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디자인을 추구하면, 공동의 이익과 사회발전은 덤

▲ 서산시 도시재생지원센터 한기웅 단장

 

<글을 열며>

 

이름 예쁜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주차장이 될 한 켠에 쪼그리고 앉아 부지런한 손놀림으로 잡초를 뽑고 있는 도시재생지원센터 한기웅 단장을 만났다. 희끗희끗 서리가 내려앉은 머리칼을 봄빛에 내어놓고 직접 풀을 제거하는 모습이 하도 신기하여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눈이 마주쳤고 우리는 여미오미 농가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었다.

기자가 시선을 들어 “디자인은 무엇이냐?”고 묻자 예의 소년같은 미소로 아주 어려운 질문이라며 너스레를 먼저 떨었다. 하지만 곧 “제게 디자인은 ‘기능에 감성을 더하여 비즈니스를 도출해 내는 경제적 행위’이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고개를 갸웃하며 어렵다고 말하자 그는 다시 “디자인은 경제성을 떠나서는 존재하기 어렵다. 따라서 내가 하는 모든 행위는 개인을 위해서든, 공동을 위해서든 모두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전략”이라며 속내를 보여주었다. “다만 지금 내가 실천하고 있는 디자인의 범주는 소위 말하는 「소셜디자인(Social Design)영역」으로, 공동의 이익과 사회의 발전을 함께 도모하는 것”이라고 했다.

 

# 자연에 묻혀 그림을 그릴 때가 세상 최고의 행복이었다는 한 교수

 

물었다. 어릴 때부터 미술에 소질이 있었느냐고. 그러자 한 교수는 “기자님이 보기에 어떤 학생이었을 것 같나?”고 했다. 그냥 어깨를 으쓱하며 “글쎄요” 라고 하자 그는 “자랑 같지만 그림을 특별히 잘 그리는 아이였다”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 때, 아버님이 병환으로 일찍 돌아가시면서 가정형편이 상당히 어려워졌다. 그러다보니 형님들은 내가 그토록 원했던 화가의 길을 극구 반대하셨고 나는 (형님들)의견에 반항할 수가 없었다. 사실 스스로 생각해봐도 무리다 싶었기에. 하지만 순수미술(화가)로의 진학은 포기했어도 멋진 장소에 앉아 캔버스에 자연을 그리는 것은 결코 멀리하지 않았다. 왜냐고 묻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가난을 잊을 수 있는 최고의 취미’였으니까(웃음).”

 

▲ 버려진 석재슬러지를 새롭게 활용하여 재생사업과 연계한 사례

 

# 썰매와 연 만들기가 산업디자인의 초석이 되다

 

한 교수는 “당시 시골에서 최고의 놀이였던 썰매타기와 연 날리기 시합에선 늘 1등을 했다”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직접 디자인을 하고 놀이기구를 만들었다는 말에 기자가 “어린아이가 썰매 만드는데 무슨 디자인이 필요했느냐?”고 하자 그도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니까 말이다. 참 요상하지 않나. 쥐콩알만한 애가 ‘어떻게 만들면 예쁘면서도 잘 달릴 수 있을까? 더 멀리 날아가는 연은 어떤 디자인과 어떤 형태로 만들어야 될까?’를 고민했다니.... 어쩌면 이것이 오늘날 산업디자인이 말하고 있는 기능과 형태의 상관성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이런 것들이 기초가 되어 순수미술이 아닌, 응용미술(산업디자인)을 지망하는 계기가 되었다.”

 

# 음반 취입에 대한 미련은 오랫동안 그를 슬픔에 빠뜨렸다

 

형님들의 반대로 순수미술을 포기하게 되자 작은 방황이 시작되었다는 한기웅 단장. “갑자기 멘붕이 왔던 것 같다. 뭘 해야 할지도,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몰랐다. 그러다 고교시절 짝꿍(경기도 화성)을 따라 화성으로 가서 농사를 짓게 되었다. 그 해 여름밤, 면(面)에서 노래자랑이 있었는데 내가 뜬금없이 대상을 받았지 뭔가. 나도 내 속에 노래소질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았더라(웃음). 그러다보니 그토록 원했던 화가에서 어느 순간 꿈의 이동이 일어났다. 가수 지망생으로 급선회 했지 뭔가.”

작은 레코드사에 3등으로 통과하여 음반 취입 제의가 들어왔다. 그런데 이번에도 목전에서 또다시 형님들의 반대가 있었다. 그때 (형님들은) 소위 말하는 거래를 하더라. “응용미술분야에 지망하도록 승낙해 줄 테니 제발 레코드 취입은 포기해라.”

