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단 ‘서산’ 정수정 대표

 

“연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운명 같아요!”

“지역 이야기를 모아 사람 냄새나는 작품으로 만들어보고 싶어”

 

앞뒤 안보고 서산시 해미읍성만 떠올릴 양이면 왠지 섭섭하다. 조명 이쁜 이곳 읍성 안에서 파릇파릇 따뜻한 극단 ‘서산’의 정수정 대표를 만났다.

그녀를 만난 시간은 수요일 이른 오전, 오늘처럼 추운 날에 온건 처음이라며 털 달린 장갑을 연신 손으로 가져가 입김을 불었다. 머리 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바람이 5m 높이의 성 위로 올라가 부딪친다.

“(해미읍성)이곳의 사계를 보면 묘한 매력을 느껴요. 특히 동행인에 따라서 보이는 면이 다르죠. 하늘의 변화에 따라 바뀌는 이곳이 제가 좋아하는 일터입니다.” 입구에 들어서면서 그녀가 장갑 낀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킨다. 기자는 금세 눈을 모아 그녀의 손끝을 쫓아갔는데 시선을 옮기는 곳곳이 무대가 되고 객석이 된다.

“처음 무대에 설 때는 낯설어 담대해지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이젠 익숙하여 편안하게 객석을 바라보며 즐기죠. 여기 읍성은 꼭 제 집 같은 편안함이 있어 좋아요. 이곳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때론 가족 같기도 하구요.”

내면세계 속 잠재된 이야기를 듣고 싶어 그녀가 가장 편안해 할 공간을 택하고자 해미읍성을 찾았는데 그것이 적중한듯하여 안심이다. 그녀는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얼굴 가득 생기가 돌았다.

“봄이면 친구들과 돗자리를 깔고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보기도 하고, 멀리 날아오르는 연들을 구경하기도 해요. 무엇보다 함께 온 가족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 서산시민의 한사람으로서 뿌듯함을 느낀다고나 할까요? 이곳은 연인 또는 가족단위 사람들에게 최적의 힐링장소 같아요.”

 

“공연은 3년째 하고 있지만 해미읍성에서 한 지는 2년이에요. 마음의 고향인 이곳에서 (공연)한다는 것은 제게 무엇보다 큰 자부심이기도 하구요. 이제는 단골 어르신들도 계신데 걸그룹 못지않게 인기도 많아요(웃음).”

 

“대학원 재학 중 극단에서 진행하는 연극 및 공연제작을 우리 지역에서 하면서 아쉬운 부분을 느꼈어요. 의외로 많은 분들이 연극이나 뮤지컬 등 여러 가지 공연문화를 접하기 위해 서울을 찾는다는 거죠. 우리 서산은 많은 인물들과 다양한 이야기 소재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예요.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극단을 창단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드디어 2016년, 주변 분들의 응원에 힘입어 극단 ‘서산’을 창단하게 되었습니다."

 

▲ ‘연기는 운명’이라는 정수정 대표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데 불현 듯 지나는 아주머니가 겨울소식을 듣기위해 들렀던 성 안에서 우리를 쳐다보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어디서 왔냐고 물으니 마을주민이란다. 굳이 날을 정해놓고 이곳에 들리는 관광객들과는 분명 걸음걸이 속도부터 다르다. 정 대표가 다가가 애살있게 인사를 하기에 기자는 정 대표의 고향이 서산인 줄 믿고 돌아서 물었다. “이곳이 고향인가 봐요?” 그녀는 크게 머리를 한번 젖히며 입을 가리고 웃었다.

“많은 사람들이 제가 워낙 서산을 좋아라하니 여기가 제 고향인줄 착각해요. 저는 인천에서 태어났어요.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나서 대학을 이쪽으로 오게 된 거죠.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생활을 하다 보니 그런가 봅니다. 사실 식구들도 저를 “서산댁”이라고 한다니까요(웃음). 기자님도 아시다시피 우리 서산은 상당히 매력적인 도시예요. 작년에는 누구보다 서산시를 사랑하는 젊은이로서 서산지역의 ‘청년네트워크위원’으로 활동하게 되었어요. 정책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젊은이들의 소리’가 묻히지 않도록 제대로 대변자 역할을 하려고요. 그래서 지난해에는 양승조 도지사와 함께하는 토크쇼와 충남워크샵 등 바쁘게 왔다 갔다 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청춘을 부여받았으니 적어도 훗날 미안해하지는 말도록 열심히 살자.”

