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건우산양삼 농장 최상임 대표
상태바
【인터뷰】 건우산양삼 농장 최상임 대표
  • 최미향 기자
  • 승인 2019.02.13 13: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건우산양삼 농장 최상임 대표

 

최상임 대표, ‘부모님이 드시는 산양삼’을 키운다

“약 한 첩 드시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지...이제 그런 분은 없어야”

 

인터뷰 들어가기 전

 

서산시 대산읍에서 산양삼을 재배하는 최상임 대표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날은 매서운 2월의 삭풍과 바다풍경이 어우러지는 운치 있는 날이었다. 솔가지와 나목이 어우러진 숲길에 한소끔 바람이 흩날리더니 나뭇가지 끝에 짙은 겨울 햇살이 잔뜩 몸을 움츠리며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최 대표와의 호젓한 만남은 갑갑한 일상에서의 탈출이라고 할까. 그녀는 무늬가 고운 망토를 걸치고 밝은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기자를 맞아주었다.

 

# 갯바람을 맞으며 자라는 산양삼을 아십니까?

 

‘웃음이 참 곱다’라고 생각했다. 산양삼을 드셔서 그런지 연세에 비해 어려 보인다고 하자 그녀는 입을 가리며 부끄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것저것 챙겨주는 배려의 손길에 “맏이신가 봐요? 큰언니처럼 따뜻한 걸 보니”라는 기자에게 “대산에서 9남매 중 홍역으로 네 명의 형제를 잃었어요. 살아 있는 형제 중에서는 제가 막내예요.” 갑자기 휑한 분위기에 멋쩍은 웃음만 서로 교환했다.

“병으로 많은 형제들을 잃다보니 건강을 생각해서 혹시 고향에 산양삼을 심으신 건 아니냐?”고 묻자 “아니라고 할 순 없어요. 하지만 다른 지역보다 고향을 택한 것은 우리 서산에는 천혜의 보고 갯벌이 있지 않습니까. 이런 곳에 농사를 지으면 미네랄이 많아 농작물이 아주 튼실할 것 같았어요. 더군다나 삼의 생명은 일조량과 낮밤의 격차 아니겠습니까. 여기는 그게 딱 맞더라구요.”

“그리고 우리 집 산양삼은 조선소나무 아래 씨앗을 뿌려 약성이 다른 곳보다 아주 강하고 열매가 달다고들 해요. 한마디로 영양분을 자연에서 바로 섭취하는 거죠.”

“요즈음 유명세를 떨치다 보니 농장 전체를 사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안판다고 했더니 그럼 삼을 모두 달라며 찾아오기도 하고요(웃음). 그것도 ‘죄송하지만 안 된다’고 했어요. 그러면 꼭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 줄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유혹은 달콤하지만 과감하게 거절을 했습니다.”

 

 

# “태초의 인간은 모두 농부였어요. ‘농자천하지대본야(農者天下之大本也)’라는 말도 있잖아요”라며 농사짓는 사람이 곧 천하의 근본임을 강조하는 최 대표.

 

“제겐 하나의 신조가 있는데 그건 바로 ‘건강한 먹거리 생산’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저는 (산양삼)심을 때는 늘 토양검사를 하지요. 토질이 일단 좋아야 하거든요. 씨앗도 모종도 판매도 모두 인증을 받습니다. 말 그대로 정품인거죠. 그래야 효능을 제대로 얻지 않겠습니까? 고전 문헌이나 일련의 의서들을 보면 산양삼에 대한 효능이 가히 만병통치 수준입니다. 동의보감, 의방유취, 본초강목, 향약집성방 등에서는 ‘인삼은 혈압을 올리고 내리는 양면효과가 있고 비와 폐의 양기부족을 낫게 하며, 오감의 기분을 좋게 하고, 신경을 안정시키며, 안구를 밝게 하고 심기를 제거하고, 설사를 치료하며 장수하게 한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또한, ‘약의 독을 풀고, 음식의 소화를 잘 시키며 원기를 돋우고, 폐의 기능을 가능하게 하며 종양을 없애고, 비위를 강하게 한다’라고도 기록되어 있지요. 인삼이 이 정도니 산양삼은 오죽하겠습니까. 산양삼을 먹고자 하는 분들은 대부분 어디가 안 좋으신 분들이거나 건강을 위해서 드시지요. 그런데 토질검사도 하지 않고 그냥 심어서야 되겠습니까. 저는 어디까지나 제 ‘부모님이 드신다’는 생각으로 재배를 하고 있습니다.”

 

# 어느 날 갑자기 부모님을 모두 잃은 최 대표. “약 한 첩 제대로 드시지 못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그 기억만 하면 지금도 가슴에서 물소리가 나요.”

 

염전을 운영하셨던 아버지는 사업 확장을 하다 부도를 맞았고, 이로 인해 얻은 화병으로 변변한 약 한 첩 드시지 못한 채 그녀의 나이 일곱 살 때 세상을 떠났다. 거처할 곳이 마땅치 않았던 그녀는 그길로 어머니와 함께 대산읍 화곡리 움막집에서 근근이 생활을 꾸려나갔다.

