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가국일 단국대학교 대학원 특수법무학과 주임교수

최미향 기자l승인2018.09.12l수정2018.11.08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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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국일 단국대학교 대학원 특수법무학과 주임교수

 

“오늘날 삶의 가장 큰 가치는 바로 봉사다”

이 시대의 숭고한 가치는 사회를 위해 아낌없이 자기 몫을 내어 놓는 것

 

<대문을 열며>

 

21년 동안 여행사를 운영하면서 신문지상에 나와 있는 대표적인 관광지는 아프리카를 제외하곤 거의 다 가봤다는 가국일(57) 단국대학교 대학원 특수법무학과 주임교수를 오전 일찍 만났다. 기자가 그곳에 방문했을 땐 이른 시각인데도 불구하고 법률 번역일로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선뜻 다가와 악수를 청하며 활짝 웃는데 그 모습이 예전 국화 한 송이를 꺾어 몰래 담 넘어 내게 전해준 옆집 오빠를 닮은 듯하다.

언제부터 번역 일을 했냐는 질문에 잠시 들고 있던 펜을 쳐다보더니 21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며, 몇 번이고 그만 두려고 해도 서산은 물론이거니와 안산, 대천, 광천, 서천, 홍성, 예산 등 각지에서 찾아오니 그들을 위해서라도 쉽게 그만둘 수가 없었다고 한다. “외국 사람이 한국에서 살아가려면 법적인 절차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의료보험 혜택을 받으려면 가족관계증명서를 번역공증하여 제출해야 하고, 혼인을 한다고 치면 여러 서류를 번역공증 받아 제출해야 되지요. 또 우리나라에서 갑자기 사망사고가 일어났을 때 등 별의별 일들이 다 있습니다. 지난번에는 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는데 급하게 찾는 전화가 왔어요. 중국어선이 불법조업하다가 태안해경에 나포된 사건이었는데, 중국 측 보험회사의 보험가입증명을 법원 제출해야 배가 출항할 수 있다며, 다른 곳으로 알아보고 도움을 청하라 해도 막무가내로 기다리겠다는 겁니다. 결국 퇴근 후 번역을 시작하여 새벽에 겨우 마무리하고 다음날 서류를 제출했죠. 그날 아침 중국 배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기고 출항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중에도 연신 법적 다툼으로 힘들어하는 분들의 전화를 받느라 중간 중간 대화가 끊어지기도 했다. 미안해하는 표정에 기자는 손사래를 치며 “새털 같은 시간입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전화 받으세요.” 기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한편에 놓인 장식장 안 수석들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저렇게 바쁜데 언제 또 이런 고급스런 취미를 가졌는지 뒤를 보며 다시 한 번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진심을 다해 친절하게 무료법률을 상담해 주는 모습이 진정 존경스러워 혹여 기자의 눈길이 방해가 될까 얼른 고개를 돌리고 차를 마셨다.

가만히 생각하니 그렇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법에 얽혀 산다. 심지어 우리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권리능력을 부여받는 동시에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법률관계가 이어진다. 그리고 사후까지도 말이다. 그냥 예사롭게 짓는 죄도 있을 뿐 아니라, 몰라서도 이런저런 방법으로 법을 어기기도 한다. 이제는 일선 학교에서도 미적분만 가르칠게 아니라 최소한 법률적인 기본 개념만이라도 교육시켜 법을 몰라서 선하게 사는 국민이 피해를 보고, 억울하게 송사에 휘말리지 않게 하면 좋겠다. 가령 이런 것들은 어떨까. 계약서 작성법과 사기 당하지 않는 법, 채권소멸시효, 공소시효, 유사수신행위(類似受信行爲)다단계 등.

 

▲ 대학원 졸업생들과 함께

 

Q, 전문대 전기과를 졸업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법학의 길로 들어섰으며 그 과정에서 힘들지는 않았나?

(가) 너무 생소하지 않은가. 전기학도가 어느 순간 법학의 길로 들어선 것이. 내가 생각해도 인생이라는 것은 미리 짐작하기에는 어디로 튈지 모를 탁구공인 것 같다.

