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에서 산화한 “우리들의 영웅”...서산지역 331인의 영웅을 기리며

6.25참전 전사·순직 서산지역 유공자 331명

올해는 1950년 발발한 6.25전쟁(한국전쟁) 65주년이 되는 해다. 군인들의 호적이랄 수 있는 병적기록부상의 6.25전사자는 모두 16만 명. 하지만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전사자는 13만 명 뿐.

철원평야 북쪽 효성산 395고지. 일명 백마고지 전투, 또 무려 8만 명의 희생자가 나왔던 철원 금성전투 등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참전용사들은 백발이 무성한 노인이 되었지만 그들의 가슴속에는 아침 이슬처럼 사라진 전우들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있다.

다리를 절단할 의료기구가 없어 일반 톱으로 수술을 하기도 했다는 장경옥 6.25참전유공자회 서산시지회장의 말을 빌면 그 참혹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직도 이름도 남김없이 산화한 수만 명의 영웅들을 찾지 못하는 죄책감이 남아 있지만 현재까지 등록된 서산지역 6.25참전 전사·순직 유공자는 331명이다. 유족으로는 전몰군경유족회 202명, 전몰군경미망인회에는 130명의 회원이 있다.

 

꽃다운 청춘 331인의 산화

6.25전쟁은 서산지역에 331명의 전사자를 남겼다. 대산읍 27명, 인지면 18명, 부석면 40명, 팔봉면 17명, 지곡면 23명, 성연면 9명, 음암면 28명, 운산면 27명, 해미면 31명, 고북면 1명, 부춘동 21명, 동문동 43명, 수석동 13명, 석남동 33명 등이 그들이다.

한 가정의 지아비이며, 소중한 아들이었던 꽃다운 청춘 331인의 전사소식은 1953년 휴전이후에도 전해졌다. 전쟁이 끝났음에도 멈출 수 없었던 남은 자들의 통곡. 그들에게는 65년이 흐른 지금도 잊히지 않는 상처로 남았다.

 

미망인들의 ‘청춘이 없는 인생’

 

3여년의 치열했던 민족상잔의 전쟁은 수많은 미망인(미망인은 ‘아직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란 뜻으로, 남편이 죽고 홀로된 여자를 이르는 말로 여권신장과 더불어 사용해서는 안 될 용어이지만 기록상 미망인으로 규정되어 편의상 사용함)을 남겼다.

1957년 보건사회부 집계에 의하면, 미망인의 수는 505,296명이었고, 자녀와 노부모 등 부양가족 수는 916,273명이었다. 이로 미루어 짐작컨대 전국의 미망인수는 대략 30만 명에서 50만 명 정도이고, 가장 체계적으로 조사가 진행된 1965년의 조사에 의하면, 1955년부터 1965년까지 미망인수는 50만 명을 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러한 미망인수는 1957년의 인구로 환산하면 여성인구 20명 중 1명이며, 20세 이상의 여자인구 만을 대상으로 하면 10명 중 1명에 해당한다.

6.25 전쟁미망인들은 전사일자와 장소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 채 전사자통보를 받은 경우가 많았다. 전선에 간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다가 받은 전사 통보는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전쟁미망인 대부분 자녀를 하나 아니면 둘을 두었다. 당시 보통 5~6남매 이상을 두고 있는 것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편이다. 이 또한 전쟁이 갈라놓은 가족의 모습이다. 남편이 전사하면서 유자녀로 태어난 자녀들도 많다. 아버지 얼굴을 모르는 자녀들이 그만큼 많았다.

남편 사진을 온전히 지니고 있는 경우도 많지 않다. 전쟁 통에 사진하나 챙길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미망인들은 자식만을 바라보며 온갖 고생을 마다않고 치열한 삶을 살아왔다. 심지어 전사한 남편이 자신 때문에 죽었다는 소리까지 듣기도 했다. 미망인들은 이런 억지와 수모를 견디며 남편 가족과 자식들을 키워야하는 운명에 놓였던 것이다.

전쟁미망인들은 ‘청춘이 없는 인생’들이었다. 꽃다운 나이에 남편을 잃는 비극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적어도 자식들이 편모슬하에서 자라 버릇없다는 소릴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미망인들은 억척같은 삶을 살지 않을 수 없었다.

