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모종면 (주)동양환경 대표

최미향 기자l승인2018.10.24l수정2018.10.24 18:32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 모종면 ㈜동양환경 대표▲안면도 출생▲고려대학교 경제학과 학사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석사▲자산관리공사 캠코▲금융감독위원회 ▲키움증권

 

“사회구성원 모두 폐기물 처리에 대한 인식의 공유가 필요”

석유화학부산물 피치(Pitch) 제조기술 개발로 300억 원대 수입대체 효과 기대

 

<인터뷰 들어가기 전>

모종면 ㈜동양환경 대표를 만나러 가는 날은 가을 날씨 치곤 유난히 바람이 부는 목요일 오후였다. 중학교 중퇴, 깡패, 전과자라는 악성루머들로 유명한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 다소 긴장됐다.

인가라고는 없는 삭막한 산 밑에 우뚝 서있는 하얀색 건물 안으로 발을 들여놓고 신발장에 신고 온 구두를 조심스럽게 넣으면서도 되돌아갈까 참 망설였다. 그러나 ‘까짓것’ 마음을 다잡고 그를 만났다.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이 기자 앞에 놓였고 서로 악수를 나눴다.

“어제 오려다 오늘 왔다”는 기자의 말에 “어제는 부석사에 다녀왔습니다. 용지에 소원도 몇 자 적었고요”라며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짓는 모종면 대표. 순간 의외의 모습에 ‘이건 또 뭐지? 이렇게 천진난만한 웃음의 사나이였나?’ 2할의 긴장마저도 봄 눈 녹듯 사라지니 밤새 인터뷰해도 천연덕스럽게 받아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어진 인터뷰이의 잔잔한 이야기와 진정성 넘치는 대화에서 도대체 누가 왜 그런 악성루머를 만들었는지 궁금해졌다.

 

Q. 고향은 어디며 금융감독위원회에 다녔다고 하던데?

(모) 안면도 입니다. 정미소를 운영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초등학교 3학년까지 다니다 서울로 유학을 갔습니다. 부모님은 “우리는 배우지 못하고 살았지만 너만은 많이 배워서 세상에 이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 하시곤 하셨지요. 이러한 부모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노력한 결과 내가 원하는 대학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또 “공군 장교로 입대하면 결혼할 수 있다”는 친구 말에 학사장교로 입대했지요. 이렇게 서울공항에 근무를 하면서 대학 1학년 크리스마스 날 소개팅으로 만난 집 사람과 결혼을 했고, 1남 1녀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당시 장교출신들은 취업이 잘 되는 시절이었고 저 또한 ‘자산관리공사(캠코)’에 240대 1이라는 경쟁을 뚫고 무사히 안착했습니다. IMF 오기 1년 전에 취업 한 시기인 만큼 제가 맡은 업무가 IMF기금 대비를 위해 조직된 부서며 때가 때인지라 첫 출근과 동시에 새벽 3시에 퇴근을 했고 주말도 없이 일에 파묻혀 살았습니다. 집은 과천이었고, 직장은 서울 여의도라서 길거리에 소비하는 시간도 부족할 지경이었지요.

엄청난 업무량과 먼 거리의 출퇴근에 지쳐갈 무렵 탈출을 시도한 곳이 IMF를 대비하는 ‘구조기획계획단’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전문가를 뽑는다는 소리에 금융감독위원회에 지원을 했고 운이 좋아 합격을 하게 되었지요. 그 곳에서는 제일은행과 서울은행 구조조정팀, 해외매각팀, 대우그룹 해체, 한보철강 매각 등 저는 참 일복이 많은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과중한 업무에서 탈출했다고 생각했던 금융감독위원회는 캠코보다 더 바빠 1년에 딱 이틀밖에 쉬지 못합니다. 동료들 다들 그렇지만 본인 생일, 또 하루는 부모님 제사. 저는 부모님이 살아계시기에 일 년 중 하루만 쉴 수 있었습니다.(웃음) 퇴근도 주말에는 저녁7시, 평일에는 빨라야 11시였습니다. 과중한 업무도 업무지만 무엇보다 딸아이가 아빠 얼굴을 못 알아보는 것이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여하튼 시간은 흘러갔고 IMF가 마무리 되고 기반이 닦여질 즈음, 국장님께서. “어려운 시기가 지나갔고 우리 조직이 해체될 수 있으니 구조기획단이 해체되면 네가 원하는 데로 가도 좋다”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래서 다시 이직하게 되었습니다.

