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김용권 인천 아시안게임 레슬링 메인 주치의

최미향 기자l승인2018.10.31l수정2018.11.02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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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재활계의 황금손’ ...스포츠재활 새로운 시각으로 정립

생애주기별 운동습관의 가이던스 역할을 하는 것이 ‘나의 꿈’

 

▲ 김용권 전주 본병원 본스포츠재활센터 원장, 삼성디스플레이 근골격계질환예방센터장에 이어 지금은 ㈜한화토탈 웰리스클리닉을 위탁운영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 졸업

서울대학교 스포츠의학 석사, 박사(운동처방, 재활전공)

전주대학교 운동처방학과 객원교수

전, 국가대표 레슬링팀 전임 의무팀닥터

전, 삼성디스플레이 아산1캠퍼스 근골격계질환예방센터장

전, 서울아산병원 스포츠건강의학센터 실장

 

<인터뷰 들어가기 전>

모든 것들이 눈부셨던 가을 어느 날, 몸 아픈 영혼들이 안심하고 세상과 마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전주 본병원 본스포츠재활센터 김용권 원장(50, 전주대학교 운동처방학과 객원교수)을 만났다.

계절은 옷을 갈아입은 지 오래 되었고, 멀리 산 위에는 이미 가을빛이 내려 앉아 시월임을 알려주었다. 그다지 크지 않은 키와 친절함에 반가움의 미소를 짓자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이래봬도 저 중학교 2학년 중반까지는 농구선수였어요. 그런데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농구보다는 공부를 하는 게 더 낫겠다’라고 하시는 겁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했는데 가만히 보니 제 키가 농구선수치고는 매우 작았거든요. 그래서 미련은 남았지만 과감히 포기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아차 들켰구나.’ 얼른 숨을 들이키며 앞에 놓인 커피 잔을 들고 향 좋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밖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눈부시다. 순간 심란했다. 이런 날에는 한옥 방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앉는 것보다 길거리를 어슬렁어슬렁 배회하며 이야기해도 좋을 텐데... 제대로 속속 물든 마음을 간신히 수습하면서 인터뷰를 이어나가는데 “빨리(인터뷰)하고 병원에 가봐야 될 것 같습니다. 중국에서 치료를 받으러 한국에 나온 환자분이 예약되어 있어요.” 기자는 깜짝 놀랐다. 중국에서 치료차 한국행이라니...더는 ‘딴 생각’ 않고 꼼짝없이 3시간의 인터뷰를 이어나갔다.

 

Q 일각에서는 일중독증에 빠졌다던데?

(김) 저는 계획된 꿈을 실천하는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이미 저의 인생 목표를 정해놓았어요. 서울대학교 체육교육학과에 들어가 학사, 석사, 박사과정까지 마친 후 교수를 하겠다. 특히 결혼은 서른네 살에 하고.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그렇게 되더라구요. 꿈을 꾸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맞나 봅니다.

단, 결혼은 계획처럼 되지 않았어요. 당시 서울아산병원에 근무하면서 학업을 이어나갔기 때문에 여자를 만나도 집중할 수가 없었어요. 여성을 만나고 돌아올 때마다 ‘난 아직 결혼할 마인드가 되지 않았어’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배려할 줄을 몰랐거든요. 병원 일이 바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인연이 아니었겠지요(웃음). ‘빨리 가서 공부하고 일해야지’라는 생각이 더 강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친구들은 “넌 중독증에 빠졌어. 공부중독 일중독”이라며 걱정을 했습니다.

결국 저는 여성을 만나는 것보다 ‘환자를 위해 스포츠의학 공부에 더 집중하자. 결혼은 나중에 하면 돼’라는 생각에 결혼을 포기하고 있었죠. 그런데 어느 날 친구가 한 아가씨를 소개해줬습니다. 아주 배려심이 깊고 다정다감한 사람이었죠. 그녀가 지금의 제 아내입니다. 저를 구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녜요.

