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스물여섯 살 청춘, 부남수산 박현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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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스물여섯 살 청춘, 부남수산 박현흠 대표
  • 최미향 기자
  • 승인 2019.04.24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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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남수산 박현흠 대표

 

“오늘의 내 걸음에 따라 미래의 내가 결정된다”

박현흠, ‘때론 뻔뻔하게, 때론 화끈하게...대한민국 청년을 말하다’

 

“모르긴 몰라도 나의 미래는 지금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분명한 건 오늘의 내 걸음에 따라 미래의 내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일찍 시작했다고 해서 누구보다 빠른 걸음으로 앞서 간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얼마만큼 오랜 시간 참고 견디며 얼마나 열심히, 또 꾸준히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 청년 박현흠의 인터뷰 중

 

프롤로그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카메라를 목에 걸고 기차를 기다리는 고독한 남자를 상상할 수도 있다. 여기 서산에서 수산업을 운영하는 앳된 얼굴의 26살 박현흠 대표가 그 중 한사람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고독 대신에 아름다운 남자를 대입시키고 싶다. 종종 훌쩍 일상을 뒤로 하고 여행을 떠나는 이유에 대해 묻자 그는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러 떠난다고 했다.

동부시장 상인중 유난히 어린 청년 박 군은 “앞을 봐도 옆을 봐도 전부 연세 드신 분들이라 딱히 대화상대는 없다. 하지만 나는 심심하지 않다. 취미로 하는게 여행도 있지만 음악으로 타인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클럽DJ도 있다. 틈나는 대로 유튜브 동영상을 보고 공부해야 한다”며 웃음을 귀에 걸었다. 아직은 책임감도 간절함도 조금은 자유로운 나이 26살, 서른 살까지만 여행을 자주하고 그 후로는 생활을 위해 저축을 할 거라는 그를 이번 주 인터뷰이로 초대했다.

 

Q, 미래의 나는 누구일까?

 

“너무 먼 미래는 생각하기 싫다. 그냥 바로 앞생각만 해도 이상 없이 살아지더라. 그냥 오늘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얘기하겠다. 주로 저녁에 뭐 먹을까를 고민한다. 맥주를 마실까, 친구를 만날까, 이도저도 아니면 차라리 일찍 집에 가서 클럽DJ 연습이나 할까. 뭐 이런 생각을 한다. 그냥 피곤하게 살기에는 인생이 결코 길지 않다. 다만 서른이 넘으면 내가 지금 하는 일의 절반을 가감 없이 떼어버릴 생각을 한다. 결혼도 해야 되고, 집과 차도 사야 되고, 봉사도 해야 되고.... 일단 서른 살까지는 무조건 열심히 일하면서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여행을 다닐 생각이다.”

 

Q 23살 어린나이에 수산업에 뛰어든 계기는?

 

“군대 전역하고 일주일 만에 ‘딱 5개월만 일하고 그 돈으로 여행을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부남수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이렇게 된 데에는 길을 터 준 어머니 역할이 컸다. 다니던 대학(호원대학교 외식조리학과)으로의 편입보다 차라리 본업으로 이 직업을 택하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사업자등록을 내 이름으로 내고 본격적으로 (회)소매업을 하게 되었다. 내가 온 이후로 회 판매량이 많아졌다.(웃음)”

 

Q 후회한 적은 없나?

 

“이곳은 말 그대로 직업 전선이다. 때론 칼에 손을 베이기도 하고, 물고기에게 물리고 찔리기도 했다. 작년에는 왼쪽 엄지손톱 부분이 크게는 아니지만 잘려 나갔다. 그래도 이상하게 후회되거나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더라. 이것을 보고 운명이라고 하는 건가(웃음).”

 

▲ 동부시장 부남수산에서 어머니와 함께

 

Q, 주위에서 반대하지는 않나?

 

“내게 기대치가 없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우리 부모님은 굉장히 깨어 있는 분이시다. 기자님도 보시다시피 뭐 딱히 반대할 일도 아니지 않는가. 감사하게도 하고 싶은 것은 그냥 하면 된다고 말씀해주셨다. 솔직히 대학도 딱히 가고 싶지 않았지만 엄마가 1년이라도 가보라고 해서 간 거다. 처음에는 5개월 시한부로 (부남수산) 배우며 일했는데 의외로 할만 했다. 어느새 3년차 이곳에서 일한다. 수산 쪽에선 아마 내가 가장 어린 나이가 아닐까.”

 

Q 칼질 솜씨가 예술이라는데?

