표

 

활성터에서 흙이 쌓여진 곳을 뛰어 넘는 놀이를 했다. 활성터는 전화국을 지으면서 사라졌다. 지금의 전화국 주변으로 그 때에는 과자공장이 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병막이라고 옛날에 전염병이 돌면 환자를 격리하여 수용하던 시설이 있었다. - 동부시장 상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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