 

▲ 본병원 전경

 

Q 생소한 스포츠재활을 새로운 시각으로 정립했다던데?

(김) 1995년도에 외국저널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스포츠재활이라는 것이 없었거든요. 당시 저는 서울아산병원에 운동처방사 공채1기로 입사를 했습니다. 스승이신 진영수 교수님을 모시고 매일 2타임씩의 저널발표를 했습니다. 하루 2~4시간씩 잠을 자면서 의사들과 같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외국 서적을 번역하고, 환자들에게 검사와 처방을 내리고 스포츠재활을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내분비내과와는 당뇨병 환자대상 운동교육을 전파하였고, 정신과와는 정신분열증 환자대상 운동교육을 시켰습니다. 정형외과와는 수술전후 재활운동 및 비수술 운동재활을 시켰습니다. 여성클리닉과는 요실금 환자 운동재활, 종합검진센터와는 검진자 대상 운동부하검사와 체력검사를 통한 건강검진 후 체력상담, 가정의학과와는 비만대상 운동교육, 이비인후과와는 어지럼증 운동교육, 심장내과와는 심근경색 시술 후 심장재활 등 서울아산병원의 많은 진료부서와 함께 공부하고 환자대상으로 운동교육을 하였습니다.

물리치료와는 분명 다른 영역이었죠. 그런데 문제는 전문 양성인을 배출해야 하는데 마땅한 커리큘럼이 없어요. 그래서 운동생리학을 전공한 교수 70명과 간호학을 전공한 교수 30명, 모두 100명이 모여서 특별과정교육을 하여 자격을 부여해주었죠. 그게 바로 ‘임상운동사’입니다.

임상운동사란, 환자들을 대상으로 검사, 처방, 재활운동교육을 전문으로 할 수 있는 자격을 뜻합니다. 그 후 체육계 종사자와 병원 간호사협회를 대상으로 강의를 하면서 프로그램과 프로토콜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20년 동안 제가 강의를 해왔으며, 현재 약 5천여 명의 임상재활운동사가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Q 춤추는 봉사를 했다는데 무슨 말인가?

(김) 서울아산병원에 근무할 때 지역 내 중증노인복지관에 1년 반 정도 봉사를 다녔습니다. 어르신들 혈압도 검사하고 대화도 하고 운동도 하고 그랬어요. 이분들에게는 애석하게도 가족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매일 누워서 생활하시거나 화투게임을 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중증이니 뭐 적당한 운동을 하기도 힘든 상황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뭘 했느냐, 바로 노래 부르고 춤을 췄지요. 몸치임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서 말이죠(웃음). 제가 춤을 추면 어르신들도 모두 나와서 같이 춤을 춥니다. 운동이 뭐 별겁니까. 그냥 같이 움직이는 거죠. 저는 대신 넘어짐을 방지하기 위해 할머니들의 손을 잡아드렸습니다.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표정 없던 그분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져요. 그런데 때론 바빠서 못가는 날이면 정이 그리운 할머니들이 저를 궁금해 하고 걱정해줍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부모님 생각이 나서 가슴 끝이 아파요. 그래서 정말 큰 일이 아니면 무조건 뵈러 달려갑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제 손을 잡고 그렇게 좋아라 하시며 “언제 또 올 거야?”라고 채근하시던, 머리 희고 마르신 할머니가 안 계실 때가 있어요. 물어보면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어 돌아가셨다고 해요. 그럴 때마다 내 부모님인 듯 마음이 싸합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14%가 노령인구입니다. ‘이분들이 사시는 동안 어떻게 하면 좀 더 건강하게, 서로 어울리면서 즐겁게 살 수 있도록 도와드릴까’하는 것이 제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인 것 같습니다.

 

Q 스포츠재활을 하면서 보람있었던 일은?

