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이올가 예천점 맹진호 대표

 

‘먹거리로 병을 키울 수도 있지만 먹거리로 병을 낫게도 한다’

맹진호 대표 “신상품이 들어오면 첫사랑을 만나는 것처럼 가슴이 막 두근거려요”

 

눈이 내리더니 어느새 이른 아침부터 자브작자브작 비가 내렸다. 그날은 웃음이 화사한 그녀를 만나는 날이다. 겨울이 봄을 부르는 시간이라 그런지 날은 푸했다.

인디언들에 의하면 ‘삼나무에 꽃바람이 부는 달’을 2월로 비유했다. 분주하고 짧아서 더 아쉽고 귀한 달, 바이올가(byORGA)에 가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한편에 곱게 쌓여 있는 책들이 눈길을 끄는 바이올가 맹진호 대표의 작은 사무실. 작년 한 해, 폭풍처럼 읽어 내려갔다며 미소 만개한 그녀의 모습이 귀엽기까지 하다.

‘사람은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노래를 듣고, 좋은 시를 읽고, 아름다운 그림을 봐야 한다’는 괴테의 말처럼 일상 속 독서는 그녀의 삶을 풍요롭게 했나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저런 화사한 웃음이 나올 수 있을까.

 

# 오늘 먹은 음식은 아이의 내일을 만든다. 올가맘의 이름으로 바른 먹거리를 운영하는 그녀

 

자리에 미리 내놓은 무농약 딸기와 고소하고 달콤한 유기농 과자 한 접시, 그리고 따뜻한 차를 건네는 통에 감성적으로 빠지던 필자의 정신이 화들짝 제자리를 찾았다. 거리엔 비와 함께 간간히 바람이 불었고 그녀와 마주한 사무실에는 어느새 켜 놓은 전기난로 덕에 따뜻함이 감돌았다.

곱게 붙여진 포스트가 눈에 들어온다. 유기농 먹거리 바이올가(byORGA). 오늘 먹는 음식이 아이의 내일이 된다. 지금 먹는 음식이 아이의 내일이 될 것을 알기에 무엇을 먹일까, 어떻게 먹일까, 고르고 또 고르는 바이올가. 엄마 맘을 담아 올가맘의 이름으로 바른 먹거리를 추천한다는 내용이다. 매장을 한 바퀴 돌러 보니 아기자기하면서도 착한 식품들이 손님들을 기다리며 얌전히 앉아있었다. 생활용품부터 채소, 과일, 영양보조식품, 과자까지, 말 그대로 만물백화점이다. 그것도 친환경 유기농 재료를 사용한 믿을만한 것들로 꾸며진 그녀의 보물창고.

 

# 불경기를 모르는 이유는 “태어나서 가장 열정적으로 일에 매달린 덕분”이라고 담담히 말하는 맹 대표.

 

친환경에 목말라하는 푸드 마니아들에게는 이미 입소문을 타고 명소로 자리 잡고 있는 곳 바이올가(byORGA). 오전이라 그런지 연신 주문 전화가 울린다.

“3만 원 이상이면 배송도 해줍니다. 오늘처럼 이른 시간에는 주로 주문 전화예요.”

“불경기라고 난린데 여기는 전혀 그렇지 않네요?”

“그나마도 다행이죠. 저도 이만큼 되기까지는 경험 없이 시작해서 죽을 고생을 했답니다(웃음). 지금이야 아침에 와서 차도 마시고 음식도 먹죠. 처음에는 일 자체를 몰라 굶어가면서 했지요. 컴맹인데다 포스도 전혀 모르고. 아무튼 무턱대고 용감했습니다(웃음).

처음 1년 6개월은 실수투성이였어요. 그러다 2년 정도 지나니 그때서야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더군요.”

“아니 어쩌다 이런 매장을 운영하게 되셨어요?”

궁금했다. 여성의 몸으로 가장 쉽게 접근하게 된 계기가. 그녀는 잠시 동공이 흔들리며 앞에 놓인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갑자기 쏴한 공기가 사무실을 휘돌았다. 그러다 그녀는 눈을 들어 필자를 건너다 봤다.

 

#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듯 지난 얘기를 담담히 풀어내는 그녀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과거로 돌아가야 되네요. 저는 종갓집의 4남2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습니다. 서산에서 초·중·고를 모두 나왔죠.”

