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와 사람의 ‘아름다운 만남’을 꿈꾸는 문윤식 천수만 지킴이

 

철새는 서산의 ‘복덩이’...지역경제 기여 효과 ‘상상 이상’

천수만, 주민주도형 ‘생태도시 디자인’ 및 ‘생태 공간 조성’ 시급하다

 

[프롤로그]

젊은 시절, 천수만을 찾아오는 새와 인연을 맺고 청춘을 그곳에서 보낸 사람이 있다. 어느 순간 사람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던 천수만 사나이 문윤식. 지난주 천수만 생태관광의 새로운 틀을 구상하기 위해 태국을 떠났던 그를 오늘에서야 드디어 만났다.

 

- 천수만 사나이란 호칭이 있다면서요.

 

“그런 호칭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진짜 천수만 사나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제게 그런 호칭이...(웃음). 가만히 제 인생을 하나의 씨실처럼 바닥에 쭉 놓아보면 다이내믹한 일들이 참 많았던 거 같아요. 처음 (사)한국조류보호협회 회원 활동을 계기로 밀렵감시, 철새가이드, 천수만 철새학교 운영, 천수만 철새 기행전 기획 및 운영을 거쳐 사무국장에 이르기까지 두루두루 섭렵했습니다. ‘종합 막일꾼’이 바로 저였어요(웃음). 그러고 보니 천수만과 함께한 세월이 어느덧 20여 년이 흘렀네요.”

 

- 철새기행전이 생기게 된 계기는?

 

“2000년 10월, 약물에 의한 가창오리 집단 폐사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환경단체들은 위기의식을 느꼈죠. ‘이대로 뒀다가는 큰일 나겠다. 보호하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시장으로 당선되었던 분의 공약이 ‘천수만 철새 기행전’이었죠. 덕분에 짧은 기간, 지역민과 함께하는 철새 기행전 추진위원회가 꾸려졌습니다. 주민들과 환경단체, 서산시가 하나 되어 ‘새와 사람의 아름다운 만남’이라는 주제로 ’서산 천수만 세계 철새 기행전‘이 탄생되었던 겁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민·관 협업이 이루어낸 지역사회의 첫 번째 사업모델이 아닐까 싶습니다.”

 

▲ 천수만 철새 탐조에 나선 국제 탐조객들

 

- 외국의 광학장비업체에서 스폰서 제의를 받았다는데?

 

“맞습니다. 아주 기분 좋은 기억인 동시에 씁쓸한 추억이죠. 철새 기행전에서 광학장비는 빠질 수 없는 도구지요. 하지만 천수만이 AI와 구제역 등 여러 가지 여파로 인해 철새 기행전이 취소되고 나서였습니다. 천수만 철새 기행전은 외국에서도 인기가 많았어요. 당시 천수만 철새 기행전을 지켜보던 외국 광학장비 업체가 스폰서가 되고 싶다며 연락을 해 왔더군요. 기분 좋은 소식이었지만 철새 기행전을 재개해야 수락하던지 말던지 하지요. ‘현재로선 답을 못하겠다. 재개하면 연락주겠다’고 했습니다. 철새 기행전이 한걸음 더 발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쳤지요.”

 

- 미국 노부부, 천수만 새와 사랑에 빠졌다는 얘기는 무엇인지?

 

“천수만의 새들을 보기위해 미국에서 한 달 이상의 휴가를 받아 날아오신 분이예요. 한번만 온 게 아니라 몇 년 째 천수만을 찾았습니다. 이분들은 조류학자보다도 더 새에 대해 많이 알아요. 가이드 역할을 해주었는데 한 일은 별거 없었습니다. 그냥 한국의 문화를 알려주기 위해 온돌방을 잡아주는 것과 새가 있는 장소까지 데려다주면 임무 완성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는 천수만 새에 대한 빅데이터, 즉 천수만 철새 모니터링 자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새 이름만 얘기해도 언제 어느 곳에 가면 볼 수 있는지 대략 알 수 있었죠. 이분들은 한 번 올 때마다 한 달 이상을 머물며 가이드, 렌트카, 주유, 숙식, 기념품, 서산문화관광 등의 비용으로 거의 1만 불(한화로 약 1,200만 원) 이상을 서산에다 뿌렸습니다. 노부부는 늘 ‘천수만은 인간과 자연에겐 천국’이라는 말로 감탄사를 남기곤 했지요. 어쩌면 미국 노부부를 통해 천수만의 가치를 새롭게 알았다 할까요.”