(김) 가르치는 일이 지속되다보니 지방에 있는 대학에 교수로 갔습니다. 환자들을 돌보는 병원과 대학은 달라도 너무 달랐어요. 떠나고 보니 역시 환자들을 운동시키는 것이 훨씬 보람있는 직업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아픈 사람들에게 회복 속도를 빠르게 해 준다는 일은 행복이었죠. 특히 운동처방이 환자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기도 했고요. 병원에서는 그냥 “움직이지 마세요. 그러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운동하세요” 이러다보니 환자들은 얼떨떨합니다. “무슨 운동을 어떻게 합니까?”라고 질문을 하죠.

저는 의사들에게 “제발 그냥 ‘운동하세요’ 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무슨 운동을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시라. 그래야 환자들이 운동을 하지, 그렇지 않으면 절대 못한다”라고 말합니다. 어쨌든 환자들이 운동하고 그것을 토대로 회복이 되어 현직으로 복귀 할 때가 가장 보람 있습니다.

양동근 농구선수가 바로 이런 케이스였어요. 이 선수가 발목을 수술하기 전에 저한테 왔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수술은 어디서, 어떤 의사에게 할 것인가 선택해줬어요. 손상에 맞는 전문의는 별도로 있거든요. 무릎이 아프다 그러면 그 수술을 잘 하는 의사, 발목이 아프다하면 그 수술을 잘하는 의사, 이게 다 파트가 있어요. 양 선수는 수술 후 재활을 했습니다. 물론 복귀할 때까지 제가 계속 같이 있었죠. 완쾌된 후에 거액의 연봉으로 간 케이스예요. 잘 회복되어 건강하게 생활하는 것을 보면 당연히 보람되고 자부심도 느껴집니다.

 

Q 산업체 근골격질환예방센터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 곳인가?

(김) 산업체 근로자들이 아프지 않도록 미리 예방하는 곳입니다. 회사의 생산성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이익입니다. 근로자들은 간혹 아파도 아프다는 말도 못하고 반복적으로 일만 하고 있는 경우가 있어요. 우리는 이런 분들을 위해 ‘어떻게 하면 안 아프게 해줄 것인가’를 미리 조언해 줍니다. 통증은 초기에 치료를 해야 하죠. 근골격계 통증은 약물보다는 적절한 스트레칭과 교정운동으로 충분히 치료가 가능합니다. 저는 삼성디스플레이 근골격계질환예방센터장을 7년 동안 했으며, 지금은 ㈜한화토탈 웰리스클리닉을 위탁운영하고 있습니다. 임직원들의 근골격계통증, 부상, 비만 등에 관한 운동상담 및 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수술과 관련된 상담과 병원 연계를 이어주기도 하구요.

오늘 제가 전북 근로자건강센터를 찾아간 것은 담당자를 만나서 잘 하고 있는지 혹시 제가 도울 일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어요. “여기가 아프지 않으십니까? 선생님이 하시는 일은 이 부위가 아플 수밖에 없어요”라고 말해주면 금방 얼굴에 화색이 돌며 마음의 문을 열어줍니다. 이처럼 그분들에게 조언을 하기도 하고 운동을 가르쳐주기도 하죠.

‘아프니까, 아픈 사람이 우리에게 올 것이다’가 아닌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해 센터가 아픈 사람을 찾아가야 한다’라고 전북 근로자건강센터 담당자에게 얘기 해 주었습니다. 산업체 근로자의 만성통증 예방은 본인은 물론 가정, 사업장, 국가까지도 행복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Q ‘운동재활계의 황금손’이라고 하던데?

(김) 운동선수들 대부분이 초·중학생 때는 부상예방 트레이닝은 받지 않더라도 작은 부상은 많지만 큰 부상은 없어요. 그러나 학년이 올라갈수록 한번 다치면 중형 사고가 발생합니다.

