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진호 마을공동체 탱자성협동조합 이사

마을을 새로 만드는 걸 상상해 본다. 살아야 할 집과 농토도 있어야 하고 아이들을 가르칠 학교도 필요하다. 병원과 약국, 잡화점이나 시장도 있어야겠다. 그리고 여기에 반드시 마을 신문사나 조그만 라디오 방송국 같은 마을미디어를 만들어야 한다면, 철딱서니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밥을 함께 먹는 사람을 식구라 부른다. 식구는 특별하다. 서로 마주 앉아 쩍쩍 입을 벌리며 밥을 먹는 것도 그렇지만 밥상에 둘러 앉아 함께 음식을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더 의미 있다. 매일 끼니마다 이야기를 나누니 당연히 식구끼리 서로 가장 잘 안다. 그래서 특별하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마을 신문은 마을 전체가 둘러앉아 먹는 마을 밥상이라 볼 수 있다. 마을 밥상인 마을신문을 통해 마을 사람은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소개하고 마을을 이해하며 마을이 가야할 길에 관해 진지한 토론을 벌인다. 자라는 아이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이 어떤 곳이고 또 어떤 마을로 가는 것이 좋은 지 그 정체성과 미래 가치에 관해 마을 밥상인 마을 신문을 통해 배우고 생각한다.

그래도 여전히 신문은 내가 사는 마을과는 조금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들린다. 마을보다는 광역시 정도되는 도시나 최소 국가 정도는 되어야 발행하는 것이 신문이라 생각한다. 물론 내가 속한 광역시나 국가, 세계, 지구도 내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이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근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마을도 역시 그에 못지않게 나와 내 가족 삶에 밀접한 영향을 준다. 정작 우리는 우리 마을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사항에 관해 잘 모른다. 예를 들면, 우리 마을에 도로가 새로 나는데 공사를 시작해야 그 사실을 알거나 중요한 기관이 들어서는데 그 역시 개관식이 있고 한참 지나서야 안다.

매일 뉴스에서 대형 할인마트나 대기업 프랜차이즈 문제를 심각하게 보지만 정작 삼십 년 넘게 한 자리를 지켰던 우리 마을 골목슈퍼나 맛있는 빵을 굽던 김 씨 아저씨네 빵집이 문 닫은 사실은 까맣게 모른다.

민주시민이 되기 위해 지방선거 투표에 참여해 우리 마을을 대표할 시의원을 뽑아 놓았는데 그들이 의회에서 어떤 발언을 하고 어떤 정책 결정에 참여했는지 알기란 쉽잖다. 매일 방송과 신문에 얼굴을 들이미는 국회의원보다 어떤 측면에 서는 더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인 데도 말이다.

마을 전체를 아우르는 ‘가족’이 사라지니 마을은 무주공산으로 변한다. 마을에 공적 예산을 투입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도 마을 밖에서 결정하고 우리 마을이 어떤 곳인지 아이에게 설명할 방법이 없다. 골목에 자동차가 지나고 사람이 왔다갔다 하는데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해결책 중 하나는 함께 식사하기다. 얼굴을 맞대고 음식을 먹으며 어색 한 관계를 조금씩 풀어가고 서로 알아 가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는 의미다. 가족이 확장한 마을에서도 같은 해법 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마을 밥상인 마을 신문을 함께 나누며 나와 마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삶에 관한 이야기로 확장한다면 무주공산인 마을에는 다시 주인인 ‘우리’가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시대 그 무엇보다 마을 신문이 중요한 이유다. 그래서 마을 신문은 마을 밥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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