“그래도 저는 힘든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움막집 생활은 누추했지만 그래도 곁에 엄마가 있어 행복했거든요. 일하러 나가는 엄마는 리어카에 꼭 저를 태우고 들로 나갔습니다. 아침 해를 보며 나간 우리는 저녁 해가 뉘엿뉘엿 기울 때 즈음 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엄마가 자꾸 ‘힘이 없다’시며 자리에 누우시더니 갑자기 세상을 떠나버렸습니다.”

“엄마가 없는 세상은 제겐 두려움 그 자체였어요. 이런 저를 형제들은 참 끔찍이도 챙겨주었지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엄마의 빈자리를 채울 수 없었습니다. 항상 엄마가 그리웠으니까요.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어리광을 부리며 엄마 팔베개를 하고 잤으니 오죽했겠습니까. 엄마 냄새를 맡으며 그렇게 안겨 잠을 잤는데 하루아침에... 그래도 돌아가실 때는 오빠들이 지은 번듯한 집에서 눈을 감으셨으니 그나마도 다행이었어요.”

울먹이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에 찬바람 한 줄기가 기자의 가슴을 스쳐 지나갔다. 기자는 갑자기 나이 차이를 무시하고서라도 최상임 대표를 꼭 안아주며 토닥여주고 싶었다.

 

# 군무원, 한양대학교 관리과를 두루 거치며 사회생활을 했던 최 대표. “하지만 남편의 사랑 앞에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현모양처로 돌아왔습니다.”

 

성남 공군부대에서 군무원 생활을 했고, 그 후 한양대학교 관리과에서 직장생활을 했던 커리우먼 최상임 대표. 기자가 “공무원이었으면 정년까지 근무하지 그랬냐”라는 질문에 “직장 때문에 오빠 집에서 생활할 때였는데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면서 제 영원한 직장을 찾게 되었습니다(웃음). 그때부터는 그 어떠한 것도 의미가 없더라고요”라며 과감히 직장생활을 포기하고 지금의 남편 품으로 돌아왔다는 그녀는 긴 시간 인터뷰 중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남편은 키도 크고 멋지게 생긴 남자였어요. 물론 제 눈에만 그랬겠지만요(웃음). 그는 오빠 친구 중에서도 가장 점잖은 사람 중의 한 명이었어요. 저는 그가 오는 날이면 가슴이 마구 뛰어 숨조차 쉴 수가 없었죠. 그러던 어느 날, 그만 우리 관계를 오빠들에게 들키고 말았습니다. 이에 사랑하는 그 남자에게 헤어지자는 편지를 보냈고, 저는 언니 집으로 피신을 했어요. 혹시 또 찾아오면 안되잖아요. 그길로 그는 군에 입대를 했습니다.”

“주로 언니 집 2층 창가에 앉아 그를 생각하며 창밖을 보곤 했습니다. 그날도 첫눈과 함께 간간히 오늘처럼 바람이 불던 날이었어요. 그때 저 멀리 바바리코트를 입은 사람이 머플러를 두르고 제 쪽으로 걸어오는 거예요. 몇 번이나 눈을 찡그리며 봤는데도 분명 그리워하던 그 남자였어요(웃음). 너무 놀라 창틀에서 내려오려던 순간, 가까이 다가온 그는 남편과 비슷하게 생긴 행인이었습니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지데요. 미치도록 그가 보고 싶었습니다. 그 길로 옷을 걸치고 군대로 면회를 갔고, 그와 다시 해후를 했습니다. 더는 헤어질 수 없더군요. 우리는 5년간 뜨거운 사랑을 했고, 형제들의 반대를 뒤로하고 결국 결혼을 했습니다.”

“요즘 우리 아이들을 가만히 보면 ‘나 참 결혼 잘 했다. 안 그럼 저 이쁜 것들을 어떻게 얻었겠어’라며 미소를 짓곤 해요. 제 눈에 콩깍지가 씌어도 정말 제대로 씌었지요?(웃음)”

 

# 시설재배를 하면서 생활에 부족함이 없던 그녀, 어느 날 문득 “제 어릴 적 움막에서 살던 것처럼 그렇게 열악한 생활을 하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 왔어요. 정말 큰 충격이었죠.”

 

최상임 대표 부부는 결혼을 한 후 인천으로 내려와 시설재배로 부족하지 않은 생활을 했다.

