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성일종 국회의원

‘나를 키운 건 모두 어머니요, 어머니의 기도였습니다” 최미향 기자l승인2018.09.19l수정2018.09.19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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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일종 국회의원

‘나를 키운 건 모두 어머니요, 어머니의 기도였습니다”

최고의 효도는 깨끗한 정치인, 어려운 이들의 눈물을 닦아 주는 것

 

<대문을 열며>

제20대 성일종 국회의원을 만난 날은 올 여름 중에서도 유난히 폭염이 짙은 저녁 식사자리였다. 젓가락 부딪치는 소리만 날 것 같았는데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인터뷰 하시려면 많이 드셔야 됩니다.” 연신 찌개를 직접 떠 주시며 하시는 말씀. 사실 기자는 다이어트 중이었는데 정성이 좋아 한 그릇 뚝딱 먹었다.

“우리 어머니는 밥 잘 먹는 사람을 좋아했어요. 우리 기자님도 잘 먹으니 참 좋습니다.” 결국 어머니라는 단어 한자에 포기하고 주는 대로 먹어야 했다.

“의원님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어요?” 갑자기 수저를 들다말고 기자를 건너다보는데 순간 아차 싶었다. 왜 있잖은가. ‘어머니’라는 단어만 나와도 사람들은 갑자기 울컥하는 거.

“어린 시절, 어느 겨울인가 제가 눈병에 걸렸습니다. 어머니는 어린 저를 깨워 새벽기도에 데리고 갔지요. 난방도 되지 않는 차가운 마룻바닥의 섬뜩함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얼어 죽을 것 같았지만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 경건하고 간절하여 차마 가자는 말을 하지 못했어요. 일어날 때 보니 어머니가 앉았던 찬 마룻바닥에 물이 흥건히 고여 있는 겁니다. 어머니는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가슴 속 말들을 소리도 없이 하나님께 털어놓으며 뜨거운 눈물을 쏟았던 것이었죠. 하나님은 어머니에게 신앙이며, 유일한 친구셨고 정신과 의사이며 절대자였지요.” 말을 하다 간간히 끊어지기도 했다.

괜히 물어봤다고 생각하며 다음은 무슨 말로 서두를 꺼낼까 내심 고심하고 있는 찰나에 다음 말을 이어나간다.

“1997년 3월 27일 밤 여덟 시, 어머니는 영영 우리 4형제 곁을 떠났습니다. 발인 날, 추적추적 비가 내렸어요. ‘가시는 날도 섭섭해서 가시는구나’ 생각하니 눈물이 막 쏟아지더군요. 어머니는 당신이 직접 만든 수의를 입고 이승을 떠나셨습니다. 직접 베를 짜고 재단하고 바느질하여 만든 당신의 수의였죠. 어머니의 지극정성 속에 성장한 자식이지만 막상 어머니가 떠나고 나니 해드릴 게 아무 것도 없어요. 부모는 자식에게 남기고 가는 게 있는데 자식은 장의 치르는 것밖에 할 일이 없더라구요. 우리 형제들을 있게 해 준 자랑스러운 내 어머니에게 저는 이런 비문을 새겼습니다. ‘하나님의 딸 윤도순 권사, 그늘진 곳의 외롭고 가난한 자를 위하여 검소함과 근면함으로 봉사하시다. 영혼은 하나님 곁에 육신은 한줌의 재로 돌아가시다.’ 시인 서정주는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라고 했는데 저는 ‘나를 키운 건 모두 어머니요, 어머니의 기도였습니다.”

이미 음식은 식어있었고 에어컨에서는 덜덜거리는 소리만이 간간히 들릴 뿐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인터뷰는 꽤 오랜 시간으로 이어졌다.

 

Q, 일각에서는 성완종 형님의 후광으로 당선되었다는 말이 있다. 돌아가신 형님 얘기를 안 들어볼 수가 없다. 형님은 어떤 분이셨나?

(성) (성완종)형님은 어린 저를 업어 키운 분이시죠. 어머니는 돈을 벌기위해 어린 형에게 남동생 셋을 맡겨놓고 서울로 가야만 했어요. 맏이인데도 형편이 너무 곤란해 제대로 공부시키지 못한 미안함을, 어머니는 가시는 그날까지 떨치지 못하셨습니다. 어머니뿐만 아니라 우리 형제들 모두 형에게 그런 부채의식을 갖고 있어요. 저를 업고 외숙모와 함께 외갓집으로 간 형은 이모로부터 주소를 알아내 서울에 있는 어머니를 찾아갔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보통 아이라면 엄두도 못 냈을 텐데 혼자 어머니를 찾아 간 것이죠. 그 담대함과 지혜를 제가 어찌 따라갈 수 있을까요. 형은 맘씨 좋은 주인들의 허락을 구해 어머니와 함께 있으면서 새벽엔 신문을 돌리고 저녁엔 야학에 다녔습니다. 또한 장남답게 자신을 희생하여 동생들을 가르쳤지요. 형은 우리들에게 형이 아니라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아버지 없는 빈자리를 형이 오롯이 다 채워주었지요. 형이 든든히 뒤에 버티고 있었기에 우리는 마음대로 자기 꿈을 찾아 뜻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형은 언제나 자랑스러운 형이었죠. 형님의 후광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우리 형님이라고 해서 말하는 건 아니지만 굉장했지 않습니까. 저는 엄청난 혜택을 본거죠. 결국 두 가지 모두 작동했다고 봅니다. 플러스알파였죠. 그렇지만 (의원이)되고 나서부터는 제 몫 아니겠습니까.