전문대 전기과 졸업을 앞두고 무언가 성취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밤잠을 설치게 만들었다. 그래서 졸업하는 해에 다시 한 번 도전하는 거야!’ 하고 학력고사를 다시 보았다.

생각이 행동을 바꾸고, 행동의 반복은 습관을 만들며, 습관은 인생을 바꾼다고 했는데, 그때 다시 한 번 도전하자는 생각이 인생을 바꾼 것 같다.

무엇보다 자꾸 사회의 약자들이 눈에 밟혔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원대한 꿈을 꾸고 법대로 들어가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그냥 법을 몰라 법에 치이고, 사회를 몰라 그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알게 모르게 짓는 죄로 고통을 받는 그들에게 미력하나마 올바른 법을 전달하고 싶었다.

결국 전문대를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법대 1학년생으로 나는 다시 학부생이 되었고 입학과 동시에 고시 반에 입실했다. 그때 옆 짝꿍이 지금의 김성열 수원지검 부장검사다. 그 외 송호택 변호사. 엄태준 경기도 이천 시장, 백석대학 나달숙 교수, 김성태 영사 등이 함께 동문수학했으니 시골에서 온 내가 그분들과 발맞추려면 얼마나 피터지게 공부했겠나. 더군다나 공대에서 방정식과 숫자 맞추기만 하다가 한자투성이 법 개념을 익히려니 머리에 쥐가 열 마리는 돌아다니는 듯 했다. 3개월 이상을 밤낮으로 투자하고 나서야 서서히 법적 개념정리가 되었다. 이렇게 나는 새로운 인생 과정에 있어 나와의 약속은 꼭 지키고 싶었다. 법을 몰라서 당하는 피해는 적어도 없어야 되니까.

약자들에게 나의 배움이 도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심정으로 공부에 임했다. 그렇게 2학년을 마치고 더 늦기 전에 빨리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싶은 조급한 마음에 입대를 했다. 강원도 원통의 12사단 발칸포 사수로 근무했다. 국방부 시계는 힘든 와중에도 돌아간다는 확실한 사실을 체험했고 여름 어느 날, 나는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전역을 했다.

그 후부터는 전적으로 학업에 전념하며 약자를 위한 미래의 삶을 재단하기 시작했다. 학교 앞에서 자취하며 새벽 5시 기상과 동시에 저수지를 끼고 구보를 했다. 이른 아침이면 도서관 아저씨를 깨워 열쇠를 받아 도서관 문을 열고 자리에 앉아 공부를 했고, 도서관 불이 꺼질 때까지 한자리에 앉아 글밥을 팠다. 지금 생각해도 참 모진 느낌이 든다. 지금에 와서야 고백하지만 그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성실하게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 내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며 잠시 뿌듯하기까지 했다(웃음) 가끔은 아침 먹으러 도서관 계단을 밟을 때 유리창 너머로 비춰진 아름다운 일출, 그것은 보지 않은 사람은 얼마나 황홀한지 모를 거다. 모든 자연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예감. 특히 저녁 석양이 지는 모습은 ‘움츠린 개구리가 멀리 뛰듯 ‘어쩌면 나를 위한 태양을 떠오르게 하기 위해 잠시 수면 아래로 내려가는 건 아닐까?’ 라는 착각에 사로잡힐 정도였으니까. 이런 마음들이 모여 주저앉지 않고 끝까지 학업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대학 4년이 너무 빨리 가서 아쉽더라. 입학한지 엊그제 같은데 징검다리 하나 폴짝 건넜다 생각했는데 어느새 졸업 그리고 돌아보니 30년, 지금의 내 자리에 나는 서 있다.

 

▲ 해미읍성에서 열린 수석전

 

Q, 벽이라고 생각한 것은 결국 출발을 의미한다. 혹시 그런 경험이 있나?

(가) 사법고시에서 2점차로 낙방을 했다. 당시 나는 그것이 벽이라고 생각했는데 뒤 돌아보니 인생길을 더 폭넓게 살게 해준 시련의 하나였을 뿐이었다.

