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비축미 고갈도 사실무근, 작년 역대 최다매입 여파로 상승

▲ 가을추수에 따른 수매현장

 

①지난해 생산량 감소

②정부가 사서 쟁여두니 오를 수 밖에

③"쌀값 더 오를 듯" 농가에서 출하 미루자 쌀값 상승

 

 

표. 정부양곡 재고 현황

연도

`13년

`14년

`15년

`16년

`17년

`18.8월

재고량

75만톤

88

135

170

186

160

* 재고량은 양곡연도(전년도 11.1~ 해당연도 10.31) 말 기준

 

▲ 쌀값 추이

올 들어 급등한 쌀값을 잡기 위해 정부가 재고 쌀을 푸는 등 적극 대응하고 있지만, 쌀값 고공 행진이 계속되고 있다. 올해 3월 말~4월 초 17만원 선을 돌파한 산지 쌀값(80㎏ 한 가마 기준)은 이후로도 꾸준히 상승해 지난달 25일 기준 17만8220원을 기록하며 18만원대 진입을 눈앞에 뒀다. 현재 쌀값은 작년 같은 시기(13만3348원)보다 34%나 상승한 것이다.

쌀값 급등세가 그칠 줄 모르자 온라인을 중심으로 최근의 남북 평화 분위기와 연계된 ‘괴담(怪談)’이 번지고 있다. “정부가 북한산 석탄과 쌀을 맞바꿨다” “북한에 쌀을 퍼주느라 정부 비축미 곳간이 텅텅 비었다”와 같은 소문들이다. “유엔 등 국제기구를 통해 북한에 쌀이 들어가고 있고, 그 쌀이 정부미”라는 루머까지 돌고 있다. 진실은 무엇일까.

 

◇쌀값 괴담은 사실무근

우리 정부는 1995년 15만t 규모로 대북 쌀 지원을 시작했다. 이후 2000년과 2002~2007년 연간 10만~50만t가량을 북한에 보냈다. 2010년 비교적 적은 양인 5000t의 쌀을 지원한 것을 마지막으로 북한에 쌀을 보낸 적이 없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쌀 지원을 위한 온갖 절차상의 문제를 빼더라도 쌀 1만~2만t가량을 북한에 보내려면 수백 명의 인력이 투입돼 2개월가량을 꼬박 작업해야 하는데, 몰래 북한에 보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정부 곳간이 비었다는 말도 사실무근이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정부의 쌀 재고는 올해 8월 말 기준 160만t이다. 작년 말(186만t)보다는 줄었지만 2013년 75만t, 2014년 88만t이던 것에 비하면 크게 늘었다.

국제기구를 통해 원조용으로 북한에 쌀을 보냈다는 말도 사실과 다르다. 우리나라는 올해 6만t가량의 쌀을 해외 원조용으로 보냈는데 대상국에 북한은 없다. 베트남, 예멘, 케냐, 에티오피아, 우간다 등 5개국이 전부다. 임형준 유엔세계식량계획(WFP) 한국사무소장은 “북한에는 최근 몇 년간 쌀 원조가 들어간 적이 없고, 주로 옥수수·콩 등을 재료로 한 영양 강화 가공 식품을 보내고 있다”며 “과거 북한에 쌀을 보낼 때도 가격이 비싼 한국 쌀이 아닌 동남아 등지의 저렴한 쌀을 구해서 보냈다”고 말했다.

 

▲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열린 ‘백남기 정신계승! 문재인정부 농정 규탄! 전국농민대회’ 참석자들이 밥 한공기 기준 300원의 쌀값 쟁취를 촉구하고 있다.

 

◇쌀값 미친 듯이 오른 3가지 이유

최근 쌀값이 전년동기대비 37% 올랐다. 햅쌀(2017년산 80㎏ 기준) 산지가격(생산지 유통업체 출하가격)은 지난달 25일 기준 17만7052원을 기록했다. 지난해만 해도 12만원대였던 쌀값이 5만원 가까이 오른 셈이다. 쌀값은 왜 이렇게 갑자기 오른 걸까.