“아버지가 없는 집안에서 형님의 말씀은 곧 아버지말씀이었다. 하는 수 없이 음반 취입은 포기하고 홍익대학교 미술전공으로 걸음을 옮겼다. 거짓말 같지만 사실 지금까지도 음반에 대한 미련은 있다. 그러니 당시에 얼마나 슬펐겠는가. 그때 취입했더라면 지금쯤 나는 아마도 우리 최 기자님을 이 자리에서 만나보지 못했을 것 같다(웃음).”

 

▲ 농촌재생포럼에서 기조연설하는 모습

 

# 디자인! 지역 개발과 농업농촌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데 앞장서다

 

평소에도 노래를 굉장히 좋아하는 한 교수는 아내에게 한 번씩 물어볼 때가 있다. “내가 가수로 갔으면 어땠을까?” 그러면 그의 아내는 “지금처럼 농업농촌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기웅 씨(두분은 동창사이)는 없었겠지요. 그러면 저는 또 이렇게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되었고요”라며 눈을 흘긴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언제나 무한한 노동의 길을 터준 아내에게 무엇보다 감사하고 미안하다는 한 교수.

“아내 말처럼 디자인이라는 툴(Tool)을 접목하여 농산업의 새로운 트렌드(Trend)를 만들어 가기위해 연일 뛰어다녔다. 사실 이렇게 된 데에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봐야 이야기가 될 것 같다. 2009년 1월, 70여분의 지역 주민과 전문가(디자이너, 건축가, 환경운동가 등)들이 함께 모여 내포디자인포럼을 창립했다. ‘지역 개발과 농업농촌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데 디자인이 앞장서자!’라는 취지였다. 그것은 서산에서 3년, 당진에서 3년, 그리고 보령에서 3년을 돌아가면서 개최하는데 올해 다시 돌고 돌아 나의 고향 서산에서 의미 있는 포럼이 개최된다. 이와 같이 전문가그룹과 지역 주민들과의 밀착된 연구결과로 탄생된 것이 우리가 지금 앉아서 인터뷰하고 있는 ‘여미오미 로컬푸드’다.”

 

# 디자인은 도시에서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곳은 환경적으로 열악한 농촌

 

그에게 “현대시대는 디자인이란 영역이 아주 많이 확장되었다. 도시공간디자인, 마을디자인 같은 것들인데 교수님은 이런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는 잠시 턱을 고이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곤 입을 열었다.

“디자인은 도시와 농촌, 제품과 환경 등 그 어떤 분야에서든 위력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다만 제대로 된 디자인이 되어야 한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다. 바로 농촌의 디자인이다. 디자인은 도시에서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곳은 환경적으로 열악한 농촌이다. 이것은 시대적으로도 절실한 명제다. 아니 어쩌면 향후 몇 년 내에 중국의 농산물이 아무런 규제 없이 수입될 때를 대비해 방어막이로서도 반드시 이루어져야하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사안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농산업이 어떤 경쟁력으로 값싸고 질(質)좋은 제품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난감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국민들에게 국산품 사용을 권장하고 애국심에 호소만 해야 하는가(긴 한숨). 그래서 나는 농촌디자인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 농업의 6차산업화 추진을 위한 주민교육(전 관광공사 사장 참여)

 

# 농사 잘 짓는 농부는 엔지니어. 여기에 디자이너가 새로움을 담아야한다

 

“나는 일찍이 각 지자체에 ‘농촌디자인센터’의 설립을 직·간접으로 호소한바 있다. 이것은 농사 잘 짓는 농부(엔지니어)와 디자이너가 밭으로 나가 차별화된 농작물 가꾸기에 새로움을 담아야 한다는 슬로건이다. 나아가 가공 상품으로 연계할 수 있는 농작물을 선택하고, 현장체험을 하며 나아가 학습까지 연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렇게 하려면 어떻게 유도를 해야 할지 농부와 디자이너가 삼위일체가 되어 함께 고민해야 한다. 상품만 좋아서도 안된다. 여기에 브랜드와 패키지 등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앞으로 농산업에서 디자인의 접목은 매우 ‘적극적이고 전략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다.”