 

▲ 천수만 철새 기행전에 나선 아이들

 

- 국내·외 철새 네트워킹을 만들려고 했다던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로 협조하고 협업을 하는 것에 엄청 서툴러요. 잘 나가다가도 어느새 경쟁체제로 돌아가 버립니다. 철새들은 한 곳에 머물러있지 않아요. 오늘 이곳에 있다가도 내일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그렇게 되면 가장 좋은 것이 바로 네트워킹이거든요.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 나라들과 (네트워킹)하면 금상첨화 아니겠어요. 철새 네트워크는 철새라는 자원을 사람들이 서로 공유하면서 철새를 지켜내는 일이예요. 매우 중요한 일이지요. 지금이라도 천수만을 찾아오는 철새 네트워크 구축에 힘써야 합니다.”

 

- 철새 기행전 위원회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그때를 회상해 본다면?

 

그는 솔직히 몇날며칠이고 하고 싶은 얘기는 수도 없이 많지만 여전히 조심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며 말문을 열었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민·관의 ‘협업과 협치로 갈등을 이겨낸 훌륭한 사례’였습니다.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단합된 힘으로 대성공을 거두었죠. 그 이면에는 치열한 아픔도 있었습니다. 1980년대 중반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농지와 담수호가 조성되면서 찾아들기 시작한 철새들이 애써 가꾸어놓은 농작물을 마구 휘저어 놓는 바람에 골칫거리였거든요. 농민들은 공포탄을 쏘거나 볏짚에 불을 놓아 새를 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철새 기행전이 시작되면서 상황이 바뀌었죠. 주민 대표, 시청과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모두 참여하면서 서로 간의 갈등을 풀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한마디로 모두 승자가 되는 ‘협치의 성공이었고 협업의 성공’이었던 거죠. 나중에는 주민들이 철새들의 가치를 알고 먹이도 스스로 주고....”

 

▲ ‘철새가 찾아오는 친환경 청정 지역’이라는 이미지가 알려지면서 간월도 어리굴젓, 6쪽마늘, 생강한과 등 지역 농수특산물의 인기도 높았다.

 

- 경제효과는 어느 정도였나?

 

철새는 서산의 ‘복덩이’라고 매스컴들이 장식했던 그날의 영광을 기자도 기억한다. 주민들과 함께 했던 기행전의 경제 효과에 대해 그는 “입장료 수입도 대단했지만 탐조 관광객들이 서산에서 지출하는 돈만도 당시 금액으로 매년 45억 원 정도였습니다. 여기에 서산이 ‘철새가 찾아오는 친환경 청정 지역’이라는 이미지가 알려지면서 간월도 어리굴젓, 6쪽마늘, 생강한과 등 농수특산물도 덩달아 불티나게 팔렸죠. 특히 ‘기러기 오는 쌀’은 일반 쌀보다도 더 비싼 가격이었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였어요.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전국 지자체 경영행정 혁신평가에서 우리 서산시가 대통령상을 받았습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역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면 또 하나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 낸다는 말이 맞지 않습니까.”

 

- 천수만이 여행객들의 필수코스였다는데?

 

“천수만은 전국에서 생태교육과 생태관광 벤치마킹 할 만 한 곳으로 유명세를 떨쳤어요. 어린아이들부터 나이 드신 분들까지 천수만은 여행 필수코스였습니다. 사법연수원생, 대학교수들, 관공서의 연수프로그램에는 꼭 천수만을 거쳐 가도록 되어 있었죠.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앞 다투어 ‘서산 천수만 철새 기행전’을 배우러 몰려들었습니다. 전국에서 철새를 주제로 한 환경축제, 그것도 민·관 협치와 협업을 바탕으로 이토록 성공적이면서도 모범적인 사례는 극히 드물었던 것이죠. 천수만 철새 기행전은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우리들만의 자산이었죠.”

 

- 고민들도 많았을 텐데?

 

“당연합니다. 서산시와 철새 기행전 위원회 입장에서 살아 있는, 그것도 보호해야 할 조류를 주제로 축제를 한다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라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깊은 고민 끝에 이름도 ‘축제’라는 명칭 대신 ‘기행전’이란 용어를 썼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저는 이론적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생태관광학을 배우게 되었고, 대학원에서는 ‘공공환경디자인’을 새롭게 전공하였습니다.” 천수만과의 인연으로 뜻하지 않은 분야를 공부하게 되었다면서 살포시 웃는 그에게서 천수만에 대한 사랑이 묻어났다.

 

- 철새외교는 잘 되고 있나?