연어가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 듯 그녀는 그동안의 사연을 차분히 쏟아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취하는 오빠에게 밥을 해주다보니 몇 년이 훌쩍 흘러가 버렸어요. 그동안 사회생활 한 것도 아니고, 누굴 만나서 교류를 한 것도 아니고, 나이는 이미 들어차 시집 갈 나이가 되었고, 그렇다고 안 해 본 사회생활도 그때 나이에 하기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고.... 아무튼 청춘의 시기를 무의미하게 보낸 것 같아 많이 속상해 하고 있던 찰나에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도피처처럼 시골에서 축산업을 운영하는 사람과 결혼을 한 맹진호 대표. 지금 같은 성격과 행동이었다면 그렇게 쉽게 결혼을 감행하진 않았을 거라고. 아니 상상도 못했을 일이라며 이미 식은 찻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 남자들도 힘들다는 양돈 일을 여자의 몸으로 하다 보니 신체적,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갔다.

 

“처음 남편을 봤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남자를 만나면 나도 한번 죽어라고 일 할 수 있을 것 같아. 어쩌면 나를 바로 세워줄지도 몰라.’ 자격지심도 열등감도 심했던 제가 아마도 어딘가에 매달리고 싶었던가 봐요. 그만큼 일에 대한 갈증도 심했구요.

그런데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양돈 사업은 난관들이 많았습니다. 주변 여건도 그렇고 환경도 받쳐주지 않았죠. 무엇보다 사건·사고가 많았어요. 남자들도 힘들다는 거친 일을 여자의 몸으로 하다 보니 신체적, 정신적으로 굉장히 좋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시골에는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대화 상대가 없으니....어느 날부터인가 심한 우울증이 서서히 저를 덮쳤죠. ‘나는 누구인가?’ 내가 누군지 알고 싶었습니다. 문을 열고 밖을 보면 먼 산이 운무에 쌓여 저를 물끄러미 내려다봐요. 그냥 움찔 뒤로 물러서곤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기도 참 많이 울었어요. 진퇴양난이란 말을 붙여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마른 침을 삼키는 그녀 앞으로 필자는 딸기 접시를 살포시 밀어놓았다. 밖에는 이미 비가 그쳤고 히터에서 나오는 열기만이 사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 정신적으로 힘든 사람에게는 작은 위로가 얼마나 간절한지...

 

“엄마라는 이유만으로도 시골에서의 삶을 견뎌내야 했지만 상황이 갈수록 좋지 않았습니다. 어느 시기가 되니 회오리바람 같은 것이 저를 휘감더군요. 다른 일과는 다르게 양돈 일은 부부가 같이 해야 금상첨화라고 제 스스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 몸이 아프니 차라리 남편의 직업을 바꿔주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죠. 우울증은 더 심해졌고 급기야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습니다. 안되겠다 싶어 어느 날 남편에게 ‘이제는 뭐라도 좀 하고 싶다. 아니 해야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갈수록 대화가 줄어들었고 그러다보니 어색한 시간이 길어지면 질수록 골이 더 깊어져 갔다는 맹 대표.

“여자는 때로 남편에게 위로 받고 싶잖아요. 왜 다른 직업을 원하는지 물어봐주며 잠시라도 다독여 줬더라면 자연스럽게 우울증도 풀렸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도 들어요. 일단 그런 것이 되지 않으니 제가 더 강해지대요. 엄마의 변해버린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일단 자랑스럽지 않은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엄마로서도 못할 짓이데요.”

마지막 말이 메아리가 되어 사방으로 부서졌다. 기자는 같은 여자로서 그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것 같았다. 특히 정신적으로 아플 때는 작은 위로라도 받고 싶을 때가 의외로 많으니까.

 

 

#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그녀 앞에 복병처럼 나타난 지난날의 상처

 

결국 그녀는 23년의 결혼생활을 마무리하고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기술을 가진 것도 아니고,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닌,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식당밖에 없었다. 그때 읽은 책이 김승호 작가의 ‘김밥 파는 CEO’. 영업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그것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는 맹진호 대표.

지금의 올가 터에 식당을 오픈하여 2년 동안 죽어라고 매달렸다. 하지만 막연하게 생각했던 요식업을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기고 나니 그제야 현실감이 왔다는 그녀.

