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의 외주화가 낳은 사회

 

▲ 박두웅 편집국장

문재인 대통령은 8일 청와대에서 올해 첫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지난해 말 국회에서 통과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 비정규직 젊은이의 안타까운 죽음이 국민 모두의 가슴에 상처로 남았다”며 “사후에라도 법적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재발방지 조치를 철저히 하는 것이 그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생명보다 이익을 우선시하는 경영에서 벗어나,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고 특수고용노동자나 플랫폼노동 같은 고용을 안전망 속으로 포용하게 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구의역에서 꽃다운 나이에 스러져간 비정규직 청년의 사망사고에 이은 스물 셋 청년 김용균. 그의 죽음으로 인해 얻어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는 원청 업체가 위험한 작업을 하도급 업체로 떠넘기는 것을 금지하는 방안이 담겼다. 또 안전이나 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해 근로자를 사망케 하는 재범이 5년 이내 일어난 경우 2분의1 까지 형량을 가중 처벌하도록 했다.

그러나 김용균 씨 같은 억울한 죽음을 부르는 위험의 외주화가 과연 근절될 수 있을까?

먼저 개정안은 납이나 수은 등 유해한 중금속을 사용하는 작업의 사내 도급만 원천 금지 되었을 뿐, 고 김용균 씨가 했던 발전소 운영 하청은 여전히 도급 계약이 가능하다. 이번 개정안에서 빠진 정비 업무 근로자인 김용균 씨 같은 처지의 근로자는 여전히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또 원청 사업주의 안전 보건 책임 의무가 커지긴 하였지만, 인력 및 설비 운영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하청업체의 몫이라는 문제도 남았다.

기업과 사업주가 외주를 놓지 않으려는 것은 일차로 경제적 이익 때문이다. 그러나 외주를 포기하지 않는 것은 경제적 이유에 한정되지 않는다. 더 근본적인 원인으로 찾아 들어가보면 책임의 외주화라는 왜곡된 사회정치적 인식과 규범에 있다. 책임의 외주화는 법률적, 제도적 책임에 대한 것이다. 누가 처벌을 받을 것인가 또는 배상은 누가 해야 하나 등이 이에 속한다.

지방정부가 쓰레기 처리를 민간업체에 위탁하면, 주민들이 인식하는 쓰레기 처리의 책임은 민간업체로 이동한다. 결국 불만과 민원은 민간업체로 향하고, 잘하고 못한 것을 업체에 따지게 된다. 여기에서 책임질 일이 발생하면 정부는 다음에 더 나은 민간업체를 선정하겠다는 식으로 책임을 피하고 뒤로 숨을 수 있다.

책임의 외주화는 책임에 대한 인식 대상을 바꾸는 것이다. 미국의 법학자인 버커일(Paul R. Verkuil)은 이런 과정을 ‘주권의 외주화’라고 불렀다. 인식과 권력까지 외주화하면 원청은 위험, 사고, 죽음의 법률적, 제도적 책임뿐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책임에서도 자유롭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하청에 하청으로 이어지는 책임 떠넘기기는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에게 도달되어야 멈춘다. 모든 잘못은 개인에게 있다는 죽음의 외주화가 자행되는 사회다.

새해 첫 주말인 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고(故)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50)씨는 “죽음의 외주화 멈추기 위해 이제 우리 모두가 나서야 할 때다. 지금 절실한 심정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우리의 아들딸도 그리고 후세들도 일하다가 처참하게 죽어갈 수밖에 없다”고 부르짖었다.

한편,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국회 재적의원 185명 중 찬성 165표, 반대 1표, 기권 19표로통과됐다.

 

 

저작권자 © 서산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