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우렁각시도배봉사단 한도현 회장

최미향 기자l승인2019.05.15l수정2019.05.15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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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렁각시도배봉사단 한도현 회장

 

"혼자 가면 멀리가지만 함께 가면 오래 갈 수 있다"

한도현 회장, 전 세계 등불 밝히는 단체 되고파

 

<인터뷰에 앞서>

 

헐레벌떡 들어오는 우렁각시도배봉사단 회장이자, LG전자 (주)베스트샵 서산점(서산중앙점) 한도현 대표를 만났다. 그를 만난 날은 봄물이 점점 짙어가는, 적당히 늦은 오후였다. 그는 “혼자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배려와 나눔의 삶을 꿈꾼다. “앞으로도 늘 함께 하는 사회.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데 정성을 다 하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지금부터 바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애써 시간을 내어 준 한도현 대표에게 감사의 마음을 보내며 인터뷰를 열어볼까 한다.

 

Q, 봉사의 아이콘이라고 들었다. 기억에 남는 피해 현장은 어디인지?

 

(한) 아이콘이라니 천만의 말씀입니다. 저보다 더 적극적이신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저는 27년 전 대산로타리클럽에 가입하면서 봉사를 시작했고, 서산 한서로타리클럽에 들어가서 본격적인 봉사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러다 2015년 서산시 자원봉사단체협의회 대표직을 맡으면서 봉사를 제 삶의 최우선 중심에 놓고 살아가고 있지요.

기억에 남는 피해현장에 대해 물으셨나요? 피해는 그 내용이 어떻든 간에 가슴 아픈 일이지요. 그중에서도 특히 마음 아팠던 것은 네팔 지진피해입니다. 인간의 손을 타지 않고 아름다운 천혜의 자연환경을 그대로 간직한 네팔은 베낭객들에겐 성지로 불리고 있지요. 그런 곳에 지진이 들이닥쳐 3,300명가량의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영국 데일리메일 온라인 판은 사망자가 1만 명에 달할 수 있다고 보도했지요. 그 정도로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우리 서산시자원봉사단에서도 성금을 모금하여 대사관에 전달했습니다. 사실 자연재해는 인간의 힘으론 역부족이니 더 기막히고 무섭지 않습니까. 어쩌면 그래서 더 포항이나 경주에 지진이 발생했을 때 발 빠르게 움직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Q, 어릴 때부터 봉사에 관심이 있었나?

 

(한) 어릴 때야 봉사가 뭔지 알기나 했겠습니까. 그냥 주어진 대로 살기에만 급급했죠(웃음). 그러다 경기대학교 재학시절, 2년 동안 홍성에 있는 야학에서 늦깎이 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쳤습니다. 주말마다 서울과 홍성을 오가며 수업을 했는데 당시 (야학)학생들은 주로 미용실이나 오토바이 판매점 점원들이었습니다. 저는 그분들을 가르치면서 제가 더 많은 것을 배웠던 것 같아요. 그러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형님이 운영하는 LG전자대리점 점장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는 시간이 없어 더 이상 봉사를 하지 못했죠. 홍성에서의 짧은 2년은 제 삶에 포인트 하나를 찍었다고나 할까요. 언젠가는 그 점을 이을 또 다른 내일을 꿈꾸며 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진 것이 있다면 서로 나누며 살아야 된다’는 것이 제 주관이었거든요.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 사랑의 밥차봉사에 함께 하는 한도현 회장

 

Q, 호수공원 LG베스트샵을 경영하게 된 계기는?

 

(한) 계기를 얘기하자면 어린 시절로 돌아가야 합니다. 저는 성연면 명천리에서 4형제 중 셋째로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세 살 무렵 아버님이 병환을 얻으셨고 인공신장을 달고 38년 동안 긴긴 투병생활을 하셨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먹고살게 없어서 홍성에 있는 외갓집 근처로 이사를 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아버지 병수발과 4형제 뒷바라지를 위해 정말 많은 고생을 하셨습니다. 그나마도 다행인 것은 큰형님께서 고등학교 졸업 후 금성전자(현 LG전자) 대리점 A/S 기사로 취업을 하셔서 집안 형편이 그나마 좀 나아졌다는 거. 작은형님 역시 같은 길을 걸었구요. 그러다 큰형님께서 서울 아현동에 10평짜리 조그만 금성사 판매점을 내게 되었어요. 다행히 장사가 잘된 덕분에 저는 대학에 갈 수 있었고, 대학 입학 후 서울로 이사를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자주 병원에 입원하셨기 때문에 신촌 세브란스 근처로 이사를 간 거죠.