 

“칼질뿐만 아니라 요리도 예술이다(웃음). 처음 칼을 쥐게 된 것은 먹고살기 위해서였다. 부모님께서 맞벌이를 하다 보니 엄마의 고민이 있었나 보다. ‘밥은 먹여야겠고 해줄 시간은 안 되고...’ 그러다 중학교 1학년 땐가 엄마가 내게 요리학원에 가보는 건 어떠냐고 하더라. 생각 없이 가방 메고 덜렁덜렁 학원으로 가 보니 적성에 딱 맞았다. 특히 내가 한 요리를 누군가 먹으며 행복해 하는 것이 가장 좋았다. 또 칼을 들고 요리재료를 썰어 음식을 만든다는 것도 너무 황홀했다. 친구들은 학교 끝나고 일반 학원을 간다든지 논다든지 했지만 나는 요리학원으로 향했다.”

 

Q, 후회는 없었나?

 

“처음에는 잠깐 고민도 있었다. 친구들이 주말만 되면 나오라고 하는데 내 입장이 그럴 수가 없으니 굉장히 힘들더라. 내가 나가버리면 엄마 혼자 해야 되니.... 또 있다. 때로는 술 한 잔 하자고 해서 나가야 될 때면 혹시 내 몸에서 비린내가 난다고 할까봐 몸을 씻고 옷부터 갈아입었다. 아 그러고 보니 아주 잠깐이지만 후회를 한 적도 있었네(웃음). 그러다 6개월 정도 지났을까. 어느 날 문득 나를 돌아보니 참 한심하더라. 다른 사람은 모두 당당하게 각자 삶의 방식대로 살아가는데 왜 나는 이렇게 사람들 눈치를 보는가! 자책을 했다. 하루는 물 장화를 신고 그냥 약속 장소로 나갔다. 친구들이 냄새난다고 하더라. 그때 ‘이건 돈 냄새야. 부러워해야 돼’라고 했다. 친구들이 의외로 부러워하더라. 지금은 옷 입은 상태에서 물 장화까지 신고 볼링장 등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당당하게 나간다. 때론 뻔뻔하게, 화끈하게 말이다.(웃음)”

 

Q, 또래 손님이 오면 어떤가?

 

“처음 또래 친구들이 멋진 옷을 입고 수산물을 사러오면 내 자신의 모습을 슬쩍 훔쳐봤다. 팔꿈치까지 올라온 긴 고무장갑과 무릎까지 올라온 물 장화, 비닐로 된 앞치마. 정말 비교되지 않는가. 하지만 마음 한번 바꿔 먹으니 괜찮더라. ‘박현흠, 여긴 너의 패션쇼장이 아니잖아. 여긴 니 직장이야. 직장에선 그곳에 맞는 복장이 필요해!’ 이런 생각을 하니 신기하게도 그 부분에 대해선 주눅 들지 않았다. 아마도 자라면서 부모님의 모습이 내 눈에 익숙해져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여행이다. 이것 하나 때문이라도 주어진 모든 것이 참을 수 있는 가벼움이다. 카메라 하나 둘러메고 세계 속으로 걸어가는 것. 상상만으로도 짜릿하지 않나.”

 

▲ 베트남 나트랑 여행중 만난 여행객과 기념촬영

 

Q, 여행을 사랑하게 된 계기는?

 

“순전히 엄마 때문이다(웃음). 고등학교를 대안학교에 다녔다. 우리 학교에선 1년마다 해외여행을 떠나는데 솔직히 그동안에는 별 감흥이 없었다. 아니 여행을 왜 다니는지 이해를 못했다는 것이 맞다. 예비고 2학년 겨울 즈음, 엄마 권유로 ‘50일간의 인도, 네팔 봉사’를 떠났다. ‘친구들과 한 시간 더 놀겠다. 여행은 왜 다니는지 모르겠다. 비싼 돈 주면서 힘도 들고 입에도 안 맞는 음식도 먹어야 되는데 난 싫다’고 했지만 엄마는 결국 나를 비행기에 태우더라.

8년 전의 인도가 얼마나 열악했을지는 말 하지 않아도 알거다. 당시 나는 결벽증이 아주 심했다. 인도에서 생활한 처음 보름은 상상도 하기 싫은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사람은 현실에 적응하는 동물이라 했던가. 15일이 지나면서 ‘각자 여건에 맞게 살아가는 방식이 있구나!’란걸 깨달았다.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저렇게도 맑은 웃음을 지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과연 지금까지 어땠나.’ 뒤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인도에서 봉사의 시간과 끊임없는 트레킹으로 내 삶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Q, 기억에 남는 여행은?