군복무를 마치고 한번 매달려 보자는 심정으로 공부를 하니 학교수석을 하게 되더라. 졸업 할 때까지 수석자리는 늘 내 차지가 되었다. 그 후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학자의 삶을 살기위해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인생은 참 묘하게도 내 뜻대로는 살아지기 힘들더라. 어느 날 한국에서 연락이 왔다. “부동산계약관계가 문제가 생겼으니 네가 들어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라고. 그 길로 급히 귀국길에 올랐다. 기업을 상대로 배운 법지식을 총동원하고, 증거자료 확보, 모르는 것은 발품을 팔아 찾아내고 대처하여, 결국 다섯 사건이나 되는 소송에서 모두 승소하는 기쁨을 안았다. 이런 것들을 깨우치는 데는 무엇보다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진실히 알게 되었다.

기쁨도 잠시, 바람처럼 몰려오는 학문에 대한 아쉬움이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우리 집안이 그랬던 것처럼 억울한 분들의 대변자 역할을 할 제자들을 배출하고 싶었다. 교육이라는 것은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다. 교육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크게는 나라를 구할 수도 망하게 할 수도 있다.

어쨌든, 학문이란 ‘해야겠다.’란 의지만 있으면 언젠가는 의지를 실현하려고 노력하나 보다. 내가 그랬으니까. 앞으로도 어떠한 벽이 가로막힐 지라도 나는 벽이 곧 문이란 생각으로 벽 앞에 멈춰 서지 않을 생각이다.

 

Q, 봉사를 참 많이 하고 있다. 무료법률상담봉사 외에도 자살방지교육 및 라이온스연수원 교수직까지. 시간이 있기는 하나?

(가) 바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봉사를 위한 시간은 늘 가슴 한편에 남겨두고 있다. 먼저 봉사에 대해 짚어보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오늘날 삶에 있어 가치 추구는 바로 봉사다. 현 시대는 존경이란 개념 자체부터가 다르다. 사람들은 혼자 배부르게, 편하게 사는 사람을 존경하지는 않는다. 그 사람은 그냥 살아가는 거다. 이 세상에 그런 사람은 정말 많다. 오늘날의 독립운동은 바로 사회 봉사활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나라를 빼앗겼을 때는 나를 희생하여 나라를 구하는 것이 숭고한 가치추구였다면, 이 시대의 숭고한 가치추구는 시간과 물질 그리고 재능을 사회를 위해 아낌없이, (자기 몫을)내어 놓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이런 분들에게 먼저 경의를 표한다.

자살방지교육은 실로 어마어마한 효과를 내기에 놓칠 수 없다. 얼마 전 검사가 상사의 압박에 못 이겨 스트레스로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스트레스 주제로 법원에서 강의를 했다. 대한민국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안타깝게도 자살률 1위다. 정부에서는 인구 절벽을 걱정하며 육아 복지에 신경 쓸 테니 아이만 낳아 달라고 외친다. 실상은 지금 살아있는 사람이 자신의 명을 다하지 못하고 힘들다며 죽음을 선택하는데 여기에 더 관심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먼저 출산을 권장하는 것도 좋지만 그에 앞서 자살을 줄여 나가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한다고 본다. 1년에 약 1만3천여 명이 자살, 더군다나 노인자살률은 전국에서 충남이 제일 높다.

많은 사람들이 초등학생들은 자살이란 단어와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놀랄만한 결과는 초등학생 자살자 수가 1년에 130~140명이라는 거다. 그런데 한 해 동안 자살방지 교육 2시간씩을 시켰더니 2017년에는 24명으로 현저히 줄었다. 이처럼 교육이라는 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다. 교육은 나라를 구할 수도 있지만 망하게도 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Q, 2008년부터 ‘법과역사학회’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그곳에서 역사적인 사건들에 대하여 법 해석을 하고 기록물로 남긴다고 했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가) 법은 역사와 늘 같이 해왔고 시대에 따라 그 잣대부터가 다르다. 따라서 역사 속에 일어난 사건들을 그 당시 시대상 법의 기준과 현대의 시각에서 비교분석하는 일을 한다. 예를 들면 안중근 의사의 의거, 김구 선생의 임시정부 법령체계, 최근의 국정농단사건까지 역사적으로 특이한 사건에 대하여 하나하나 심도 있게 법적 관점에서 재조명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을 하다보면 이것을 토대로 미래에 벌어질 사건에 대하여 좀 더 심사숙고하여 합리적인 법의 기준들을 도출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역사에 길이 남을 프로젝트를 만들기로 학회 회원들과 약속했다. 특히 박영수 검사는 “내가 후원할 테니까 법과 역사학회를 발전시켜 한국 법학발전에 중심이 되는 학회를 만들자.”고 했는데 아쉽게도 국정농단 의혹사건수사의 특별검사로 임명되는 바람에 잠시 보류하고 있다. 특검이 끝나면 다시 합류해서 같이 만들어 갈 생각이다.