 

▲ 밤을 세며 보좌진과 함께 국정감사를 준비하는 모습

 

Q, 슬로건이 ‘미래의 창을 여는 서민의 비서실장’이라고 들었다. 왜 그 슬로건을 선택했나?

(성) 먼저 어원을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비서란, 일부 중요한 직위에 있는 사람에게 직속되어 있으면서 사무를 맡아보는 직위에 있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저는 최우선적으로 시민들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도록 어떤 행정적인 사무를 맡고 있습니다. 또한 국회의원은 교육, 환경, 농업, 어업, 먹거리 등을 하나의 덩어리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우리 지역을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지에 대한 확고한 생각이 없으면 국회의원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현재 우리 앞에 놓인 문제들에 대한 솔루션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지난해 고수온으로 어민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어요. 보험부분을 살펴봤더니 특약으로 묶여 굉장히 비쌌습니다. 저는 먼저 그것을 일반으로 돌려놓아 어민들이 보험혜택을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가로림만도 어마어마한 해양생물보존지역으로 묶었습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한 방편으로 폐염전도 역간척하고 있지요. 또한, 사립학교 지원을 대폭 늘려 우리 아이들이 좀 더 쾌적한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앞으로도 미래의 인재 육성을 위해서라도 교육 사업은 계속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서울대병원을 유치하려고 노력중입니다. 아마도 좋은 소식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서·태안, 100년을 디자인 한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맞습니다. 저는 국회의원이 되면서 ‘서·태안, 100년을 디자인 한다’는 목표로 일하고 있습니다. 일단 서산을 삼등분으로 나눠 설명하겠습니다.

첫째, 해미·운산·고북·음암은 군사작전구역이지만 동시에 소음피해지역입니다. 여기에 뭘 먹고 살 것인지에 대해 철저히 고민을 해봤습니다. 이곳에 있는 대표적인 곳이 삼화목장이죠. 선거 때마다 각가지 공약을 냅니다. 저는 이곳에 생명공학밸리를 만들기 위해 시범사업을 진행 중에 있습니다. 평가가 마무리되면 최종 결정이 주어지겠지요. 이처럼 이제는 우리도 미래 100년 아니 200년을 준비해야 한다고 봅니다.

둘째, 대산·성연·지곡은 공업지역입니다. 환경오염을 줄이는 것이 가장 급선무죠. 그래서 저는 정밀화학단지를 선거공약으로 내세웠고 작업하고 있습니다. 미래시장은 소재싸움입니다. 미래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시대가 도래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죠. 그러기 위해서는 소재가 가벼워야 합니다. 고분자소재사업을 육성하여 성연이나 지곡 자동차공장에 납품해야 합니다. 이것은 향후 100년을 바라볼 수 있는 꿈의 서산입니다.

셋째, 서산·팔봉·부석·인지는 청정지역입니다. 앞으로는 주거지 중심, 생활중심으로 가야하는 곳이죠. 그래서 부석에 있는 웰빙특구에서부터 태안까지 국비 400억대를 끌어와 부남교를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내포에서부터 들어오는 도로와 연결 지어 놓으면 웰빙도시로 활성화하는 것은 시간문제겠죠.

 

▲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성일종 의원

 

Q, 전 지방선거에 있어 공천 시기가 너무 늦은 감이 있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성) 저는 당이 짜준 스케줄대로 갔습니다. 경합이 없는 지역부터 제일 마지막에는 경합이 센 지역이 마지막 순이었죠. 사실 전략적 공천을 달라고 했던 분도 있었죠. 그렇게 되면 나머지 두 후보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래서 어느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았습니다. 게임이 끝나고 후보가 결정되었을 때 두 후보가 승자에게 축하의 인사를 하면서 깨끗하게 승복선언도 했습니다. 물론 섭섭해 하는 이야기는 있었지만 소송이 걸렸거나 이의제기를 한 곳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가장 공정하고 냉정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Q, 현재 주공아파트에 산다. 서민아파트의 대명사인 그곳에 사는 이유가 있나? 항간에서는 정치적 쇼라고도 한다. 돈도 많은데 굳이 그곳에 사는 이유가 뭔가?

