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석(黑石)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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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석(黑石)에 대하여
  • 한기홍
  • 승인 2019.05.02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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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허당(聚虛堂) 한기홍의 서산갯마을

 

▲ 한기홍 향토사학자

흑석은 충남 서산시 부석면 명칭의 유래이며 대표적 상징물이다. 일명 검은여 또는 부석(浮石)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조선 말기에 부석면 내에는 마산면(馬山面)과 화변면(禾邊面) 2개의 면이 소재해 있었다. 그런데 1914년 일제치하에서 강제로 행정구역이 개편되어 두 개의 면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이 지역의 대표적 상징물이라 할 수 있는 부석이 새로운 면의 명칭이 되었다.

흑석은 충남 서산시 부석면 갈마리 적돌만 내의 현대건설이 운영하고 있는 현대농장 안에 소재하고 있다. 검은색의 돌로 된 바위인데 밀물 때나 썰물 때 모두 항상 물위에 떠 있는 듯한 모습이어서 부석(浮石)이라 칭하였다. 그런데 1982년 현대건설이 천수만 AB지구 간척공사를 시행함으로써 이곳 검은여까지 바닷물이 올라올 수 없게 되자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지역주민들이 검은여보존위원회를 구성하고 매년 양력 4월 3일에 부석면의 안녕과 풍년, 풍어를 기원하는 검은여제를 지낸다.

 

 

부석면의 상징인 이 흑석에는 두 가지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데 하나는 부석사 창건과 관련된 것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런데 이 설화는 영주(榮州) 부석사(浮石寺)의 창건설화와도 이상하리만치 똑같다.

『의상이 당나라에 유학하여 불경을 공부하던 시절에 지엄법사라는 고승의 문하에 들어가서 수학하였는데 의상이 공부에 열심인데다 머리 역시 총명하여 그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의상을 흠모하는 여인이 생기게 되었는데 의상이 공부를 마치고 귀국할 즈음에 그 여인은 의상에게 청혼하였으나 거절당하자 바다에 투신하여 용이 되어 의상을 쫒아 다니면서 그를 보호했다는 전설이다. 의상이 도비산에 부석사를 창건할 즈음 동네 사람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불사를 진행시키지 못하고 있을 때, 용이 된 그녀가 큰 바위를 공중에 둥둥 띄우고 당장 물러가지 않으면 가만 두지 않을 것이라고 일갈하여 쫒아버림으로써 공사를 계속 진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바위는 부석사가 보이는 바다 가운데로 날아가 그 곳에 서 있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또 다른 전설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인 국가물류시스템이라 할 수 있는 조운과 관련이 있다. 당시에 세금으로 걷은 세곡미를 수도인 개성과 한양으로 운송하는데 있어 태안 앞바다 안흥량(安興梁)의 물살이 거세서 많은 조운선이 침몰하므로 세곡미를 안전하게 운송하는 방안으로 서산과 태안의 경계에 운하를 뚫고자 했다. 운하를 뚫는 것은 화강암반이 있어 결국 실패하였지만 대신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건의에 의해 천수만에서 가로림만 사이의 거리를 우마차로 운송하게 된다. 그러므로 조운선이 천수만과 적돌만까지 세곡미를 싣고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와 관련된 내용으로 2016년 발간된 부석면지에는 ‘쌀 위에 있는 부석’이라는 전설이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예로부터 이 바위 앞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흘 먹을 양식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사람들은 이에 대해 반신반의 하면서 항상 궁금해 하였다. 그런데 1982년 부석 앞 바다에 간척공사를 하게 되어 넓은 간척지가 조성되고 쌀농사를 지어 많은 양의 쌀을 생산하게 되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옛날 전설이 앞 바다를 막을 것을 예언한 것이라고 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흘 동안 먹을 곡식이 잠겨 있다고 한 말이 이 간척지에서 생산되는 쌀의 양이라고 한다.』

사실 이 전설은 내용이 와전된 것이다. 천수만 B지구의 간척공사를 예언한 것이 아니고 천수만과 가로림만를 운하로 연결시켜 조운선이 다닐 수 있도록 시도하였던 굴포운하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전라도에서 올라온 조운선이 원산도를 지나 천수만에 들어오게 되면 죽도와 황도 앞바다를 거쳐서 양잠곶(태안군 남면 양잠리)에 이르고 다시 갈마곶(서산시 부석면 갈마리)을 거쳐 사도포(서산시 부석면 가사리)와 남창포(태안군 태안읍 인평리)에 이르게 된다.

수심이 얕아서 천수만이라 이름 붙여진 이곳에서 흑석은 적돌만 내의 양잠곶과 갈마곶을 연결하는 조운선의 항로상에 있어 일종의 등대 역할을 하는 표시와 같았다. 그래서 위와 같이 우리나라가 사흘 동안 먹을 곡식이 잠겨져 있다는 전설이 유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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