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 이현우 동문동

횡단보도 등 4대 불법 주·정차 금지구역에 대한 주민신고가 지난 한 달 간 하루 1900건 정도 접수된다고 한다. 구역별 불법 주·정차는 횡단보도 위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교차로 모퉁이, 버스정류소, 소화전 순으로 많았다.

정부는 국민 안전과 직결된 소화전 주변 5m 이내, 교차로 모퉁이 5m 이내, 버스 정류소 10m 이내, 횡단보도 위나 정지선 침범 주·정차에 대해 안전신문고 앱을 통해 1분 간격으로 위반 사진 2장을 찍어 신고하면 현장 단속 없이 즉시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4대 금지구역 가운데 가장 많은 주·정차 위반이 벌어진 곳은 횡단보도였다. 전체의 52.3%였다. 교차로 모퉁이는 21.8%, 버스정류소는 15.9%, 소화전 10.0%였다.

행안부 류희인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국민들이 4대 불법 주·정차 금지구역을 설정해 운용하는 취지와 필요성을 충분히 공감한 결과”라며 “주민신고제에 대한 홍보와 함께 강력한 단속을 벌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제도 도입 이후 여러 부작용은 커지고, 정작 불법주정차는 그대로라며 문제다. 일부 지자체에서 주민신고가 크게 늘면서 주민간 불협화음도 커지는 모양이다.

불법 주·정차 주민신고제는 휴대폰 앱을 통해 주·정차 금지 구역 위반 차량을 촬영해 위반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제도다. 신고 방법도 간단하다. 사진을 1분 간격으로 촬영해 휴대폰 앱으로 전송하면 끝이다. 공무원 판독 결과 불법으로 인정되면 건당 4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오는 7월31일부터는 소화전 등 소방시설 주변에 주‧정차를 하면 두 배인 8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신고 건수나 신고를 당하는 사람의 1일 제한 같은 것도 없다. 악심을 품고 불법 현장에서 촬영을 하면 수백 수천대가 한 사람의 먹잇감이 될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보복성 신고다. ‘나도 당했으니 너도 찍혀봐라’는 식의 대응이다. 불법 차량만 발견하면 무조건 신고부터 하는 살벌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오히려 세상을 감시와 보복, 불신과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꼴이다.

행정안전부는 지난달 17일부터 이달 16일까지 한달 동안 전국 228개 지자체(강원 강릉, 경기 안양 제외)에서 실시된 4대 불법 주·정차 주민신고제 현황을 분석한 결과 5만6688건이 접수됐다고 20일 밝혔다. 하루 1899건의 위반 사항이 신고된 것이다.

하지만 한 사람이 수십 건씩 반복 신고하거나 거짓이나 장난으로 신고하는 건수도 많다고 한다. 이런 주민신고제를 시행하면서 늘 반복된 현상이긴 하다.

문제는 효과다. 신고건수는 크게 늘었고, 공무원들이 일을 못할 만큼 업무가 늘긴 했어도 불법 주·정차는 줄지 않고 있다. 신고가 특정지역이나 무더기 신고에 집중돼 빚어진 것일 수 있다. 배째라식으로 버티는 차주 탓일 수도 있다. 그러나 턱없이 부족한 주차공간은 그대로인 채 주민단속을 강화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차 댈 곳이 없는데 주민신고까지 동원해 과태료를 매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얌체 불법 주차 족이 없는 건 아니지만 불법 주·정차의 대부분은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서민들이 대다수다. 공영 주차공간을 늘리지 않고 단속만 강화하는 건 대책이 아니다.

일부 지자체는 제도 시행 후에도 불법 행위가 줄지 않자 벌써부터 다른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지자체와 협의해 고정식 CCTV와 주차장 확충, 홍보 캠페인을 강화하는 것들이다. 전문가들은 불법 주‧정차 근절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제도 폐지나 보완 지적을 쏟아 내고 있다. 1인 1일 신고 건수 제한이나 거꾸로 신고에 당하는 커트라인을 정하는 것 등이다. 기존 인도와 자전거도로, 어린이‧노인‧장애인 보호구역 등에 대한 신고는 10분 간격에 2회 이내로 제도가 제한돼 있었다. 하지만 불법 주‧정차 제도는 이런 가이드라인 자체가 없다. 보복성 신고로 인한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악성 민원인에 대한 패널티 부과 등도 시급히 서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악법도 법이라는 말이 있지만 법보다 우선해야 할 것이 서로 믿고 이해하는 사회 분위기 조성이다. 행정안전부가 제도의 잘못된 점을 인정한다면 하루 빨리 이를 수정‧보완하거나 폐지하는 게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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