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김명진 교수 “고려시대 송나라 사신 맞은 안흥정...서산·태안 두 곳”

한기홍 향토사가 “굴포운하 미완공으로 안흥정은 해미에서 태안으로 옮긴 것”

 

▲ 지난달 30일 서산문화원에서 ‘서산 해양문화유산 자원의 보전과 활용(해미 안흥정을 중심으로)’이란 학술세미나가 열린 가운데 경북대 김명진 교수가 안흥정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서산문화원(원장 이준호)은 지난달 30일 서산 해양문화유산 자원의 보존과 활용을 위한 ‘해미 안흥정을 중심으로’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서산향토문화연구소(소장 박성호) 주관으로 열린 이번 학술세미나에는 성일종 국회의원, 시의원, 시민 등 100여명이 참석해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서해의 조운 관련 유적 굴포와 영풍창’에 대해 문경호 공주대 교수 발표를 시작으로 ‘고려시대 객관과 서산 해미 안흥정’(김명진 경북대 교수), ‘서산 검은여의 암석학적 특성과 자연유산적 가치조명’(이찬희 공주대 교수)에 대한 주제발표가 있었다.

공주대학교 문경호 교수가 발표한 ‘서해의 조운 관련 유적 굴포와 영풍창’는 고려-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징수한 조세를 임금이 있는 수도까지 옮기는 과정을 설명, 눈길을 끌었다.

문 교수는 “고려-조선시대는 지방에서 거둔 조세를 강이나 바닷가에 설치한 조창이라는 시설에서 모은 후 배에 실어 수도로 보내는 조운제도를 운영했다”며 “충청은 남도에서 징수한 조세와 물산을 수도로 옮겨가는 중요한 길목이었는데, 태안반도 안흥량은 뱃길이 험해 조난사고가 자주 발생함에 따라 이를 막기 위해 서산과 태안 사이에 잘록한 부분을 잘라서 하도를 건설하는 굴포운하가 개착 됐다”고 말했다.

결국 굴포운하는 실패로 끝났지만 전근대시대의 해로교통과 조운제도의 운영이라는 역사·문화적 배경에서 생겨난 상징적인 문화재 유산이라고 문 교수는 평가했다.

고려시대 송나라 사신을 영송(迎送·사람을 맞아들이는 일과 보내는 일) 하던 ‘안흥정(安興亭)’의 위치에 대한 새로운 주장이 나왔다.

학계와 향토사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인 서산시 해미면과 태안군 근흥면에 같은 이름인 안흥정에 대해 경북대학교 김명진 교수는 “송나라 사신들이 육로로 이동할 때 서산시 해미면 산수리에 있는 안흥정을, 해로로 이동할 때는 태안군 근흥면 정죽리 안흥정을 이용한 만큼 두 곳의 안흥정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송나라가 고려와 통교할 때 해로를 주로 이용했는데, 태안군 근흥면 정죽리 마도의 안흥정은 해로 이용 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사신을 위한 ‘맞이방’ 역할을 했던 곳”이라며 “마도 안흥정에서 급한 용무가 있는 송나라 사행 일부 또는 사행을 접반할 고려 관리들이 오가면서 들르던 육로상에 있었던 또 다른 안흥정이 서산시 해미면 산수리였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어진 자유토론에서 오성민 지역문화연구소장은 “태안군 안흥정에서 해미지역으로 옮긴 것으로 본다”고 주장한 반면, 한기홍 서산향토사학가는 “해미지역 안흥정이 먼저 설치되고, 굴포운하의 미완공으로 인해 당초 목적을 상실하자 태안지역으로 옮기게 된 것”이라는 논리적 주장을 폈다.

공주대학교 이찬희 교수는 ‘서산 검은여의 암석학적 특성과 자연유산적 가치조명’에서 “태안반도에는 다수의 암초가 분포하고, 빠른 조류가 흘러 해난사고 잦은 지역으로 고려-조선시대 수많은 배들이 침몰했다”며 “천수만에 있는 암초인 검은여는 바다에 위치한 암초를 육지에서 관찰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장소로 그 가치나 의미가 크다”고 했다.

이어 윤용혁(공주대) 교수를 좌장으로 곽호제(충남도립대 교수), 오석민(지역문화연구소장), 이강열(예산군청) 학예연구사가 참석해 토론을 갖고 다양한 의견을 교환했다.

이준호 서산문화원장은 “해미 안흥정은 지역의 역사적 장소임에도 방치되고 있는 점은 매우 아쉽다”며 “이번 학술세미나를 통해 그 가치가 널리 알려지고 문화컨텐츠 자원으로써 활용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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