“디자인은 문제점(Problem)이 있는 곳에 멋진 해결점(Solution)을 제시해 주는 아주 묘한 아이다. 어떤 물건이 있다고 치자. 그 물건에 디자인이 접목되는 순간 가치는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 농업이 큰 위기라는 문제의식 앞에서 질적이며 차별화된 농산물 생산, 가공, 체험의 효율적인 운영전략이 마련된다면 큰 걱정은 없다. 농부와 디자이너의 합작품이 분명 성과를 가져온다고 나는 확신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농업농촌에 디자인의 활성화를 위한 ‘농촌디자인센터’ 건립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 도시공간디자인은 따뜻하고 공평한 배려가 숨겨져 있어야 한다

 

도시디자인에 대해 물었다. 단순히 생각해보면 ‘그냥 도시를 예쁘게 만들고 차별화시키는 것 아닌가?’라고 하자 한 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

“도시공간디자인의 기조에는 우리만의 역사성과 전통성을 유지시켜야하는 숙제가 있다. 특히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들, 즉 노약자, 장애인, 어린이, 여성 등에게는 쉽고 편리하게 다가가려는 유니버설(Universal) 디자인적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시는 복합적 구조로 형성되어 있는 하나의 거대한 제품이다. 따라서 이 복잡한 대형 제품의 공간디자인에는 정상인은 물론 어려운 여건에 봉착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도 공평하게 이용할 수 있는 속 깊은 따뜻함 내지는 깊은 배려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감성(感性)디자인의 배려다.

예를 들어 이런 게 있다. 거리를 총총걸음으로 지나치는 바쁜 시민에게 청개구리(의인화 된)가 악수를 청하는 거리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면 어떨까. 어쩌면 바쁜 걸음을 뒤로하고 슬며시 다가가 손이라도 한번 잡아볼 것 같지 않은가? 이렇듯 도시는 기능적 측면과 약자에 대한 배려, 그리고 도시 안에서의 낭만디자인 등 여러가지를 포함하는 포괄적 의미의 디자인이다.”

 

# 마을디자인은 심미적, 역사적 관점에서 고려하여야 할 대상

 

“내 고향은 시골이다. 농촌마을의 고즈넉하고 목가적 풍광이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울퉁불퉁한 도로, 열악한 조명과 정보 등 환경적 요소들이 있다. 이 같은 열악한 환경을 어떤 심미적, 역사적 관점에서 고려할 것인가가 마을디자인의 관건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도시디자인과 마을디자인은 서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유기적 관계다. 다만 환경적 관점에서 도시와 농촌의 차이점이 있다는 것뿐이다.

마을디자인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사전(事前)에 그 마을만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마을경관디자인조례’이다. 이는 마을 주민과 전문가 그룹이 함께 심사숙고하여 제정되었어야 한다.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르다고 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각 마을의 ‘마을경관디자인조례’를 만들어야 한다.”

 

▲ 운산면 여미오미 달래 6차산업 설명회

 

# 서산시 도시재생은 주민들의 요구와 유익성 그리고 무엇보다 절박함이다

 

도시재생센터장을 맡은 지 이제 겨우 한 달이 지난 한 교수에게 서산 도시재생지역에 대한 방향설정을 물었다. 조금 빠른 감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듣고 싶었던 이야기 세 가지를 들을 수 있었다.

한 교수는 “첫째, 이 사업이 선정되어야 한다는 절박함이다. 나는 어디까지나 주민과 서산시의 중간자적 입장에서 많은 의견을 청취하도록 하겠다. 나아가 이번 도시재생의 기획을 총괄하고 있는 기획사와도 긴밀한 협의를 할 것이다. 그래서 함께 (서산시만의) 전략을 만들어가도록 하겠다. 둘째, 주민들의 요구를 반드시 승화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이다. 이 시점에서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주민의 바람’을 전문가적 입장에서 어떻게 녹여내어 심사자들에게 의미 있게 어필시키느냐는 것이다. 요즘은 그 고민에 밤잠을 설친다(웃음). 셋째, 우리 지역에 유익한가를 먼저 검증해 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업이 선정되었을 시, 아이템이 우리지역 재생사업에 유익한가 하는 것이다.”

 

# 마지막 꿈은 “디자인을 접목하여 후대에게 물려줄 도시와 농업, 농촌을 멋지게 건설할 계획”

 

빈농의 가정에서 막내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 1학년까지 농사를 지으면서 농촌에 대한 사랑을 성장시켰던 한기웅 교수. 그는 디자인을 바탕으로 농업농촌의 새로운 도약을 건설해 보겠다는 굳은 다짐으로 22년 전 고향인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로 내려왔다. 때로는 무모하게, 때로는 미숙한 채로 여기까지 뛰었다는 한 교수는 “정년 1년 남겨놓고 지금까지의 오랜 경험을 토대로 농업의 새로운 발전전략, 무엇보다 서산만의 차별화된 도시재생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또 “우리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심어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인터뷰 말미에는 “향후 사업이 선정되고 나면 좀 더 깊이 있는 의견을 피력토록 하겠다”며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기자는 한 교수에게 “이제 완연한 봄이다. 기지개를 켜는 새싹 옆 봄물에, 겨우내 묵은 기운 다 씻어 버리고 부디 행복하고 기쁜 일상들만 누렸으면 좋겠다. 이것은 4월에 던지는 서산시대 직원들의 작은 바람”이라고 작별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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