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의 국가(정부)책임론

장애의 이론적 모델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장애의 원인을 개인적 책임으로 보아 장애의 사건을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발생 할 수 있는 한 개인의 비극적이고 열등적인 개인의 문제로 간주하는 개별적 모델(Individual Model) 과 또 하나는 장애의 원인을 사회적 책임으로 보아 장애인들이 사회주류에서 불필요한 존재로 소외되며, 사회참여로부터 배제되어, 편견과 차별이 악순환 되게끔 하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로 간주하는 사회적 모델(Social Model)이다.

인생의 과정에서 한 개인에게 닥치는 장애문제에 대한 책임의 소재는 두가지 모델에서 얘기하는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돌아갈 수 있으나, 흔히들 장애문제에 대한 복지적 접근의 초창기에는 개인적 모델에 근거하여 1차적 책임이 개인에게 있으므로 문제 해결 방식도 개별적으로 전문가의 서비스에 의존하는 소극적인 재활·치료서비스에 집중되었다. 그러다가 장애 문제에 대한 복지적 접근이 성숙해짐에 따라 장애의 책임을 사회의 구조적 편견과 차별에 근거를 두고 문제 해결 방식도 장애인들의 집단 행동을 통한 서비스 통제권 확보를 목표로 하는 적극적 사회 참여와 권리 쟁취로 발전하게 되었다.

장애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하는데 있어서 개인적 모델 방식과 사회적 모델 방식이 순차적으로 발전되어 왔다하더라도 한 장애인에 대한 원인 문제를 현재로서는 두가지 모델 모두를 동시에 적용시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두가지 모델의 장애 원인 분석을 좀 깊게 사고해보면 우리가 쉽게 간과할 수 없는 커다란 제3의 책임영역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다름아닌 바로 국가 또는 정부인 것이다.

우리나라 장애인구 중 선천성과 후천성의 비율은 통계에 따라 약간씩 다르게 나타나지만 후천성 장애인의 비율이 90%를 상회한다고 한다.

노화현상으로 인한 장애를 제외하고 한 국가의 후천장애인의 비율이 90%이상 이란 수치는 10명 중 9명 즉, 우리나라 장애인의 거의 대부분이 이유야 어찌되었던 후천성이란 의미이다.

그렇다면 90%를 상회하는 후천성장애의 원인과 책임을 반드시 개인 당사자의 비극적인 사건 또는 사회의 구조적 편견과 차별에만 국한하여 분석한다면 다소 이론적이면서도 단선적인 기분을 지울 수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한 개인의 후천적 장애에 대한 원인 문제를 개인 당사자의 실제적 책임과 국가(정부)란 실체에 대한 실제적 책임을 두고 구체적으로 논해 보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분석일 것이며 그에따라 도출되는 장애문제 해결, 즉 장애인 복지대책에 대한 책임문제 또한 합리적이면서 정당성 있게 파악될 것이라 사료된다.

몇가지 예를 들어 분석해보자.

첫째, 교통사고 장애인의 원인과 책임을 살펴보면, 교통사고 당사자 본인의 부주의, 과실, 음주 등의 문제로 야기되므로 개인적 책임으로 귀결될 수 있고, 한편으로는 국가의 교통안전시설 정비 및 설치부족, 도로시설 및 사정의 미비, 교통안전 홍보교육 부족, 음주단속의 소홀 등으로 사고가 유발 될 수 있으므로 국가의 책임소재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둘째, 장애아를 출산하게 된 산모의 경우 유전적 요소도 있지만, 임산부 자신의 무절제한 사생활(담배, 술, 약물 등)과 임신 및 출산에 대한 미비한 지식으로 인하여 장애아를 출산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국가 사회의 불평등 구조와 경제정책 실패로 인하여 가정의 불화가 생기고 그로인해 술과 담배를 접하게 되거나, 빈곤에 의한 영양실조, 임산부에 대한 홍보교육 부재 등으로 장애아를 출산하게 되었다면 이것은 고스란히 국가의 책임으로 돌아가게 된다.