당시 경상남도에서 전국소년체육대회가 열렸는데 세 개의 코트에서 모두 사고가 났습니다. A코트에서 팔꿈치가 빠져 정복(탈구된 관절을 원래의 위치로 맞추는 것)을 하고 자리에 앉기도 전에, B코트에서 또 어깨가 빠진 사고가 났습니다. 마찬가지로 정복을 하여 빠진 어깨를 집어넣었지만 영 걱정이 되어 “너 안 될 것 같은데?”라고 하자 “할 수 있습니다”라며 벌떡 일어서는 거예요. “그래 조심해라.” 걱정스런 얼굴로 일어섬과 동시에 C코트에서 또 사고가 났습니다. 고관절 탈구였어요. 고관절 탈구는 좀처럼 빠지지 않는 절구관절이라 다들 긴장을 했죠. 급하게 달려가 정복을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선수의 유니폼이 땀으로 범벅이 되다보니 미끄러워서 도저히 정복을 할 수가 없어요. 급히 인근 병원으로 달렸습니다.

참고로 고관절이 빠지면 눕지도 엎드리지도 못하고 빠떼루 자세로 한쪽 다리를 지면에서 떼는데 그 모습은 마치 강아지가 쉬하는 자세가 됩니다. 고통스러워하는 선수를 데리고 10분 정도 119로 이동을 했죠.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다급한 음성으로 “소년체전 경기 중에 고관절이 빠졌다. 급하다. 선수가 너무 괴로우니 빨리 정복을 해다오.” 그런데 전문의가 “빠졌네”라는 시큰둥한 한마디를 던지곤 안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10분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요. 안되겠다 싶어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 봤는데 의사가 글쎄 모니터만 주시하고 있지 뭡니까. 너무 황당해서 “아니 선생님, 지금 뭐하세요? 빨리 정복해야죠?”하니 “선생님 제가 고관절 전문의입니다. 고관절 탈구는 수술해야 되는 겁니다”라고 하는 겁니다. 화가 나서 “이 아이는 이제 겨우 중학교 3학년입니다. 근육을 째기 전에 정복을 해야지요. 마취시키고 잡아 빼 보세요. 장담하건데 들어갑니다. 그렇게 해도 늦지 않아요.” 이분은 그때까지도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계속 모니터만 서치하고 있는 거예요. “고관절 탈구는 인터넷에도 잘 안 나옵니다. 만약 정복이 실패하게 되면 그땐 제가 부모님과 감독 그리고 선수를 설득시켜 수술시키겠습니다.” 마지못해 일어선 의사는 괴로워하고 있는 선수에게 갔고, 저의 말대로 고관절 탈구는 무사히 정복되었습니다.

그날 저녁, 감독님이 “원장님께서 주치의로 계시니 애들이 마음 놓고 경기를 합니다. 감사합니다”라며 고마움의 인사를 하더군요. 이 날 정말 보람을 많이 느꼈습니다.

많은 분들은 저에게 ‘황금손’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곤 합니다. 아마도 이것은 그 어떤 통증 환자라도 제가 손을 대면 금방 씻은 듯이 없어지기 때문에 지어진 것이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저는 신경계와 근막이완을 잘 활용하여 치료를 합니다. 마치 환자의 머리 속을 읽은 듯이 훤히 보이거든요. 그래서 그 어떤 환자도 저에게 오면 만족합니다. 환자들이 서울에서 제주도에서 울산에서 중국에서도 오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이기 때문이죠.

 

▲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레스링 메인 주치의로 활동하던 모습

 

Q 대한민국 스포츠 안전의 현실은 어떤 수준인가?

(김) 아직은 갈 길이 멀었다고 봅니다. 인천 아시안게임 레슬링 메인 주치의 총책임자로 갔던 당시의 일입니다. 메인 주치의란 어떤 나라 선수든 간에 경기 중 사고가 나면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야 하는 의무가 있는 중요한 자립니다. 저는 공중보건의 한 명을 데리고 갔습니다.

