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선약국 장하영 박사

 

‘선별’과 ‘감별’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①

 

언제부터인가 한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약국에 방문하는 손님이 심심찮다. 물론 스마트폰 화면은 켜져 있다. 이러한 환자는 세 가지 유형 중 하나일 것임을 나는 직감한다. 첫 번째 유형은 약 이름을 정확히 몰라 약 케이스를 직접 찍어온 환자인 경우. 두 번째 유형은 캡처한 화면 속의 약을 구해줄 수 있는지 정중히 요청하는 환자인 경우. 세 번째 유형은 인터넷에 떠도는 특정한 약의 응용에 관하여 상의하겠다는 환자인 경우다.

첫 번째, 두 번째 유형의 손님은 비교적 수월하게 응대할 수 있다. 그러나 세 번째 유형의 손님은 다소 까다롭다. 특히 약에 관한 최신(?) 지식 습득을 등한시 하였던 나에게는 말이다. 어떤 손님은 그것도 모르냐고 호통을 치신다. 약사로서 자존심을 구겼던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그게 내 무능력과 무지의 소산이라면 정말 다행일 게다. 그러나 인터넷의 잘못된 정보에 의하여 환자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리고 인터넷에서의 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나 주관적 판단에 의한 정보들이라면 정말 큰 문제다. 통계적으로 헤아려 봐도 한, 두 사람 경험만으로 일반화시키기에는 무리가 아닐까. 솔직히 말해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약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어떠한 경우에는 홍보성 글임을 쉽게 눈치 챌 때도 있다. 꼭 찍어서 예를 들고 싶지는 않다.

사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요즈음 약물 지식이나 정보는 아주 쉽게 구할 수 있다. 그게 다가 아니다. 본인이 복용하고 있는 약의 명칭만 컴퓨터에 입력하면 약의 작용, 부작용, 성상, 상호작용, 심지어 복약지도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웹사이트도 있다. 환자들은 그러한 내용들을 먼저 확인하고 약국에 방문하여 스마트폰을 내민다. 그래도 내가 약사니까 다시 한 번 확인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판단하기 곤란한 경우가 많다. 모르는 내용이 더 많아서이다. 약 하나하나에 수십 가지 부작용과 수천가지의 약물 간 상호작용을 어떻게 다 외울 것이며, 예상치 못하였던 임상적 응용을 어떻게 다 헤아리겠는가. 그리고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다. 최종적 책임을 내게 지우는 듯 한 느낌이 들어서 말이다.

과거 학부 시절을 상기해 본다. 시험 기간 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이면지를 구하는 문제였다. 운이 좋은 경우 특히 친한 교수님께 부탁하면 이면지를 내 키의 절반 높이만큼은 구할 수 있었다. 그 다음 필요한 것은 볼펜이었다. 나는 가장 값이 쌌던 모나미153볼펜을 두둑이 준비하였다. 그러면 준비는 끝이다. 이제부터는 약의 명칭, 화학식, 제조법, 약리작용, 부작용, 임상적 사용, 제형 등 약의 기본적 사항을 직접 써가며 외우면 됐다. 외우면 외울수록 약에 관한 부족한 지식은 여전함을 느꼈다. 끝이 보이질 않았다. 그런 식으로 하루에 볼펜 한 자루씩 소진하며 학부 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내가 유별났던 게 아니다. 이렇게 공부해도 내 학부 성적은 중하위권을 맴돌았을 뿐이니.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런 내가 환자보다 모르는 게 더 많음을 느낀다. 난 받아들이기 어렵다. 솔직히 말해 이 세상이 겁난다.

4차산업이 도래하면 약사의 역할이 축소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매체가 많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단편적인 면, 즉, 조제라는 테크닉 측면에서는 인정한다. 그러나 약사의 역할은 매우 다양하다. 넘쳐나는 약물 지식에서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는 역할은 점점 확장될 것이라 믿고 싶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일은 컴퓨터화된(Computerized) 머신(machine)이 할 수 있겠지만 ‘선별’과 ‘감별’은 인간만이 할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약물 지식 속에서 올바른 지식을 선별해 내는 역할은 약사만이 할 수 있지 않을까.

저작권자 © 서산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