 

학창시절 사물놀이를 7년간 했다는 그녀. 연기대신 오히려 사물놀이 쪽을 전공해도 했어야 하지 않았냐고 묻자 “아무리 생각해도 운명 같아요. 연기는.”

 

“여고시절 우연히 친구가 연극부에 들어오라고 하는 바람에 거름지고 장에 따라가는 냥 지원하게 되었어요. 사실 경쟁이 치열했어요. 오디션 보는 날, 관심이 없다보니 긴장도 되지 않더군요. 더군다나 저를 연극부로 들어가자고 꼬드긴 친구는 오디션 장소에 오지도 않고 말예요.

선배들이 ‘앉아서 똥 누는 연기를 하라.’고 하대요. 사실 제 성격은 굉장히 소심한 편이예요. 그런데 다른 것도 아니고 똥을 누라니요. 저로선 심히 당황스런 순간이었죠.

아무렇지 않게 화장실에서 바지 벗는 시늉을 하면서 볼 일 보는 척했어요. 신기하게도 막상 연기를 하니 의외로 떨리지가 않더군요. 함께 간 친구는 떨어지고 저만 합격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어요. 대본 외우는 것은 물론 즉석에서 치고 들어오는 애드리브를 받아치기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그저 시키면 시키는 대로 열심히 쫓아다니는 게 전부였던 여학생이었죠.”

 

자꾸 찬바람이 불끈불끈 볼을 때려 커피숍으로 이동을 하며 남은 이야기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마침 수제 마카롱을 파는 카페였는데 우리는 요거트마카롱과 달달한 커피를 마주하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여고 2학년 때 연극부 단장을 맡았습니다. 제 속에 감춰진 책임감이 있을 줄은 저도 몰랐어요. 그렇게 시작된 연기였죠. 관객들의 시선을 받으면서 열심히 하다 보니 대회에 나가 상도 받고 조금씩 재미를 느끼게 되었어요. 서서히 연기 쪽으로 저의 미래가 보이는 듯 하여 부모님께 말씀드려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제 연극에 엄마를 초대했어요. 사촌여동생을 데리고 객석에 앉아있는 우리 엄마. 평소 ‘남들 앞에만 서면 그렇게 부끄러워하면서 어떻게 연기를 하냐?’며 놀리던 엄마가 제 연기를 보시곤 엄청 놀라워하셨어요. 그것이 계기가 되어 부모님은 저를 적극 지지해 주었죠.”

하지만 그녀는 굳이 인천에서 서산으로 대학을 내려왔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런 말을 했다.

“엄마가 천주교 신자세요. 중학교 때 엄마를 따라 해미로 성지순례를 왔죠. 그때 본 호야나무와 천주교 순례길이 두고두고 가슴에 남았습니다. 거기다 (인천)집과도 가깝잖아요. 망설이지 않고 한서대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물론 다른 학교도 합격했지만 뒤돌아볼 것도 없었지요. 당시 눈에 보인 해미읍성이 제 기억을 멈추게 했거든요. 가만히 생각하면 운명 같은 뭔가가 있는 것 같아요.”

 

▲ “그 사람입니다” 공연 출연진과 함께

 

“하긴 운명도 운명 나름이겠죠. 힘든 면도 많았어요. 극단 대표치고는 이 바닥에서 제가 좀 어리잖아요. 무엇보다 여자다보니 하대하는 경우가 더러 있어요.”

 

“제가 극단을 창단한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걱정을 참 많이 해줬어요. 지나고 보니 그분들이 왜 저에게 그랬는지 알겠더라고요. 가령 이런 거예요. 같은 업체와 업체가 만나서 조율을 해야 하는데 ‘넌 어리니까 무조건 해!’ 라던가 제가 고향이 서산이 아니다보니 ‘이 지역 사람이 아니니 안 돼.’라는 묵시적 거절.

