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집단지성’과 ‘집단이기주의’

서산시대l승인2019.05.17l수정2019.05.17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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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국장

각자가 맡은 업무를 정확히 파악하여 수행하는 개미들.

집을 짓고 꿀을 모으는 데 있어 각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꿀벌들.

한 마리의 물고기가 움직이는 것처럼 전체가 방향을 바꾸는 물고기 떼들.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알래스카의 번식지에 도달하는 순록 떼.

 

집단의 능력을 보여주는 개체들은 군집을 이루어 생존이라는 목표를 달성한다. 나미비아의 대초원에 사는 흰개미는 진흙 알갱이에 침과 배설물을 섞어 2m 이상 솟아오른 둔덕까지 만들어 우리를 놀라게 한다.

이들이 먹이를 찾아 움직이고 살 곳을 찾는 등의 결정을 내리는 과정을 보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생물학자들이 발견한 바에 따르면, 벌들이 새로운 집의 위치를 가장 이상적인 장소에 찾을 확률은 거의 80퍼센트에 달한다.

최근 ‘집단지성’이라는 단어가 행정에서 거론되고 있다. 집단지성은 보통 사람들도 이성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존재이며 집단은 개인이 가진 능력의 단순 합이나 똑똑한 소수의 전문가보다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그러면 군중이나 무리 등 모든 집단이 모이면 반드시 ‘지성적인’ 행동을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선 ‘집단이기주의’가 범람하고 있는 사안에서 우리는 ‘집단지성’을 기대할 수 없다.

집단이기주의는 특정집단이 다른 집단이나 공동체 혹은 구성원 전체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집단의 이익만을 고집하는 태도나 행위라고 정의한다.

특히 사유재산권을 경제원리의 기본으로 삼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유재산권의 침해와 연결된 사안의 해결을 위해 ‘집단지성’에 기대는 방법은 표적을 벗어나 날아가는 화살과 같다.

집단지성이 문제해결의 만능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도자는 집단지성을 모든 문제를 해결할 마스터키로 기대하기보다 사안별 적절한 해결책을 모색 도입해야 한다.

눈은 하늘을 바라보되, 가슴은 뜨겁게 그러나 발은 땅을 딛고 있어야 한다. 사회갈등해결에 있어 ‘마스터키’는 존재한 적도 앞으로 존재하지도 않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물은 흐르듯이 관리 되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틀이라고 해도 붕어빵처럼 찍혀 나오지 않는다. 책임정치는 이념적 목표를 실험하는 연구실이 아닌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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