 

Q. 키움증권으로 이직할 때 조선일보에 기사가 날 정도였다던데? 그곳 생활은 어땠나?

(모) 비밀스러운 걸 어떻게 아셨네요.(웃음) 모시던 팀장님이 키움증권 초대사장으로 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팀 3명과 함께 그곳으로 이직을 했지요. 물론 조선일보에 난 것도 저 때문이 아니라 우리 팀원들(총9명)이 너무도 훌륭한 분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키움증권에 입사하고 나서 주식과 관련 된 것 외에도 본격적인 투자은행 업무인 M&A 업무를 맡았습니다. 당시 은행 M&A라는 게 국내에는 없던 시절이었음으로 키움에서 저는 MBA 입학했던 것 이상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오전에 출근하면 회사에서 외국인 교수와 변호사를 시켜 기업 평가기법과 M&A 기법 그리고 법률공부를 저에게 가르쳐 줬습니다. 정말 재미있게 공부했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제 바로 위의 그룹들은 모두 해외 유학파로 전문가들이었지요. 그때 배운 게 정말 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정시 출퇴근에 주말은 무조건 쉬는 것이었어요. 즐겁게 공부하면서 나름대로 사람 사는 맛이 나는 시기였습니다. 특히 주말마다 우리 네 식구가 함께 부대낄 수 있어서 가족의 소중함을 더욱 느꼈던 시기였지요.

 

Q. 어떤 계기로 (주)동양환경을 인수하게 되었나?

(모) 대학선배들과의 모임에서 어떤 선배가 “내가 인수하려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포기한 기업이 있다”며 대전의 폐기물 처리업을 전문으로 하는 ㈜동양환경을 인수하라고 제안하더군요. 처음엔 폐기물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던 터라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선배들의 부추김과 한 잔의 술에 그만 계약을 약속했고, 그로 인해 제 인생의 방향이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웃음) 당시엔 ‘어쨌거나 약속은 지켰으니 여차하면 뜨자’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유난히 추운 겨울에 혼자 보따리를 들고 (주)동양환경이 있는 대전으로 내려갔습니다. 막막하더군요. 우선 직원들에게 “나는 아무 소리 안하고 3년만 배울 테니까 마음대로 경영해 달라”고 제안했고 그럭저럭 잘 운영되었습니다. 그런데 ㈜동양환경을 매도하신 분이 ‘서산에 비슷한 업종이 있다. 인수하면 어떻겠느냐’고 하시더라고요. 자신이 없어 안 되겠다고 했지만 그분의 반 강요로 (주)동양환경을 인수할 때처럼 얼떨결에 (주)서광하이테크를 인수하게 되었습니다. 고향이 태안이니 고향에서 사업을 시작한 것이지요.

처음에는 (주)동양환경의 이사에게 서산 공장을 전적으로 맡기고 저는 대전에 있었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임직원들을 위해 저는 폐기물 업계 최초로 성과급을 도입했습니다.

이어 저와 임직원들은 정부정책에 부흥하여 (주)대산파워라는 폐기물을 활용한 발전소를 설립하기로 의기투합하고. 부지를 확보, 관련분야에서 가장 기술력이 높은 독일기술과 공급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기술입주가 될 시점, 담당 이사님이 다른 회사로 스카우트가 되어 떠나게 되면서 저는 대전에서 서산으로 자리를 옮겼고 그때부터 태어나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야했습니다. 그중 가장 저를 힘들게 한 것이 악성루머였습니다.

지역의 어떤 분이 “00지역 출신으로 중학교밖에 안 나온 조직폭력배에 살인전과 2범이라면서요?” 하기에 “이렇게 왜소한 폭력배도 있어요?”라고 웃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악소문들이 이상하게 사라지지 않고 재생산되더라고요. 제가 “법적으로 이게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하면 “건방지다”고 바로 또 악소문으로 이어지고. 서산에서의 사업 시작 자체가 이렇게 악소문으로 시작되다보니 처음엔 무척 막막하고 힘들었습니다. 욕부터 하시는 이장님, 쳐다보시지도 않으시는 이장님 등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서산생활. 진실은 마음으로부터 나온다고 했지요. 진정성을 갖고 대하다보니 지금은 전보다 많이 좋아져 스스럼없이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지만 초창기엔 무척 힘들었음을 고백합니다.