“당시 돈으로 1년에 약 2억 원씩 벌었으니 농사치고는 어마어마하게 벌었죠. 직원도 세 명이나 되었습니다. 평탄한 생활의 연속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이었는데 우연히 철거민들이 사는 여섯 평 내지 열 평짜리 집을 보게 되었어요. 그때 ‘아궁이에 불 못 뗀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는 푸념을 들었어요. 처음에는 그게 무슨 소린지 못 알아들었죠. 궁금해서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쌀이 없어 밥을 며칠째 못해 먹었다는 겁니다. 너무 놀랐지요. 그러면서 제 삶을 돌이켜보았죠. 저의 어릴 적 삶이 떠오르더군요. 그 길로 쌀, 수박, 갈비, 밑반찬 등을 만들어 철거민촌으로 달려갔습니다. 여기저기서 어린아이들이 나오더군요. 가슴이 뭉클하며 눈물이 핑 돌대요. 손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그 아이들 눈 속에는 제 어린 시절이 담겨있었거든요. 그때부터 쌀이 없으면 쌀을 팔아주고, 수업료를 못 내면 대신 내주기도 하며 살았습니다.”

최 대표는 그렇게 이웃을 챙기며 아픈 집을 찾아가 죽을 넣어주기도 하고, 혼자 사는 노인 분들을 보면 부모님 생각이 나 말동무도 해 드리곤 했다. 어쩌면 그녀는 ‘어릴 적 자신의 부모님이 약 한번 드시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이 못내 가슴에 맺혀 그랬을지도 모르겠다’고 기자는 생각했다.

 

▲ 한국임업진흥원 산양삼 연구과정 졸업식

 

# 아픈 사람을 위해서라도 고향으로 내려와 산양삼을 재배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그녀

 

그녀의 오빠 중에는 충북 괴산에서 40년째 인삼농사를 짓고 있는 분이 계시다. 어느 날, 인삼 씨앗 한 봉지를 손에 쥐어주며 그녀에게 먹으라고 했다. 귀한 것을 받으니 아깝기도 해서 소중히 품고 와 충남 대산에 위치한 자신의 임야에 여기저기 심었다. 어떤 곳이 활착이 잘 되고, 또 얼마나 잘 크는지 시험재배를 한 것이다. 그로부터 6년 후 “신기하게도 아주 잘 크고 있더군요. 그놈을 가져다 감기가 들거나 특히 피곤하고 아플 때 공복에 오래오래 씹어 삼켰지요. 그랬더니 (감기가)아주 가볍게 지나갈 뿐만 아니라 제 몸이 아주 건강해지더군요. 참 신기했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산양삼을 재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부모님처럼 약 한번 제대로 못쓰고 가시는 분은 없어야 되겠기에 어떤 사명감 같은 마음이 제 안에 있었나 봐요. 그것이 계기가 되어 산양삼을 재배한 지 벌써 17년이 되어가네요.”

최 대표에게는 산양삼으로 이어진 소중한 인연도 있다. “어느 날 지인이 ‘아가씨 한 명이 백혈병 진단을 받았는데 3개월 시한부 삶을 산다’고 하더군요. 병원에서는 이미 포기한 상태라며 참 안타까워했습니다. 그 얘기를 듣는데 저도 자식 키우는 부모라 그런지 가만히 있을 수 없대요. 혹시나 해서 산양삼 50뿌리를 비닐에 둘둘 말아 그녀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깔끔하게 포장해서 주면 혹여 부담이 되어 안 받을 수도 있잖아요. 건네주면서 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무료로 줄 테니 혹시 무슨 일이 생겨도 원망은 하지 마라.’ 병환중인 아가씨가 너무 고맙다며 고개를 숙이더군요. 그로부터 몇 개월 후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모님께 밥을 해 줄 정도로 건강이 호전되었습니다. 지금도 잘 살아가고 있는 그 아가씨를 볼 때마다 마음이 뿌듯해요. 만약 제가 그때 준 (산양)삼이 잘못되었으면 우리 기자님도 못 뵐 뻔 했습니다(웃음).”

 

▲ 건우산양삼 농장을 방문한 한국임업진흥원박사님들과 리더들

 

# 산양삼은 제대로 알고 드셔야 한다는 최 대표. 그녀는 앞으로 시민들이 자유롭게 드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마지막 꿈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먹는 것이 가장 효과가 좋으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공복에 오래오래 껌을 씹듯 드셔야 합니다. 아무리 잘아도 오래오래 씹어서 먹어야 모든 장기에서 골고루 흡수를 하지요”라며 제대로 먹는 방법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그녀가 가르쳐준 대로 기자도 찬찬히 눈을 감고 음미하듯, 기도하는 심정으로 잘근잘근 씹어 넘겨봤다. 쌉싸름한 맛이 혀끝에 닿아 위장으로 퍼져나갔다.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하고 싶은 꿈이 무엇이냐고 묻자 “모든 국민들이 자유롭게 드실 수 있도록 아주 멋진 꿈을 계획하고 있다”며 수줍게 웃었다. 아직은 준비단계라 무어라 말 할 수 없지만 준비되는 대로 기자에게 제일 먼저 알려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기자는 서해 바다의 선명한 빛깔과 하얀 포말의 청량감이 산양삼 속에 담겨있는 듯 그녀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내내 온 몸에선 흡족한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2월, 입춘이 지났음에도 미처 넘어가지 못한 맹추위 속에서도 몸과 마음이 흡족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그녀의 당찬 걸음에 늘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