 

“2017년 처음으로 혼자 홍콩과 마카오로 간 여행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군대에서 홍콩 야경 사진을 보게 되었다. 정말 황홀하더라. 기회가 되면 꼭 가보고 싶었는데 언어도 되지 않고 혼자 가기에는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아 미뤄뒀었다. 이런 내 맘을 알고 이번에도 역시 엄마가 등을 떠밀었다. 심장이 떨리는 걸 꾹 참고 무작정 비행기를 탔다. 유창한 영어가 아닌 나의 모든 말과 행동들이 이방인에게도 통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정말 신기했다. 그때부터 두근거리던 심장이 편안해지고 남은 여행이 행복해졌다. 문득 그동안 잊고 있었던 인도에서의 감정들이 되살아나더라.

그 다음부터 남의 시선 생각하지 않고 당당히 길거리를 활보하며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쉬고 싶으면 종일 이어폰을 끼고 방안에 틀어박혀 뒹굴기도 했고, 때로는 공원에 앉아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아침나절 바닷가에서 맥주를 마시며 긴 벤치에 누워 느긋한 한 때를 즐겼던 그날의 기억, 천국이 따로 없었다.

이렇듯 해외여행은 어딜 나가더라도 남의 눈치를 크게 보지 않는 게 가장 큰 매력이다. 심지어 눈치 보지 않으니 머리를 감지 않아도 되었고, 슬리퍼를 신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현지인들이 사는 주택가를 산책해도 누구하나 내게 눈길을 주지 않아 좋았다. 그때 알았다. 연예인들이 왜 해외여행을 제 집 드나들듯 하는지.”

 

Q,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영혼이 살찌는 듯한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에너지를 받는 타입이다. 비록 3년차지만 어쩌면 내가 수산업을 하면서도 후회를 하지 않는 이유일수도 있다. 동부시장 한 켠에서 한 달이면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들을 만난다. 물론 스쳐지나가는 인연들이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멋진 분을 알게 될 때도 있다. 이처럼 새로운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다 보니 여행지에서도 호텔 대신 게스트하우스를 선호한다. 대신 예외는 있다. 아플 때는 호텔로 가는데 이유는 타지에서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볼까봐 스스로 나를 격리하는 차원이다.”

 

Q, 가업을 잇는다는 것은?

 

“내 얘긴 아니지만 때로는 답답할 수도 있겠다 싶다. 여행을 하다보면 작은 구멍가게지만 자손들이 가업을 이어받는 데가 의외로 많더라. 지난번 일본에 갔는데 허름한 구멍가게가 벌써 10대째 이어오고 있다며 자랑을 했다. 그걸 보면서 깜짝 놀랐다. 나 또한 4대째 수산을 이어가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나는 원해서 뛰어든 케이스다. 물론 그들도 그랬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내겐 철칙이 하나 있다. 본인이 싫다고 하면 가업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잇도록 강요는 하지 말아야겠단 생각이다. 아직 미혼이며 먼 훗날 이야기겠지만. 어떻게 보면 가업을 잇는 다는 것은 자식의 인생을 평생 책임져 주는 것도 아니면서 자식의 발목을 잡는 일 일수도 있지 않겠나.”

 

Q, 손님이 없을 때 조바심은 나지 않나?

 

“사람이 참 간사하다. 휴일이나 명절이면 너무 바빠서 짜증이 나기도 하는데 특별한 날이 아닌 오늘 같은 평일에는 손님들이 뜸하면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어느 날 엄마에게 물었다. ‘회도 다른 사람에게 칭찬받을 정도로 잘 뜨는데 손님이 왜 안 올까?’ 그때 엄마는 ‘니가 서른 살이 넘으면 지금보다 더 잘 될 거다. 이제 겨우 3년 하고선 벌써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되지. 다른 집들은 이미 10년이 훨씬 넘은 분들이 운영하는 가게들이다’라고 하더라. 그때부터 다시 희망을 품었다. 어쩌면 지금 나는 대패질을 할 때가 아니라 대팻날을 갈아야 할 때인 것 같다.”

 

에필로그

 

혼자 있는 시간이면 비릿한 물내음을 맡으며 삶의 가치를 생각해 본다는 박현흠 청년. 아직은 꿈도 많고 할 일도 많은 스물여섯 살 청춘, 그는 시간의 귀함과 오늘 하루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대한민국 건강한 청춘이다. 다음 여행지인 남미를 가기위해 오늘 하루도 부남수산 대표로서 열심히 손님을 맞고 있는 그의 앞날에 늘 행복과 건강이 함께 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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