 

Q. 중학교 중퇴, 깡패, 전과자 등 악성루머에 대해 적극적 대처를 안했나?

(모) 성격탓인가요. 성격이 내성적이다 보니 ‘언젠가는 알아주겠지’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이런 저를 직원들은 “왜 적극적으로 오해를 풀지 않냐?”고 답답해 했지요. 처음에는 저도 많이 속상했지만 그럴 때마다 부석사 무량전에서 기도를 했습니다. 며칠 전에는 소원을 적어 놓고 마음을 다해 조아려도 봤지요.(웃음) 그곳에 가면 마음이 편하면서 동시에 책임감도 느끼고 아무튼 잔잔해서 좋습니다.

 

▲ (주)서광하이테크 전경

 

Q. 인수한 (주)서광하이테크는 어떤 회사인가?

(모) (주)서광하이테크는 재활용뿐만 아니라 순환경제를 추구하는 회사입니다. 순환경제(Circular Economy)란 자원 절약과 재활용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친환경 경제 모델을 말합니다. ‘자원채취(take)-대량생산(make)-폐기(dispose)’가 중심인 기존 ‘선형경제’의 대안으로 순환경제가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주)서광하이테크로 가지고 오는 폐기물의 90%는 서산테크노벨리 공단과 서산시 공공사업소에서 나오는 폐기물이며, 하수종말처리장에서 오염물질을 제거한 슬러지입니다. 서광에서는 이러한 폐기물들을 소각하는데, 소각 시 나오는 재생에너지인 소각폐열을 활용하여 하수종말처리장에서 나온 슬러지를 건조합니다. 이 건조된 부산물은 동서발전에 바이오매스 연료로 납품합니다. 슬러지를 건조할 수 있는 설비가 당사에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또 저희는 대산지역 화학회사에서 발생되는 폐유기용제를 정제탑에서 스팀으로 끓여 깨끗한 제품으로 재생산하여 판매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서광하이테크 시스템은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고 있는 순환경제를 실천하고 있는 회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현재 운영하고 있는 소각기술은 어떤 수준인가?

(모) 다량으로 발생되는 생활쓰레기 및 공장 폐기물(Settlement Waste)의 처리기술개발은 환경을 지키는 기술적 수단입니다. 그 기술수준은 환경문제 해결과 직결되죠. 오늘 날 배출되는 폐기물의 양과 종류는 방치나 매립으로 해결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독일에서는 오래 전부터 폐기물이 함유하고 있는 에너지 유용을 위한 거시적인 노력이 지속적으로 있었으며, 이에 폐기물 소각 플랜트들의 기술개발 즉 현대식 소각, 열분해 및 기화 프로세스 등을 통한 경제적 폐기물 처리와 소각 후 소각잔류물질 또는 소각재(Bottom-& Vessel Ash)에 대한 처리 및 재활용에 대해 선도적 기술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후발주자인 우리나라도 환경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얼마 전, 그동안 중국이 수입해 가던 폐비닐과 폐플라스틱의 수입을 중단해 버리자 전국이 난리가 났던 때를 기억할 것입니다. 쓰레기 대란이라는 재앙이 눈 앞에 다가온거죠.

저는 독일 선진기술을 체험하기 위해 폐기물발전소에 직접 가봤습니다. 그곳에서 폐플라스틱과 폐비닐을 태우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정말 깜짝 놀랐지요. 우리나라도 독일처럼 충분히 환경을 고려한 녹색 성장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하고 그들에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당신들의 기술을 적용하여 그대로 지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우리 회사에 가져오는 소각시설의 에너지 효율은 85%나 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동되고 있는 대부분의 소각시설들의 효율이 50%도 나올까 말까하니 참으로 엄청난 수치 아닌가요? 우리나라도 어서 빨리 독일 수준의 폐기물의 선순환을 위한 기술개발과 정책적 대안이 나와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 (주)대산파워 공사현장 전경

 

Q. 최근 석유화학 부산물을 활용한 기술개발에 성공했다고 하는데?

(모) 피치(Pitch) 제조기술입니다. 이 기술은 한국화학연구원 탄소산업선도연구단에서 산업통상자원부의 연구개발 지원 사업으로 수행되었습니다. 저희는 피치 제조 기술에 대한 기술이전계약 체결 및 한국화학연구원내 기업부설연구소를 설립하고 9월 10일 미래과학부장관(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위탁)으로부터 기업부설연구소에 대한 설립 인정을 받았습니다.

