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회 철산지회' 사건 옥고...1950년 대전 골령골에서 학살

 

'해방 후 좌익' 활동을 이유로 번번이 독립유공자 포상대상에서 제외돼온 정상윤이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독립유공자(애족장)로 인정됐다.

정상윤의 후손인 정혜열 씨(86·서울시 은평구 갈현1동)는 26일 “국가보훈처부터 부친이 독립유공자로 추서됐다는 연락과 함께 독립유공자증도 받았다”며 기뻐했다.

앞서 정씨는 지난 2017 두 차례, 지난해 등 모두 세 차례에 걸쳐 국가보훈처에 부친의 독립유공자로 인정해달라고 신청했지만 ‘광복 이후의 행적 이상(異常)’으로 독립유공자 포상대상에 서 제외됐다. ‘광복 이후의 행적 이상’은 ‘해방 후 좌익 활동’을 했음을 의미한다.

특히 국가보훈위원회는 지난 해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중 북한정권 수립에 기여하지 않은 인물들 위주로 정부포상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정 씨의 부친이 다시 서훈을 신청하자 ‘재조사’를 이유로 판단을 보류했었다.

정 씨의 부친인 정상윤(1905년생)은 ‘신간회 철산지회’ 사건으로 1929년 11월, 신의주 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5년을 선고 받았다. 2심에서는 집행유예, 최종심에서는 보석으로 석방, 1년 8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1927년 출범한 신간회는 민족유일당 협동전선 방침을 갖고 좌·우가 합작한 일제 강점하 최대 규모의 반일사회운동단체였다.

평북 철산군 출신인 정상윤은 철산지회에서 지부장을 맡는 등 결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석방 후에는 ‘문맹퇴치’와 ‘민족사상 고취’의 기치를 내걸고 야학활동을 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07년 정상윤의 이 같은 항일독립운동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정상윤은 1941년 공주로 이주, 해방 후에는 공주군 인민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1949년 경찰에 의해 검거돼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었고, 1950년 7월 초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대한민국 군·경에 의해 집단 학살됐다.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부친의 독립유공자증을 받은 정 씨는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 내건 ‘사회주의자였다 하더라도 독립운동가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공약을 지켰다”며 환하게 웃었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조만간 추가 인정된 독립유공자 명단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친일반민족행위자, 대전현충원에만 28명”

“대부분 장군 묘역 안장, 갈수록 증가... 법 개정해야”

 

▲ 국립대전현충원 친일반민족행위자 현황 및 이장 촉구 기자회견 모습

 

대전 국립현충원에 민족문제연구소 등이 지목한 친일반민족행위자 28명이 안장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중 절반 이상이 친일반민족행위자 묘 이장 문제가 공론화된 2001년 이후 안장됐다. 지역사회에서는 거듭 국립묘지법 개정을 촉구했다.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와 민중당 대전광역시당 등은 25일 오후 2시 대전현충원 앞에서 ‘국립대전현충원 친일반민족행위자 현황 및 이장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에 따르면 대전현충원에는 28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안장돼 있다. 특히 만주국군 상 위·간도특설대 출신인 김석범(묘역, 장군1-071), 일본군 중좌 출신의 백홍석(장군1-176), 만주국군 상위 출신의 송석하(장군1-093), 만주국군 상위·간도특설대 출신의 신현준(장군1-273)도 포함돼 있다. 또 만주 간도특설대 준위 출신의 김대식, 일본군 헌병 오장 김창룡, 일본군 대위 출신의 유재흥, 이형근 등도 들어 있다.

친일반민족 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발간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2009)에 수록된 1005명과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2009년)에 수록된 4390명을 비교해 동일인을 찾아내는 방식으로 조사했다.

28명 중 22명(78.5%)은 장군묘역에 안장돼 있다. 국립묘지법에 안장자격을 나머지는 경찰 3명, 장교 2명, 국가사회공헌자 묘역 1명이다. ‘장성급 장교 또는 20년 이상 군에 복무한 사람 중 전역·퇴역 또는 면역된 후 사망한 사람’과 ‘무공훈장을 수여받은 사람으로서 사망한 사람’ 조항이 적용됐기 때문이다.

이중 상당수는 자신의 친일반민족행위를 숨기기 위해 공훈록 및 묘비 내역에 1945년 해방 이전의 행적을 기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끄러운 행적을 기재한 이들도 많았다. 김동하(1941년 만주 신경(新京)육군군관학교 졸업), 김석범(1937년 만주 군관학교 졸업), 김일환(1937년 중국만주 군경리학교 졸업), 박동균(1943년 하얼빈 육군군의학교 졸업(제7기), 석주암 (1936년 만주간도사관학교 졸업, 1939년 만주군관학교 졸업), 송석하(1937년 만주국 군관 양성기 관 봉천군관학교 졸업, 제5기), 신현준(1937년 만주 봉천 군관학교 졸업, 1944년 만주군 제8단 제6 연대장), 유재흥(일본 육군사관학교 졸업), 이한림(1940년 만주 신경군관학교 예과 입교, 1944년 일본육군사관학교 졸업), 최주종(1943년 만주 신경군관학교 졸업) 등이다.

또 이들 중 18명은 친일반민족행위자 문제가 공론화된 2001년 이후 안장됐다. 이중 3명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와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된 2009년 이후 안장됐다.

서훈이 취소됐지만 배우자를 이용해 안장돼 있는 사례도 있었다. 대전현충원에 안장돼 있다가 서훈 취소로 파묘된 사람은 서춘(독립장, 1963), 강영석(애국장, 1990), 김응순(애국장, 1993), 박성행(애국장, 1990), 박영희(애국장, 1990), 유재기(애국장, 1995), 이동락(애국장, 1990) 등이다. 하지만 강영석의 경우 부인과 함께 대전현충원에 합장돼 있다.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배우자에 대해서는 별도 규정이 없는 법을 악용한 사례다.

이들 단체는 “국립묘지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묘를 이장시키고, 향후에도 안장시킬 수 없도록 국립묘지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립묘지법 개정 전까지는 국립묘지에 안장된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안장 현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안장 사항을 널리 알려 국립묘지법 개정의 필요성을 알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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