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서대학교 설립자 함기선 총장

최미향 기자l승인2019.01.30l수정2019.01.30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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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서대학교 설립자 함기선 총장

 

나병환자 치료에서 성형분야 권위자로...‘언청이의 아버지’로 불려

의사에서 대학설립자로...“교육은 내 인생 최고의 도전이자 서비스”

 

>> 인터뷰 들어가기 전

 

겨울날씨 치고는 제법 봄볕 같은 햇살이 창가를 비추는 오후 3시, 멀리 자미원이 내려다보이는 총장실에서 한서대학교 함기선 총장을 만났다.

첫 만남의 마중물은 최근 수능생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는 항공학과를 가진 한서대답게 항공에 대한 이야기였다. 한서대는 2018년 9월 수시모집에서 13.42대 1로 충청권에서 가장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그중 일반전형 27명을 모집하는 항공관광학과는 3,143 명이 지원 116대 1(사회기여(배려)자 특별전형 107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 한서대는 2018년 9월 수시모집에서 13.42대 1로 충청권에서 가장 높은 경쟁율을 보였다. 그중 일반전형 27명을 모집하는 항공관광학과는 3,143명이 지원 116대 1(사회기여(배려)자 특별전형 107대 1)이라는 가장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1940년 늦은 봄날, 6남매 중 장남으로 세상에 태어난 함 총장. 그는 꿈을 향해 꾸준히 나아간 성실한 학생이었다.

 

“(충남)예산중학교 시절, 무궁화 꽃의 아버지 유달영 박사님이 강연을 하시는 도중에 창밖을 보시면서 환한 웃음을 지으시는 겁니다. 학생들도 덩달아 일제히 눈길을 돌려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죠. 눈길이 머문 곳은 교장선생님이 경사가 가파른 산에 사과나무를 심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때 박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저기를 보세요. 저런 곳에 과수농사를 지으면 저게 바로 부자의 첫걸음이 됩니다. 산은 평지보다 1/10 값으로도 매입할 수 있잖아요.’ 그 말씀이 제 꿈을 깨웠습니다. 당시 사과나무 한 그루는 자녀 한 명을 대학에 보낼 수 있는 목돈이었지요. 저는 속으로 외쳤습니다. ‘그래 내 꿈은 지금부터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과수농장을 하는 거야.’ 그 꿈을 갖고 예산고등학교 과수 원예과에 1등으로 입학을 했습니다. 왜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제대로 된 꿈 하나는 자신에겐 천군만마다.’” “이듬해 겨울 방학 때였나요. 비료가 없던 시절, 어린 농부가 꿈이었던 저는 동네 아이들의 똥, 오줌을 퇴비로 쓰려고 커다란 통에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정도 양이 차고 시간이 지나 발효가 되었을 때 그놈을 나무에 주려고 똥지게로 짊어졌어요. 그런데 걸을 때마다 흔들리면서 제 옷에 똥물이 튀는 겁니다. 여러 번 하고나니 나중에는 옷에 묻은 냄새가 베어 아무리 빨아도 없어지지가 않아요. 그것을 여러 번 하고나니 자꾸 자신이 없어지대요.”

 

“너희 엄마 안 아프게 해줄게. 울지 마.”

친구와의 약속을 지킨 ‘의사의 길’

 

프랑스령 적도아프리카의 랑바레네에 병원을 개설한 의사면서 동시에 선교사로서 인류애를 실천한 사람 얘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졌다는 함기선 총장.

결정적인 순간은 비켜가지 않고 또 한 번 찾아왔다. 그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다.

당시 그의 옆집에는 혼자된 할아버지와 며느리 그리고 아들 둘이 살고 있었다. 작은 아들은 함 총장의 친구이기도 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혼자된 며느리의 배가 점점 불러오는 것이었다. 동네사람들의 수군거림과 의심의 눈초리. 급기야 친구 어머니는 억울함을 호소했고, 그 길로 병원에 가서 진료를 했는데, 배가 부른 이유는 바로 난소 안에 있던 물혹 때문이었다.

수술하는 당일, 친구를 위로해주다 무심코 시골 병원 창틀에 매달려 수술하는 장면을 함께 목격하게 되었다.

피 범벅인 배에서 나온 항아리만한 물혹! 친구도 울고 함 총장도 울었다. 그때 그는 울고 있는 친구에게 이런 약속을 했다. “내가 너희 엄마 안 아프게 해줄게. 울지 마.”