 

“관광학적으로나 생태학적으로 철새에 대한 인식은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천수만 철새 기행전은 반드시 국제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이미 오래전부터 이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2007년 당시 탐조관광의 국제적 교류 일환으로 미국, 일본, 홍콩 등 7개국 초청부스를 만들어 국제적 네트워킹 즉, 철새외교를 시도했습니다. 우리 측에서 「아시안 버드 페어」를 개최하자고 먼저 제안을 했었고, 대만에서는 홈페이지까지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서산시의 소극적인 대처로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결국 우리만 빠진 채 국제행사는 시작되었죠. 우리가 시작한 일인데 주인이 아닌 객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 부분이 늘 아쉬움으로 남아있습니다.”

“그 이후 몇 년이 지나 우연히 ‘빅터 유’ 대만생태관광협회 사무국장을 만났는데 ‘2017년 「아시안 버드 페어」를 우리 서산에서 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하더군요.「아시안 버드 페어」가 2007년 천수만 철새 기행전 참가를 계기로 출범 되었기에 아마도 서산시를 배려하는 입장에서 그렇게 제안했던 거 같아요. 그러나 서산시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제 마음만 안타까웠습니다. 결국 적극적으로 유치를 신청한 울산에서 아시안 버드 페어 축제를 성황리에 막을 올렸고, 국제 철새 심포지엄까지 연계하게 된 거죠. 가까운 울산시나 외국의 시각과는 다르게 철새를 AI의 주범으로만 바라보는 서산시가 무척 답답했습니다.”

 

▲ 서산버드랜드 전경

 

- 앞으로 천수만과 버드랜드의 미래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

 

“2002년 철새 기행전 출범 당시의 천수만과 지금의 상황은 많이 다릅니다. 해가 갈수록 철새 개체 수가 감소하고 있습니다. 원인은 다양하지만 무엇보다 간월호 물을 가둬 놓거나 모래준설로 인해 모래톱이 소멸되면서 철새들이 천수만을 떠납니다. 모래톱은 철새들에겐 산란 및 서식지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예전에 비해 철새 먹이가 태부족합니다. 김신환 원장님을 비롯한 몇 몇 분들이 지속적으로 먹이나누기를 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죠. 지역 주민들에 대한 지원문제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합니다. 생물다양성관리사업이 그 좋은 예이지만 천수만 철새 보호에 나서는 주민들에 대한 지자체 차원의 지원이 절실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천수만에 대한 구체적이고 폭넓은 생태디자인이 필요합니다. 주민주도형 ‘생태도시 디자인’과 철새와 사람이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생태 공간 조성’이 그 방향입니다”

“많은 분들의 희생과 땀의 결정체로 태어난 ‘서산버드랜드’가 주민들에게 신뢰와 관심을 받지 못하는 시설이 되어버렸습니다. 지역주민들도 버드랜드 운영에 불만을 가지고 있지만, 일부 시의원들까지도 ‘버드랜드는 돈 먹는 하마!’라고 까지 표현합니다.”

“우선 주민들의 염원인 ‘서산 천수만 세계 철새 기행전’은 반드시 부활 되어야 합니다. 아울러 서산버드랜드와 천수만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새롭게 리모델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물복지에 대한 국제적인 추세에 발맞춰 조류를 비롯한 동물, 곤충들을 조형물로 대체하고, 이를 사계절 테마공원화 하는 방안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형물 제작은 천수만에서 생산되는 볏짚 등을 활용한 주민과의 협업으로 제작한다면 일자리 창출은 물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하리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번 태국 밴치마킹을 하면서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주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얻은 확신입니다. 이 모든 과정들이 예전처럼 민·관이 함께 고민해야 함은 물론이고요. 서산 버드랜드 운영도 처음 기획했던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 시설관리와 프로그램 운영이 분리되고, 무엇보다 민간이 참여하는 전문시스템으로의 전환을 고민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천수만 철새 기행전의 기획부터 운영관리 및 사무국장까지 역임했던 맹정호 서산시장은 천수만의 현 상황을 깊이 있게 고민하며 예의 주시하고 있을 거라 믿습니다. 환경문제로 인한 지역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생태관광산업은 굴뚝 없는 산업으로 우리지역의 이미지를 제고하고,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는 최후의 보루입니다.

최근 천수만 철새 기행전부터 버드랜드 건립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지역주민과 함께했던 관계 공무원을 다시 서산 버드랜드로 인사 배치하면서 서서히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에 따른 지역주민들의 기대 또한 그 어느 때 보다 큽니다. 아무쪼록 우리 천수만이 새와 사람의 ‘아름다운 만남’으로 이루어져, 세계적인 생태서식지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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