 

서산지역 6.25참전 전사·순직 유공자(331명)

▶ 대산읍(27명)

구자천, 김고득, 김기동, 김석환, 김수근, 김영근, 김영석, 김예환, 김용근, 김용석, 김용희, 김정순, 김충재, 문석록, 방효진, 송영석, 유태석, 이두득, 이영제, 이용운, 임종순, 장석주, 장순민, 정구환, 정영화, 조동협, 최재형

▶ 인지면(18명)

가송길, 강관희, 기병화, 김낙진, 맹창섭, 성윤경, 시건석, 유정곤, 유창배, 유춘만, 이득주, 이육현, 이창기, 임병규, 임이재, 임종우, 최남진, 한만우

▶ 부석면(39명)

가재섭, 강명환, 강병지, 강장환, 김노희, 김동환, 김병길, 김재업, 김정환, 김종철, 김진섭, 김창제, 김형길, 배영우, 서남석, 심성흠, 유병구, 유병식, 유병희, 유영규, 유영생, 유제백, 유종균, 유진곤, 이광구, 이근구, 이명재, 이병규, 이신우, 이연구, 이진세, 이진영, 이천재, 임상용, 조민호, 조옥현, 조중현, 최병훈, 최석규, 유수진

▶ 팔봉면(17명)

강찬식, 김관수, 김선용, 김용제, 김윤재, 김종원, 박경의, 송기산, 안효영, 이기희, 이진하, 이필하, 이호영, 장석개, 조장산, 최울진, 최창석

▶ 지곡면(23명)

김동규, 김동숙, 김용호, 김종재, 박낙신, 엄태섭, 오석환, 유병운, 이갑순, 이권영, 이상내, 이상수, 이용호, 이은창, 이은철, 이친영, 조영호, 최병엽, 최울진, 최재흥, 최창호, 한임동, 홍승표

▶ 성연면(9명)

오세국, 최원중, 박홍원, 임성환, 김덕재, 홍은표, 최동환, 유수동, 이재문

▶ 음암면(28명)

김기섭, 김도환, 김동신, 김완성, 김종섭, 김진평, 박원창, 박태식, 신태복, 신태흥, 안상만, 유양기, 유영태, 이기상, 이도곤, 이도선, 이명하, 이병태, 이상헌, 이영태, 이육현, 이장순, 이재덕, 이현수, 조영호, 주오용, 진상순, 최용현

▶ 운산면(27명)

권영순, 김교삼, 김동오, 김동진, 김동현, 김상원, 김석제, 김준상, 김현길, 모철준, 박성규, 박윤동, 박정봉, 송윤덕, 안달관, 염달호, 윤병기, 이강은, 이덕재, 이동환, 이병돈, 이시우, 이정환, 장영종, 진예철, 한우덕, 허 훈

▶ 해미면(31명)

김재업, 김종갑, 김진돈, 박인근, 송기영, 심승옥, 심옥기, 심형기, 안희노, 유영환, 유제금, 이영산, 이영식, 이완교, 이장열, 이제준, 이종환, 이치환, 이환교, 임봉순, 정용해, 조병남, 조병운, 지성성, 지용섭, 최신근, 최진봉, 최천석, 최희동, 표용환, 한병하

▶ 고북면(1명)

김기대

▶ 부춘동(21명)

가설노, 강도복, 김승환, 김용기, 김용안, 김응춘, 문홍철, 박태현, 송연석, 심학구, 우기준, 원종군, 이규선, 이상희, 이원교, 이은귀, 이천홍, 임진우, 장순권, 조윤상, 최상학

▶ 동문동(43명)

공장순, 김남춘, 김도환, 김동순, 김동익, 김성호, 김영수, 김영옥, 김재호, 김태공, 박기석, 박원순, 박종선, 박한욱, 서제웅, 송석구, 신영근, 안희찬, 유흥권, 윤세권, 이내흥, 이덕재, 이동희, 이보갑, 이정욱, 이행운, 임장석, 임종순, 정석범, 정운식, 정증원, 조병운, 조영호, 조원윤, 조창현, 조한석, 조한윤, 진창국, 최천석, 표창진, 한광섭, 한만복, 한영호

▶ 수석동(13명)

강성용, 김기호, 김무득, 김정부, 백세균, 유병구, 유병태, 이상학, 이호준, 조성균, 조옥현, 조원상, 최천석

▶ 석남동(33명)

권성오, 김경식, 김덕용, 김세환, 김승규, 김용근, 김원배, 김원복, 김의제, 김희상, 박기안, 박창준, 박홍기, 방한준, 서남석, 송두복, 신양현, 신인현, 신재락, 심형기, 유병희, 유중석, 이강국, 이병석, 이선구, 이신자, 이완식, 임서영, 저정도, 조익호, 한상후, 함익환, 황규복

저작권자 © 서산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