쌀값 상승에 대한 농림축산식품부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2017년 쌀 생산량 감소▶정부의 쌀 매입▶쌀값 상승 기대감에 따른 농가 출하 지연이라는 3대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일단 지난해 쌀 생산량이 줄었다. 2017년 전국의 쌀 생산량은 397만t으로 2016년 419만7000t보다 5.3% 감소했다. 올 여름 극심한 가뭄과 폭염, 재배면적 감소 등으로 올해 쌀 생산량은 지난해보다 적을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작년 생산량 중 18%를 사들였다. 2017년 쌀 산지 가격이 12만원(80㎏ 기준)대까지 폭락하다보니 정부가 나선 것이다. 농식품부는 “20년 전 수준으로 떨어진 쌀값을 회복하는 게 최우선 과제였다”고 밝혔다.

정부가 쌀을 사들이자 산지 유통업체 쌀 창고의 재고는 당연히 줄었다. 올해 6월 말 기준 산지 유통업체의 재고 물량은 34만4000t으로 5년래 가장 적은 수준이 됐다. 정부가 나라 곳간에 쌀을 채워 넣어 쌀값 하락을 막아준 셈이 됐다.

문제는 정부가 여기에 수조 원의 재원을 투입했다는 점이다. 농식품부가 지난해 벼 농가 보호와 쌀값 안정을 위해 쓴 예산은 직불금(1조4900억 원)을 포함해 2조5000억 원 이상이다.

정부 ‘약발’로 쌀 산지 가격은 일단 17만원대를 회복했다. 그런데 정부의 쌀 비축은 벼 농가에 본의 아니게 ‘시그널’을 준 셈이 됐다. “올 가을에도 쌀 가격이 현재 수준 이상을 유지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면서 농가들이 쌀 출하를 미루게 된 것이다. 출하를 미루면 값을 더 받을 것이란 기대심리가 한몫했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쌀 매입→쌀값 상승→농가의 출하 지연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쌀값 폭등현상이 빚어졌다. 쌀값이 오르자 소비자는 물론이고 쌀을 이용해 장사하는 자영업·식음료계의 불만은 커질 대로 커진 상황이다.

쌀값이 단기간에 급등하자 놀란 정부는 이제 재고 쌀 풀기에 나섰다. 지난 2일 추가로 쌀 4만t을 시장에 공급하기로 하면서 ‘급한 불 끄기’에 나선 것이다. 재고 쌀 풀기는 올해 4월과 6월(18만2000t)에 이어 벌써 3번째다.

농업계에선 쌀값 상승을 ‘쌀값 정상화’라고 이야기한다. 2013년~2016년 계속된 풍년으로 쌀만 거의 유일하게 값이 내렸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소비자 물가는 1.3~1.9% 상승했다. 정운천 바른미래당 의원은 “라면 1개가 800원인데 쌀은 한 공기에 240원이다”면서 쌀값이 지나치게 싸다는 주장을 폈다.

문제는 쌀값이 내려도 매년 쌀 소비는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연간 1인당 쌀 소비는 61.8㎏으로 3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1985년(128.1㎏)의 절반 이하로 떨어진 셈이다.

쌀이 안 팔려도 물가와 생산비는 오른다. 이 때문에 쌀 농가 실질소득은 매년 줄어들고 있다. 쌀농사를 지을수록 손해가 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쌀 목표가격을 물가인상률과 연동해 농업인들의 소득을 보전해줘야 한다는 ‘농업소득보전법 개정안’(이춘석A 의원 발의)이 나왔지만,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쌀 목표가격에 물가상승률 반영’은 문재인 대통령의 농업 관련 공약이기도 하다.

지난 13일 취임한 이개호 농림수산식품부 장관도 취임 일성으로 언급한 게 쌀값이다. 그는 인사청문회에서도 “산지 쌀값 17만5000원대는 아직도 부족하며 쌀 목표가격은 19만4000원은 돼야한다”고 발언했다.

이 장관이 쌀 목표가격을 언급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올해는 5년마다 돌아오는 쌀 변동직불금 목표 가격을 정하는 해다. 정부는 연내로 2018∼2022년산(産) 쌀에 적용할 ‘쌀 목표가격’을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변동직불금제’는 추곡수매제를 폐지한 대신 2005년 도입됐다. 쌀값이 목표 가격을 밑돌면, 정부가 변동직불금제를 통해 일부를 농가에 보전해준다.

5년 전엔 목표가격이 80㎏당 18만8000원으로 결정됐다. 윤소하 의원 등은 80㎏당 22만3000원을 제안했고, 일부 농업인 단체는 24만원까지 요구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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