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제에 대한 소고

 

▲ 한기홍 향토사학자

서산은 중고제와 많은 인연이 있는 고장이다.

고북 초록리의 딴청일수 고수관 선생을 비롯하여 해미 일락사에서 소리공부에 매진한 방만춘 그리고 심정순, 심화영 선생으로 이어지는 청송 심씨 일가가 서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중고제의 명맥을 이어왔다.

현재 심화영 선생의 승무는 충청남도지정 무형문화재로 등재되어 그의 외손녀인 이애리에 의하여 전수되고 있고, 그의 중고제 소리는 ‘심화영 중고제 소리 보존회’ 회장 이은우에 의하여 어렵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실정이다.

한 때 우리고장에서 꽃을 피웠던 중고제 소리가 지금은 오고간데 없이 사라질지 모를 상황이라 필자가 알고 있는 중고제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하고자 한다. 현재까지 중고제에 대하여 학계의 정확한 정의가 정립되지 않은 상황이므로 개인적인 견해임을 먼저 밝혀 둔다.

조선이 성립될 때 통치철학의 기반은 성리학이다. 성리학적 기반 위에서 가장 중요시 했던 덕목은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과 같은 덕목들 이었다. 그러니까 조선은 사(士), 농(農), 공(工), 상(商)의 엄격한 신분제 질서 속에서 앞에 서술한 덕목들을 구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중고제에 대하여 논하고 있으므로 다른 덕목은 제외하고 우선 예에 대하여 주목해보자.

성리학 아래에서 예와 악은 항상 같이 따라 다닌다. 예를 구현하기 위한 수단 중에 하나가 다름 아닌 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례의식 등에 악이 동반되는 것이다.

조선사회에서 개인이나 집안이 최고로 추구했던 것은 과거에 급제하여 출사하는 것이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하면 오늘날의 월급을 받았는데 그 형태가 사뭇 달랐다. 수조권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조권은 한양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경기도 지역에 한하여 준다.

그런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엄격한 신분제 질서가 흐트러지고 전후복구 과정을 거치면서 농업생산성이 늘어나 한국적 자본주의 맹아라 할 수 있는 실학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필자가 판단하기에 중고제는 자본제적 대중음악이라 할 수 있다. 성리학 하에서는 예를 구현하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중고제 판소리는 문화향수이다. 행사 등에 댓가를 지불하고 창자와 고수를 초빙한 것이다. 그 중고제 음악을 통해서 흥을 돋우고 스트레스를 풀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앞에서 설명한 성리학에서의 예의 구현이라는 악과 중고제라는 악은 그 성격이 본질적으로 다르다. 즉 중고제 판소리는 요즘으로 말하면 ‘서태지와 아이들’이고 ‘방탄 소년단’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음악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중고제가 우리고장을 비롯한 충청도 일원에서 비롯되었을까?

이는 경기도와 접해있다는 지리적 특성 때문이다.

출사를 한 관리의 수조권이 경기도에 한하여 지급되고 그 관리는 그 수조권이 자신의 생활 기반이므로 신경을 써서 수조권으로 받은 토지를 관리할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한양도성의 음악과 지역민의 음악이 융합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음악은 주변지역으로 자연스럽게 전파되게 된다. 그런데 그 방법을 창자와 고수라는 방법으로 그리고 서사적 내용의 사설을 우리 고유의 성악형식의 음률에 담아 표출한 것이다.

이러한 형식의 소리가 점차 발전하면서 호탕한 발성을 중심으로 하는 남성미를 갖춘 섬진강 동쪽의 동편제와 섬진강 서쪽의 각종 기교를 섞어 여성적인 서편제로 분화 발전한 것이라고 필자는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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