그는 약속을 지켰다. 수도의과대학(지금의 고려대학 교) 의대에 30대 1의 경쟁을 뚫고 당당히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농고 학생이 의대에 입학한 것은 정말 보기 드문 현상이었다. 대부분 의대는 의사 집안의 자녀들 이거나 부잣집 아이들이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잘난 친구들 사이에서 얌전히 공부만 하던 함 총장은 방학 이면 고향 예산에 내려가 제일 큰 병원에서 낮에는 원장님을 돕고 밤에는 임상에 대한 공부를 했다. 이 공부는 나중에 소중한 경험이 됐다.

의대를 졸업하고 곧바로 대학원에 입학 했다. 석사2 학기가 끝나는 날, 동시에 세계보건기구의 지원을 받는 말라리아 근절 팀에 지원서를 냈고, 이후 전남 여수 보건소로 발령을 받아 서울을 떠났다. 어릴 적 꿈은 무료하고 단조롭고 반복되는 진료와 함께 퇴색되어갔다.

 

▲ 한서대, 대한적십자사와 사회공헌협약 체결에 따라 양 기관은 인도주의 운동의 확산을 위한 공동연구와 조사, 교육지원 및 교류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박경서 회장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외국인 장학생 프로그램 운영, 긴급혈액 항공수송 및 헌혈 참여 등의 인도주의 활동을 적극 펼쳐오고 있는 함기선 총장에게 무한한 존경과 감사를 표한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알게 된 나병환자들의 집단촌. 당시 애양원에서는 닥터 토플이라는 외국인 의사가 나병 환자들의 ‘살고자 하는 몸부림’에 빛과 소금 역할을 선사하고 있었다.

 

함 총장은 나병 환자들의 수술을 돕게 해달라는 소청이 받아들어졌다. 처음 애양원에 도착한 날은 지금 생각해도 잊을 수 없다고 그는 말했다. 나병균이 건강한 피부에 옮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막상 험악한 얼굴을 가진 이들과 악수하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하지만 워낙 정에 굶주린 데다 새로운 의사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그들은 날마다 가슴 품에 새로 낳은 달걀을 넣어와 그에게 전해 주었다. 뭔가 찜찜했던 그는 그렇다고 먹지 않을 수도 없는 형편이라 그들이 보는 앞에서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날달걀을 치아에 톡 깨뜨려 쪽 빨아먹었다. “한 삼일 그렇게 먹고 나니 무감각해지더라고요. 때로는 푸성귀에서 과일에 이르기까지 저를 챙겨주는데 나중에는 친형제처럼 가까워 졌죠. 한 상에서 밥도 같이 먹고 이야기도 나누며 함께 웃고 울었습니다. 그들은 운이 없어 걸린 나병으로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사회에서 격리되어 있었지요. 괜히 속상하고 짠해서 푸념 아닌 푸념도 서로 해주곤 했습니다.”

 

함 총장은 굽어진 환자들의 손가락을 펴주고, 눈썹이 없는 그들에게는 눈썹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사실 나병을 앓는 사람은 실제 질병보다 외모 때문에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 무엇보다 그들이 애써 키운 야채는 나병환자들의 손길이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했다.

함 총장이 애양원에서 본 닥터 토플은 그의 수술로 인해 이미 병이 나은 나병 환자를 조수로 두고 모근이식 시술을 하는가 하면, 굽어진 손가락을 펴주어 정상인의 삶으로 회생시켜주는 소중한 일도 하고 있었다.

“처음 그곳에 간 이유는 닥터 토플의 기술을 배우고자 갔습니다. 하지만 그의 헌신적인 사랑에 크게 감명 받았지요. 그것은 곧 의사로서의 지향점을 잃고 흔들리던 당시의 제게 일종의 정신적 충격이었습니다.”

 

▲ 한서대, 글로벌워크 리더십캠프 : 국적과 문화를 초월하고 소통을 통한 세계 젊은이들의 글로벌리더십 개발을 위해 2005년 “한서대 국토순례”로 시작된 이 행사는 2014년부터 외국인 대학생들의 참여가 확대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명칭과 내용이 변경됐다.

 

애양원 이후 성형이라는 새로운 학문에 매달린 함 총장. 그는 우리나라 성형외과 의사 제1세대 ‘언청이의 아버지’로 불리게 되었다.