석유화학공정의 부산물로부터 피치를 만드는 기술은 지금까지 미국, 일본, 독일 등 일부 선진국에만 있었는데, 이제 우리나라도 상용화 단계로 접어들었습니다.

피치는 이차전지 음극재, 스마트폰, TV, PC에 들어가는 방열부품 등 다방면에 활용되는 기초 재료로 상용화 시 약 300억 원의 수입대체 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피치를 상용화하기 위해서는 원활한 석유화학공정의 부산물 수급과 피치제조에 필요한 에너지가 충분해야 합니다. 주변환경에 대산석유화학단지와 함께 신재생에너지발전사업을 추진하는 (주)대산파워를 자회사로 둔 저희 회사가 가장 적합합니다.

저희 ㈜동양환경의 자회사인 ㈜대산파워에서 생산되는 에너지(열과 전기)는 대부분 피치 제조에 소요될 예정입니다.

 

Q. 해마다 인근 학교에 성금 기탁 등 지역과 함께 하는데?

(모) 작은 정성입니다. 인근 지역학교 학생들이 낡은 악기를 가지고 연습한다는 말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작게나마 보탬이 되고자 한 것뿐인데 어떻게 서산시대에서 알게 되어 보도되었더군요. 부끄럽기도 하고 아무튼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교육은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행복하게 자신의 꿈을 펼쳤으면 좋겠습니다. 교육은 분명 사람이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 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제 고향은 안면도 입니다. 저는 열렬한 야구팬인데 당시 충청도를 연고로 한 야구단을 무척 좋아했고 자연스럽게 야구단을 소유한 그룹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팀 팬이 아닙니다. 이유가 있어요. 어느 날 야구단을 소유한 회사가 제 고향 안면도에 산을 깎아 목장을 만들었고. 우리 집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바로 제가 살던 집도 그곳이었으니까요. 갈 곳이 없으니 주민들이 격렬히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그 땅이 국유지와 도유지였기 때문에 방법이 없었지요. 어느 날 갑자기 농사짓던 사람에게 나가라고 하면 갈 데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이 제가 가장 좋아하던 회사에게서 마음을 접은 이유입니다.

지금 서산에 와서도 마찬가지 마음입니다. 이곳에서 살고 계시는 우리 지역민들에게 감사한 건 “사장이 바뀌더니 이전보다 많이 좋아졌더라”라는 칭찬입니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제가 인수받기 전의 이 회사와 지역민들 간에 감정의 골이 깊었다더군요. 그러나 지금은 많은 분들이 이해해 주시고 용기도 북돋아 주십니다. 책임감도 더 느끼고 그저 감사할 따름이지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모) 저희 직원들도 가장 처리하기 싫은 것을 꼽으라면 음식물 처리 후 버려지는 악취 나는 비닐봉투입니다. 올 여름 얼마나 폭염이었습니까. 우리 직원들의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하지만 폐기물처리장은 기업에 있어 수익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무와 공공성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외면할 순 없지 않나라며 마음을 다잡습니다.

쓰레기는 바로 우리가 버린 것입니다. 냄새는 발생할 수밖에 없고, 그것을 처리하자면 끊임없이 투자를 할 수 밖에 없지요. 남탓이 아닌거죠. 저는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 사회구성원 모두 폐기물 처리에 대한 인식의 공유가 반드시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버리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아닌 ‘내 집에서 배출한 쓰레기는 내가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 후손들에게 쓰레기를 유산으로 물려줄 수 없다’는 인식의 전환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초등학교 때부터 쓰레기를 분리 배출하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교육했으면 합니다. 쓰레기가 어떻게 소각되고, 버려지고, 재활용 되는지. 이런 것에 대한 교육과 가치관이 어릴 때부터 제대로 정립되어 있어야 소중한 우리 환경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최미향 기자  vmfms0830@naver.com
<저작권자 © 서산시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미향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여백
신문사소개임직원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 356-804 서산시 안견로 265 2층(동문동)  |  제보 및 각종문의 : 041)665-1412   |  팩스 : 041)665-1413
사업자등록번호 : 316-81-26582   |  발행인 : 류종철  |  편집인 : 박두웅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김창연 편집부장
Copyright © 2018 서산시대. All rights reserved.  |  inews77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