셋째, 각종 재해, 재난에 있어서는 개인의 책임도 있지만, 국가의 책임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대구 지하철 참사,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성수대교 붕괴사고, 태안 원유 유출사고, 심지어 최근 세월호 참사까지 지속적으로 발생하며 대한민국 현대사를 부끄럽게 장식하고 있는 대형 재난 사고를 예를 들어보자. 이러한 대형재난사고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사망자에게는 국가차원에서 충분한 관심과 배려에 이은 충분한 보상, 배상이 전제되어야 함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재난사고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생존자 대부분이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입어 지금까지 심각한 후유증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이 장애인들의 장애 원인을 개별적 모델에 적용시켜 개인적 책임으로 돌린다면, 해당 피해 장애인들 개인의 불행한 운명적 사건이라 할 수 있지만, 이러한 대형재난 사고의 궁극적 책임이 국가 또는 정부의 안전관리시스템의 미흡, 행정과 정치의 부정·부패, 무능한 행정력, 정치력 등에 의한 국가 또는 정부의 총체적 통제력 부족에 기인한다고 볼 때 장애의 책임은 당연히 해당 국가, 정부에 있는 것이다.

쓰나미와 지진과 같은 대형 자연재해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인재에 의한 대형재난이 아닐지라도 쓰나미와 지진에 대한 대처 및 대비 방안이 부족하거나 경보시스템이 미흡하게 작동했을 때 해당 자연재해로 인한 사망자뿐만 아니라 해당재해로 인하여 불행하게 장애를 입은 피해자들에 대한 책임은 엄연히 국가 또는 정부에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수많은 사례들이 있지만, 이상으로 볼 때, 우리나라 전체 장애인구의 90% 이상이 후천적 장애인이고, 후천적 장애의 원인을 깊게 파고 들어가면, 그 책임소재에 있어서 분명 개인의 운명적 또는 과실적 책임도 있지만 정부와 국가의 책임이 휠씬 크게 자리 잡고 있음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결국, 장애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후천 장애인의 책임 원인이 국가와 정부에 있다고 할 때 그 국가와 정부는 해당 장애인에 대하여 사고의 성격에 따라 국가, 정부가 배·보상해야 할 유형이 있고, 배·보상을 하지 말아야 할 유형이 있지만, 배상·보상을 떠나 국가, 정부가 전체 후천 장애인들에 대해선 공통적, 보편적으로 장애인복지제도를 통해, 충분한 사회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당위성이 있다.

그리고 장애의 국가·정부 책임론의 중요성은 해당 후천 장애의 원인과 책임을 철저히 규명하고, 분석함으로써 후천 장애에 대한 예방의 중요성과 국가와 정부의 안전관리 기능 및 정치·행정 시스템의 발전을 고양시킬 수 있으므로 더욱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그나마 현재까지 군사원호 대상자들과 산업재해 대상자들에 대한 사회보장 대책은 그 장애의 원인과 책임이 국가에 있다고 간주하여 의료 및 각종 사회복지서비스, 소득보조 및 사회보험을 통하여 급여와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지만 이 또한 보다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장애인 복지제도는 198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도입, 1990대를 거치며 장애인 권리보장의 틀이 마련되었고, 200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어내었다. 하지만 아직도 OECD(2009)의 2007년도 기준으로 볼 때 GDP대비 0.6%로 OECD 평균 2.1%에 크게 못 미치며 최하위권(OECD)에 머무르고 있으며, 그나마 2007년 이후 장애인 활동지원제도 도입과 장애인연금 도입으로 크게 상승되었다하더라도 다른 OECD 국가의 장애인복지 예산과 비교할 때 여전히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논의한 장애에 대한 국가·정부 책임론을 깊게 인식하여 OECD 평균수준으로 장애인복지 예산을 늘려가야 한다.

이에 따라 국가와 정부는 우선 이시간에도 광 화문에서 눈비 맞으며 900일 동안 풍찬 노숙을 하며 시위, 농성하고 있는 장애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요구사항을 빠른 시일 내에 합리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부양의무제 폐지”. “활동보조 2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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