당시 TV에서 방송 촬영을 하고 있었어요. 저는 그때 A코트를 맡고 있었는데 저쪽 B코트에 있던 대한민국 심판이 “닥터 닥터, 사람이 다쳤다!!” 다급한 음성이 들렸어요. 그쪽을 보니 B코트 담당 보건의가 다른 일로 바빠 보였습니다. 안되겠다 싶어 급하게 가로질러 선수에게 달려갔습니다. 동공이 풀리고 의식이 없으면 큰일이거든요. 급히 조치를 취하고 나서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때였어요. 카메라 감독님이 “카메라 촬영 중인데 앞으로 지나가면 어쩝니까.” 어이가 없어서 “감독님, 지금 촬영이 중요합니까? 선수가 쓰러졌는데.” 역정을 냈습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지금 촬영하고 있잖아요.”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황당스럽습니다. 이게 바로 안타까운 스포츠안전의 현실이죠. 사고는 항상 일어날 수 있는데 우리는 보여주는 것에 너무나 익숙합니다. ‘촬영하는데 왜 앞으로 확 지나 가냐. 그러나 저러나 이미 TV에 나와 버렸네. 젠장.’ 제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는 지금 생각해도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Q 교육현장에서 운동부족으로 인한 문제점과 개선점은?

(김) 대한민국 대다수의 아이들은 운동할 시간이 너무 부족합니다. 운동보다는 책상에 오래 앉아서 공부하기를 바라죠.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휴대폰을 만지며 학업의 스트레스를 풉니다.

저는 유치원 때부터 고등학교까지는 의무적으로 국가에서 아이들이 운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합니다. 현재 유치원 시절부터 초·중·고 학교에서는 주 2~3회(회당 40분 총2시간) 운동을 하고 있지만 성장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또한 어린이집은 여성가족부가, 유치원·초·중·고는 교육부, 성인이 되면 문체부 소관이 되는 거죠. 그러다 보니 체육정책에 일관성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있는 고등학교 체육시간은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다는 핑계로 다른 주요과목의 수업시간으로 대체되기도 하구요.

결국 이런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대사질환에 노출될 확률이 높아집니다. 유·청소년기에 했던 운동으로 다져진 근육이 평생을 살아가며 필요한 근력의 기초가 된다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각 학교마다 있는 체육관은 어른들만의 체육공간으로 전락하고 말았어요. 그렇다면 낮에는 어쩔수 없이 아이들이 공부를 한다 치더라도 저녁시간만큼은 적어도 아이들이 친구들과 함께 또는 부모님과 자녀들이 함께 참여하는 운동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

(김) 문화를 만드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변하지 않으면 자꾸 더디어지거든요. 무엇보다 미래를 책임질 우리 아이들이 공부보다는 운동을 우선하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습관화 되어야 성인이 돼서도 질병에 걸리지 않아요. 그러려면 생활체육시스템이 다원화가 아닌 일원화되고 패러다임 또한 바꿔나가는 것이 맞습니다. 저는 그것을 문화로 만들려고 합니다. 1년, 10년, 100년으로 해나가다 보면 우리의 문화가 되지 않겠습니까. 또한 문화는 시스템 속으로 녹아 들어가야겠죠. 그것을 또한 하나의 패턴으로 뽑아야 하구요.

얼마 전, 학교 때부터 공부만하다 성인이 되었다는 청년이 처음부터 너무 무리하게 운동을 했나 봐요. 그분은 하루 운동했는데 일주일을 몸살로 앓아누웠다고 투덜거렸습니다. 패턴 없이 무작정 운동을 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거라고 봐요.

이제는 국가가 나서서 어릴 때부터 운동이 생활화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반복적으로 하다보면 패턴이 만들어지고 이러한 패턴들을 잘 엮으면 시스템이 되어 결국 문화로 자리매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스포츠활동이 우리의 삶 속으로 정착된다면 모든 사람들이 건전한 정신과 신체가 될 것이고, 대한민국은 더 건강해질 것입니다. 어린시절부터 노년에 이를 때까지 스포츠활동이 문화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생애주기별 운동습관의 가이던스 역할을 하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최미향 기자  vmfms083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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