제가 대학을 졸업할 즈음, 큰형님과 함께 일하시던 작은형님이 서울 공항동에 대리점을 냈고, 그때 큰 형님께서 “다른 곳에 취직하지 말고 작은형 밑으로 들어가서 일 배워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솔직히 다른 꿈이 있었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어요. 평소 큰형님을 존경했었을 뿐만 아니라 저희 집 기둥이셨거든요. 더군다나 어머니는 늘 “항상 우애 있게 지내라”고 말씀하셨고요. 그러니 감히 어떻게 제가 형님 말씀에 딴 소리를 할 수 있었겠어요. 군말 없이 입사하여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대학 시절에는 공사판에서 일당 만 원을 받고도 일한 젊은 놈이 대리점일이야 뭐 식은 죽 먹기 아니겠어요. 만 3년을 일하고 형님들이 서산시 대산읍에 LG대리점을 차려주셨습니다. 그것이 기반이 되어 지금의 호수공원에 LG베스트샵을 운영하게 되었지요. 참고로 저희 4형제 중 3형제가 LG대리점을 운영하고 제 자식뿐만 아니라 조카 모두 LG밥을 먹고 있습니다.

 

Q, 어머니는 어떤 분이신가요?

 

(한) 어머니 얘기를 하면 갑자기 울컥해지는데 큰일이네요. 저희 어머니는 행상을 하는 분이셨습니다. 아버지가 편찮으신 관계로 어머니가 삶의 무게를 전부 감당하셔야 했지요. 새우젓도 파시고 옷도 파시고.... 머리에 이고 손에 들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렇게 먼 거리에 있는 동네를 다니셨습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그 일을 시작하여 고등학교 때까지 어머니는 아침 여덟시에 행상을 나가셔서 저녁 아홉시가 다 되어야 집으로 오셨지요. 오실 땐 꼭 쌀이나 콩 등 여러 잡곡들을 들고 오셨는데 그것으로 인해 어머니의 피곤한 몸은 갑절이나 더 무겁게 되어 돌아오셨습니다. 당시엔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 돈 대신 곡식으로 옷값을 치루곤 했던 때였거든요.

우리는 어머니가 걱정되어 자주 마중을 나가곤 했습니다. 혹시 길이 어긋날 수 있기 때문에 꼭 거점을 정해서 어머니와 만나곤 했지요. 매일 16km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행상)가시면서도 전혀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신 우리 어머니. 그러면서도 늘 자식을 걱정하며 사신 분이 저희 어머니셨습니다. 그렇게 17년을 아픈 남편을 대신해 자식 4형제를 키워내셨어요. 우리 어머니가 바로 그런 분이셨습니다. 우리 어머니가요.... 그래서 지금도 어렵고 힘든 분들을 보면 저는 어릴 적 저희 집을 보는 듯해서 외면 할 수가 없습니다.

 

▲ 4형제 부부가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한 태국 여행

 

Q, 장학회 얘기를 해 달라

 

(한)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이웃에게 나누는 삶을 살아야겠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대산에서 대리점을 하고 있던 중 뜻 맞는 몇 분들과 ‘참사랑장학회’를 설립했었죠. 제 어릴 적 시절에는 참고서를 보면서 공부하는 친구들이 가장 부러웠거든요. 저는 단 한 번도 참고서를 사보지 못했습니다. 가난 했잖아요 많이. 그래서 발족한 것이 장학회였는데 제가 대산을 떠날 때는 회원이 80명이 되었고 기금 또한 4천만 원이 될 정도로 성장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장학회가 봉사로의 마중물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우렁각시도배봉사단의 도배 봉사

 

Q, 도배기술이 있다던데?

 

(한) 봉사 중에 가장 많이 필요하지만 쉽게 할 수 없는 게 도배인 것 같습니다. 2016년 항만청에 근무하면서 도배봉사를 제2의 직업처럼 열심히 하시던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이 갑자기 부산으로 발령이 나셨어요. 도배봉사 때문에 걱정하던 윤주문 서산시자원봉사센터장과 의기투합해서 종합사회복지관에 도배 봉사자반 강좌를 만들자고 건의 했습니다. 당시 권오식 종합사회복지관 관장님께서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강좌가 개설 되었고, 저는 당장 등록하여 1기 수강생으로 졸업을 했습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우렁각시도배봉사단도 만들게 되었습니다.