이건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는 단원들이 많잖아요. 일을 해야 살아가죠. 그런데 말도 안 되는 금액을 제시하는 곳이 있어요. 그때 아쉽게 돌아서면 ‘나보다 어린 것들이 간보고 다닌다.’는 말을 해요. 그때는 저도 사람인지라 회의를 느끼기도 합니다.”

 

“연극은 작품성 고려를 위해 기술적인 면과 볼거리 제공이 있어야 되기에 뭔가 화려하게 꾸며요. 그러다보니 ‘사람 사는 얘기’ 들을 때론 놓칠 때가 많습니다.”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소재로 함께 공감하고 소통하며 감정 나누고 싶다는 그녀.

“그 대상이 그 누구든 이제는 따뜻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우리 지역 이야기들을 모아 사람 냄새나는 작품으로 만들어보고 싶은 것이 꿈입니다. 또한 이것이 서산을 알리는 일이 된다면 더없는 영광 아니겠어요? 얼마 전 제가 류방택 선생 일대기를 작품으로 내놓았는데 성인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상당한 박수를 받았어요.”

현재 그녀는 초·중·고·대학에까지 출강하면서 연기지도를 한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부모님들이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연기자의 길을 말린다고 했다.

“우리 친구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돈을 주고도 하지 않겠어요?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힘드니까’ 또는 ‘고생되니까’ 하지 말라고 하는 거죠.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해요. 하지만 설사 그 길이 힘들다 하더라도 본인이 버틸 수 있는 건 좋아하기 때문이거든요. 그것이 곧 우뚝 설 수 있는 원동력이 되구요.”

그녀의 잔잔한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계산대 앞에는 어느새 마카롱을 사는 손님들로 길게 줄이 이어져 있었다. 주인아저씨가 바쁜 틈을 타 우리 앞 비어가는 접시위에 흠이 난 마카롱 하나를 얹어 놓으며 서비스라고 했다.

 

▲ “별의 별 이야기” 출연진과 함께

 

돌아서면서 다리가 불편하신 분을 위해 출입문을 열어 주신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녀가 생각난 듯이 앞에 놓인 커피를 마시다 말고 이런 얘기를 했다.

 

“얼마 전 정신지체 청년이 우리 작품을 보러 왔었죠. 너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는데 제가 다 눈물이 나더라구요.” 그래서일까? 그녀는 장애인을 위한 것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고 힘주어 말했다.

“연극은 보면서 듣는 문화예요. 그런데 시각장애인들은 볼 수가 없잖아요. 그분들을 위한 내레이션을 저희 극단에서 하고자 합니다. 아주 작고 사소한 부분들일 지라도 놓치고 싶지 않아요. 함께 행복해야 되잖아요.”

“동부시장 어느 상인분이 하루도 쉬는 날이 없어서 공연 보는 것은 남의 떡이라고 하는 말에 가슴이 먹먹했던 적도 있어요.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직접 찾아가는 문화예요. 편하게 얘기할 수 있고 함께 소통하는, 그래서 따뜻함이 묻어나는 사람 사는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녀는 당당히 말했다.

“현재는 청소년극단, 시민연극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어요. 앞으로는 일반인 즉 주부·실버들의 연극에 관한 워크숍을 통해 다양한 시민들과도 소통하고 싶어요. 극단‘서산’을 통해 많은 분들이 문화예술을 쉽게 접할 수 있고 소통·공유하며 그에 힘입어 다양한 활동으로도 인사하고 싶구요.”

 

▲ “호야나무의 전설” 출연진과 함께

 

기자는 인터뷰를 하는 내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그녀가 대단해 보였다. 누구보다 단단하고 지혜로운 그래서 더 도전하고 소리 내려고 하는 극단 ‘서산’의 정수정 대표. 앞으로도 흔들림 없이 소신을 간직한 그녀의 모습이기를 바라며 이런 말로 새해 덕담을 전한다.

“바람은 언제나 당신 등 뒤에서 불고, 당신의 얼굴에는 항상 따사로운 햇살이 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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