“뒤늦게야 알았습니다. 축산업에 매달릴 때 아마도 강박관념 같은 것이 생겼다는 걸. 돈사는 대부분 밀폐형이에요. 그러다보니 갑자기 전기가 떨어진다거나 화재가 나면 돼지들이 안에서 집단 폐사가 되지요. 축사가 전소되는 건 말할 것도 없구요. 그런 것들이 저를 통제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기자님도 아시다시피 식당에서 가스와 전기는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관계잖아요. 그런데 가스 불을 본다던가, 전기를 보면 문득 폐사 생각과 동시에 ‘화재가 나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이 드는 거예요. 한 번씩 갑자기 말이에요. 시간이 지나면서 그 현상이 좀 더 심해지대요. 안되겠다 싶어 병원에도 다니고 여기저기 좋다는 곳도 찾아갔지만 특별히 병명을 찾지 못했습니다. 답답한 시간을 보냈죠.”

 

 

# 바이올가(byORGA)를 접하면서 내면의 나쁜 것들이 해소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맹 대표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문득 제 속이 ‘어쩌면 시커먼 숯검정으로 변해있지 않을까?’하는 뜬금없는 생각이 든 겁니다. 마음이 분주해졌죠. 뭔가 저를 살려놓고 싶었어요. 그때부터 무작정 발품을 팔았습니다. 서울, 대전, 천안 등을 다니며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뭘까?’ 업종을 다시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만났던 것이 바로 바이올가였어요. 왠지 친환경 사업을 하게 되면 제가 가지고 있는 ‘불안한 것들’이 해소될 것 같았거든요. 일단은 정신적인 부분에서 접근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딘가에서 ‘먹거리로 병을 키울 수도 있지만 먹거리로 병을 낫게도 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것이었죠. 더 매력적인 건 가치나 운영방식이 저랑 딱 맞았습니다. 그때부터 빠른 속도로 애정이 생기더군요(웃음).”

 

# 신상품이 들어오면 첫사랑을 만나는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그녀

 

“올가를 운영한지 4월이면 3년이예요. 감사하게도 우리 제품을 참 좋아들 해주세요. 특히 애기 엄마들이 먼저 알아봐주시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에 뿌듯함도 있구요.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좋아해주지 않을까요.”

“유기농 재료로 만든 바른 먹거리 바이올가(byORGA)는 내추럴하우스란 평가답게 일곱 가지의 약속을 철저히 지키고 있거든요. 먼저 친환경 식품을 취급한다는 거죠. 요즘 대두되고 있는 GMO 및 방사선 조사 식품은 전적으로 취급을 금지합니다. 동물복지 제도를 통한 윤리적이고 안전한 축산물, 환경 친화적 포장재를 사용하는 것도 우리 올가예요. 식품첨가물의 사용을 엄격하게 제한하구요. 항생제 및 성장호르몬으로부터 안전한 육류와 수산물, 원산지 이력정보 확인 원료 사용 등의 원칙을 철저하게 준수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소비자들이 먼저 러브콜을 보내면서 지속적인 신뢰를 보여줘요.”

신상품이 들어오면 첫사랑을 만나는 것처럼 가슴이 막 두근거린다는 맹 대표. 그만큼 올가가 변화,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했다. 요즘은 온전히 한 몸이 되었다는 생각과 함께, 자신이 바라던 “어떤 경지에까지 올라온 거 같아 기쁘다”며 소감을 전했다.

 

 

# 지역 맘카페 ‘서산맘홀릭’ 개설을 앞두고 있는 그녀, 카페 맘들과 로컬푸드 간에 서로 협력하는 곳으로 만드는 것이 바람

 

마지막으로 그녀는 우리 지역 엄마들이 자유롭게 일상을 나누는 지역 맘카페 ‘서산맘홀릭’ 개설을 앞두고 있다.

“공부를 하다 보니 서울에서도 우리 지역 생산품을 원하고, 우리 지역 로컬푸드는 또 판로처가 필요하고. 저는 ‘서산맘홀릭’이 맘들과 로컬푸드 간에 서로 협력하는 곳으로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또한 제가 누군가를 간절히 필요로 했을 때처럼 누군가에게도 저의 존재가 필요할 것 같단 생각이 들거든요.

3월 1일자로 (서산맘홀릭)오픈 예정인데 이미 소상공인들이 속속 입점하고 있어 행복합니다. 작지만 편안한 카페로 서산 분들께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녀의 나이 이제 53세.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많은 그녀는 “바른 먹거리로 대한민국 모든 분들이 건강했으면 좋겠다”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기자 또한 "일상 속에 스며드는 사람의 향기로 고단한 분들에게 풍요로운 미소를 전해주는 바이올가 맹진호 대표이기를 바란다"라고 인사말을 남겼다.

저작권자 © 서산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