(성) 사업으로 성공한 큰형님은 어머니를 위해 서산 시내에 2층짜리 근사한 집을 사드렸습니다. 큰집 혼자 써서 뭐하냐며 어머니는 서산농고 다니는 가난한 학생들을 여럿 집에 거두었지요. 성적도 그리 좋지 않은 애들이었습니다. “어머니, 이왕이면 공부 잘하는 애들을 도와주지 그러셔요”라는 말에 어머니는 “가난한데 공부도 못하니 내가 거두어야지. 공부 못해도 사람만 신실하면 다 그 쓰임이 있는 법이다”라며 저를 나무랐습니다. 어머니는 그렇게 저를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우리 어머니도 당신 뉘일 자리면 족하다 하셨는데, 제가 가장 존경했던 형님 또한 (주공아파트)이곳에서 사셨는데, 저도 당연히 주공아파트에 터를 잡기위해 집을 사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다보니 본의 아니게 1가구 2주택이 되어버렸어요. 어쩔 수 없이 서울에 있던 집을 팔았습니다.

제가 국회의원하면서 작은집에 사는 것이 이상한가요? 우리 집은 두 식구만 삽니다. 조금 낡았지만 뭐가 불편합니까? 충분히 살만해요. 저는 (작은집에 사는 것이)문제가 아니라 “어떠한 계층을 향해서 메시지를 줄 것이냐”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저 밑바닥에서부터 컸습니다. 사람들이 그래요. “거기 들어가서 살면 어느새 다 도망가더라.”

그분들에게 “(저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저는 집을 샀다. 살아보니 너무너무 좋다. 아파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모두 인사하면서 사는 모습이 좋다. 무엇보다 지난 선거 때 우리 아파트에서 이래봬도 내가 1등 먹었다. 앞으로도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계속 살 예정이다”라고 말해줍니다. 다들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이런 분들을 두고 제가 왜 떠납니까.(웃음)

 

▲ 경로당 봉사활동에 나선 성일종 의원

 

Q, 교수와 사업가를 넘어 지금은 국회의원을 하고 있다. 어찌 보면 참 복 받았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왜 하는가?

‘내 인생 전반부는 나를 위해 살았고 후반부에 또 다시 나만 위해 산다면 이것이야말로 비겁할 수도 있겠구나. 이제는 공익이나 국가를 위해 살 때가 되었다.’ 진지하게 고민하며 출마를 결심했습니다.

‘눈물 흘리는 사람에게는 눈물을 닦아 줄 것이고,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는 풀어 줄 것이며, 힘들고 외로운 사람이 있을 땐 언제든 응원하고 손잡아 주는 것이 내 역할이구나. 과거의 삶은 매듭을 짓고 이제 미래로 가야겠구나!’ 그렇게 결심했습니다.

정치를 하는 것은 사회적 시각으로 각기 다른 계층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유권자들이 소수 사람들에게 권력위임을 해 준 것은 이것을 누리라고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 권력으로 ‘균형을 잡아라. 남을 업신여기지 말고 억울하지 않게 하라’는 명령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매일 아침 감사 기도를 하며 다짐합니다. ‘한번을 하던 열 번을 하던 제대로 하자. 앞으로도 잘못된 것이 있다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자. 절대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나아가자. 내게는 따뜻하게 응원하고 있는 시민들이 곁에 있지 않은가’라고요.

 

Q, 앞으로 어떤 정치인이 되고 싶나?

(성) 아직도 제 어머니를 전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닮으려 노력할 뿐이지요. 어머니의 아들로 부끄럽지 않은 정치인으로 살려고 노력합니다. 인간적으로, 사회적으로, 후회 없이 잘 살았다는 것을 보여드리는 게 최고의 효도라고 생각하며 깨끗한 정치인이 될 생각입니다.

동시에 길을 여는 정치인이 되고 싶어요. 지역을 다녀보면 다들 “요즘 어렵지 않냐?”고 제 걱정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사실 태평성대에는 할 일이 별로 없습니다.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해요. 그런데 무너진 (자유한국)당에서는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새로운 미래를 밝혀야 하고, 책임 있게 끌어가야 하는 것 등 할 일들이 부지기수지요. 국회의원은 폼 나는 일보다 굳은 일, 험한 일을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환경문제와 정치적 역할을 하는 것은 험한 일이지요. 그런 것을 하면서 제게 주어진 시대적 문제를 잘 풀어내려고 합니다.

 

Q, 시민들에게 한 말씀 해 달라.

(성) 감사하게도 저는 우리 시민들의 마음을 받았습니다. “일만 똑바로 해 달라. 겸손하게 섬기며, 일할 때는 욕심 없이 하라. 무엇보다 국민들 등골 휘지 않게 하라. 있는 자들이 나쁜 짓 못하게 감시기능 철저히 하라. 균형 있게 일하라.” 이런 일을 해달라고 시민들이 국회의원을 선택해 준 것입니다. 이것은 저의 철학이자 생각 그리고 제가 앞으로 나아가야 될 방향이기도 하구요. 저는 우리 시민들의 행복을 위해서 앞으로도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이제 며칠 있으면 풍성한 한가위입니다. 가득 차오르는 보름달처럼 행복도 건강도 행운까지도 모두 꽉 차 오르는 즐거운 추석되시길 기원합니다.


최미향 기자  vmfms083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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