 

▲ 고성 산불 성금 전달 모습

 

Q, 강원도 산불 이재민들을 위해 SNS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는데?

 

(한) 기자님도 아시다시피 이번 대형 산불이 얼마나 큰 피해를 남겼습니까. 전국에서 생필품이나 옷가지들이 현장에 답지했지요. 그런데 현지에서는 양말이나 수건이 턱없이 부족했어요. 틈새였죠. 이에 자원봉사센터에서 각 봉사단체에 협조를 요청했고, 저도 SNS에 ‘수건과 양말이 필요하다’라고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틀 만에 7천여 점의 물품을 모아 주셨어요. 맹정호 시장님을 비롯한 시청 관계자 분들, 시의회 의원님들을 비롯한 각기 각층의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신 결과였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합니다. 서산시민 모두가 얼마나 따뜻한 마음을 가졌는지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지요. 이재민들께서 (서산시민들이) 모아준 물품을 전달받고 굉장히 좋아했다는 후문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가슴 아픈 건 지금 이 시간에도 이재민들은 봉사자 시설에서 기거하거나 불탄 집에서 생업을 이어가고 있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다시 모금을 시작했고, 감사하게도 지역의 체육회와 여러 단체 그리고 개인들이 성금을 보내오셨습니다. 지난 5월 3일, 소중히 모은 성금 10,027,000원을 전달하기 위해 서산시자원봉사단체협의회 회원들과 함께 강원도로 달려가 이재민들에게 성금을 전달하고 왔습니다. ‘대한민국, 나아가 전 세계가 내 가족이다’란 생각으로 사시는 분들이 우리 시에 얼마나 많은지요. 이런 곳에 산다는 자체가 기쁨입니다.

 

Q, 캄보디아의 희망은 무엇인가?

 

(한) 한서로타리에서 캄보디아를 방문할 때였어요. 웅덩이에서 소와 함께 사람이 뿌연 물을 마시는 걸 보며 함께 한 사람들이 심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평소 후원하던 가정에 집을 지어주었지요. 그때가 아마도 2014년도 였을 겁니다. 그런데 주인이 새로 지은 집을 보고도 무표정한 얼굴이라 ‘참 특이하다’고 생각했었지요. 그리고 잊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해 2월, 다시 캄보디아 그 집을 찾아갔어요.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무표정한 가족들이 우리 팀을 보더니 활짝 웃는 거예요. 알고 봤더니 망고나무 여섯 그루를 심어주었기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그 나무가 자라면 1년 동안 먹을 양식을 가족에게 선물한다니 그것에 대한 희망 때문이었죠. 새로 지은 집보다 더 필요했던 것은 바로 ‘희망’이었음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많은 사람들이 한도현 대표에서 말한다. “골프는 왜 치지 않느냐?”고. 그는 “지금보다 훨씬 더 늙게 된다면 그때 생각해 보겠다”고 말한다. 그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이, 더 힘껏 봉사하기 위해서라도 골프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고 말한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2만보를 걷는 일 또한 봉사를 위한 체력증강 때문이다. “체력이 뒷받침 되어야 봉사를 하던 뭘 하던 하지요.”

인터뷰 말미에 그는 의미심장한 소망 하나를 얘기했다. “제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많은 사람들이 저의 빈소에 찾아와 제 아이들에게 ‘아빠 참 열심히 살았다’는 말을 듣게 하고 싶어요. 그래서 좋은 아빠로 기억됐으면 좋겠습니다”라고.

기자는 그에게서 진정 사람냄새를 맡았다.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며 그들을 위해 자신의 힘을 나눠주는 멋진 사람인 그는 삶을 더욱 향기롭게 만들어주는 마법을 가진 우렁각시였다.

“일정 부분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준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맑아질 것 같아요. 혼자 가면 멀리 갈지는 모르지만 함께 가면 더 오래 갈 수 있잖아요”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는 한도현 회장.

 

“서산시민들의 따뜻한 마음과 이웃에 대한 배려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전 세계에 등불 밝히는 아름다운 봉사단이 되고자 한다”는 말을 남기며 그는 총총히 일어섰다. 기자는 앞으로도 한도현 회장이 고단한 이웃을 보듬어주는 아름다운 사람이기를 기원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최미향 기자  vmfms083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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