 

함 총장은 우리나라 성형외과 의사 제1세대다. 한때는 식사도 거른 채 수술을 집도했고 결국 힘이 빠질 때서야 겨우 김밥 몇 줄로 식사를 때울 때도 있었다. “하루 종일 수술만 해도 밀려드는 환자를 미처 다 받을 수가 없었어요. 성형 수요는 나날이 늘어나는데 의사는 턱없이 부족했던 시절이었죠. 나중에는 기운이 소진되어 수술을 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사실 제가 더 바빴던 것은 병원 업무와는 별개로 일명 언청이 수술이 라고 하죠. 구순구개열 수술에 매달렸기 때문이기도 해요. 입술뿐만 아니라 때론 입천장이 갈라져 말도 할 수 없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그런 병을 고쳐주니 환자 들은 광명을 찾은 듯 기뻐했지요.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것은, 입천장까지 갈라져 말도 할 수 없는 아이들 에게 수술을 해주고 언어치료까지 도와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환자 부모님과 서울 시장님을 모시고 학예회를 했죠. 적십자 강당이 울음바다가 되어버렸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때 처음으로 언어치료가 도입 되었어요. 이 모든 것들은 결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대한적십자사와 손잡고 ‘언청이 수술사업’을 했던 거죠. 수술 후 달라진 아이들을 보면 대부분 눈물을 흘리며 기적이라고 좋아들 하십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도저히 (언청이 수술)손을 뗄 수가 없는 거예요. 이것은 전적으로 제가 좋아서 매달린 활동이었죠. 이런 활동으로 대한적십자사에서 2년에 한 번씩 주는 최고의 상까지 받게 되었구요. 가만히 돌이켜보면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별명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언청이의 아버지’라는 별칭이지요.”

 

개업의로 성공하고 많은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꾼 꿈은 ‘교육사업’

 

“개업의로 많은 돈을 벌게 되면서 또 다른 꿈이 저에게 생겼습니다. ‘한사람의 의사는 한정된 몇 사람의 생명만을 구할 수 있지만, 한 사람의 교육자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지 않은가’였습니다. 순천향대학과 인제대학 설립 과정에 일조를 했고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대학이란 문화에 젖어들었던 것 같아요. 나이 들어서는 대학병원에서 제자들을 가르칠 때 상당히 보람 있고 재미도 있었죠.”

그러나 대학설립이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니었다.

“막상 대학을 세우려니 많은 고민이 되더라구요. 현재 대한민국 대학들이 거의 똑같은 공부를 시키고 있잖아요. 저는 새로운 교육 서비스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학과를 만들 때였어요. 전국에 있는 모든 대학의 학과들을 모조리 책상위에 깔아 놓고 찬찬히 살펴봤습니다. 그랬더니 항공학과가 딱한 군데밖에 없어요. ‘아하 바로 이거구나’ 싶었죠. 경쟁 력이 있겠더라고요. 그때가 제 나이 47살, 한 개인이 대학을 설립한다는 것은 꿈도 실천도 상당히 어렵지 않겠어요? 특히 저 같은 시골 촌사람이 말입니다(웃음).

결국 제 나이 50에 대학을 세웠어요.”

“하지만 대학에서 어떻게 비행장을 가질 수 있었냐?”고 신기한 듯이 묻는 기자에게 함 총장은 “맞습니다. 쉬운 일이 아니죠. 타 대학에 항공학과가 있지만 아쉽게도 비행장이 있는 학교는 한서대학교 우리밖에 없어요. 이유는 법적인 여건이 까다롭기 때문이죠. 땅뿐만 아니라 하늘길이 없으면 비행장을 만들 수 없죠. 다행스럽게도 우리 한서대학교는 16년 전에 이미 그런 공간이 태안군 남면 쪽에 있다는 것을 당시 태안군 진태구 군수님께서 말씀해주셨지요. 한마디로 행운이었습니다. 이 또한 지역사회의 협조를 얻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구요. 결국 ‘하늘은 뜻이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기회를 준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 한서대가 진취적 학문탐구를 위한 학생들의 배낭여행을 지원하기 위해 2016년에 시작한 특성화 교육 프로그램인 글로벌 프론티어 학문탐구 배낭여행 지원프로그램은 자기 계발과 도전정신을 동시에 고취시키려는 학생들에게 대단히 인기가 높다.

 

한서대학교를 명문대학 만들어, 후대로 넘겨주는 것이 ‘소망’

 

“지금 각 대학들의 실상은 암울합니다. 텅 비어있는 교실들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지요. 하지만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그럴수록 차별화된 분야를 가지고 대처해야지요. 평범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각 대학마다 작은 것에서부터 독특하게 디자인 한다면 학생들은 결국 그런 대학을 찾게 되지요.

이런 특성화된 것들을 발견하는 것이 곧 대학의 과제이기도 합니다.”

“유럽의 경우 대학의 역사들이 몇 백 년씩입니다. 지속성을 나타내려면 우리도 작으면서 강하고 독특한 대학이 되어야겠죠. 그리하여 400년 나아가 500년 역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요. 그런 의미로 저는 우리 한서대학교를 명문대학으로 가기 위한 초석을 다져 후대로 넘겨주는 것이 제 유일한 소망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습니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설 명절입니다. 아무쪼록 서산 시대 독자여러분, 새해 건강하시고 항상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최미향 기자  vmfms083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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