 

▲ 제67회 하계학술발표대회 “6.13지방선거와 공직선거법”

 

Q, 역사적 인물 중 가장 존경하는 분은 누구인가?

내가 존경하는 인물은 안중근 의사다. 그 분은 참 당당해서 좋았다. 학교에서도 강의하면서 학생들에게 늘 당당하게 살라고 한다. 사람이 당당해지려면 내공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반드시 노력하여 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말해준다. 특히 양심이 떳떳해야 하는데 자기 자신 스스로 양심에 비추어 떳떳하다고 생각해야만 비로소 그 속에서 당당함이 나온다고 강조한다.

‘장부수사심여철 의사임위기사운(丈夫雖死心如鐵 義士臨危氣似雲)’은 1910년 3월 안중근의사가 옥중에서 남긴 글이다. 나는 이 글귀를 상당히 좋아한다. ‘장부는 비록 죽더라도 마음은 쇠와 같으며, 의사는 위태로움에 닥치더라도 그 기운은 구름과 같다.’ 이것은 안 의사가 32세 나이에 쓴 글인데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강철 같은 마음과 하늘의 구름 같은 위풍당당함 그리고 빛나는 기백이 글 속에 절절히 배어 있다.

그보다 더 큰 마음은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성녀 여사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구걸하지 말라.” 어느 어머니가 자기 뱃속으로 낳은 자식에게 죽으라고 할 수 있겠는가? 참으로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셨던 분이다. 진심으로 존경받아야 마땅한 위인들이다.

 

Q, 법조인으로서 기억에 남는 일들이 있다면?

(가) 악법도 법이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과거 공직선거법에서 공무원은 ‘비록 남편이 출마를 할지라도 선거중립을 지켜야 한다.’였다. 심지어는 명함 한 장도 돌리지 못한다.

한번은 이런 사건이 있었다. 대천에서 교사 남편이 선거직에 출마하였다. 여교사는 공무원의 신분으로 남편을 돕는 것이 선거법에 저촉되는 것이라 생각하지 못하고, 남편의 명함 몇 장을 지인들에게 돌렸다. 당시의 법으로는 선거법 위반이다. 당연히 당선 취소가 되었다. 지금은 개정되어 배우자가 선거 운동을 할 수 있지만 정말 안타까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법을 만들 때 사후 발생되는 효과를 잘 헤아리지 않고 만든 법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몇 해 전, 서울대공원 호랑이가 사육사를 물어 죽인 사건을 모두 기억할 거다. 원래는 그곳 수리를 내 친구가 했었는데 사업상 바빠서 인계하고, 다른 사람이 대신 호랑이 우리의 문을 수리하였다 한다. 지침서 상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에 호랑이를 가둬놓은 상태에서 우리 보수를 해야 한다.’고 되어 있는데 규정을 어기고 호랑이가 보는 상태에서 수리를 했단다. 호랑이가 영물은 영물인가보다. 사람들이 시건장치를 들어서 여는 것을 보고 호랑이가 문을 열고 나와 사육사를 물었다고 했다. 정말 안타깝다.

이 사건은 많은 분들이 기억할 것 같다. 분당 테크노벨리 지하철 환풍구 위에서 공연을 보던 사람들이 추락해 16명이 사망하고, 9명이 중상을 입는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그때 행사를 주체한 기획사와 경기도가 사망자 배상금을 지급하고, 환풍구 공사를 했던 시공사를 상대로 하는 사망자 배상금와 부상자 사후 발생되는 치료비 배상금 합해 약250억 원에 대한 구상권 청구소송이 있었다. 먼저 어느 로펌을 선정하는 것이 적합한지 심사하는 7인의 위원회를 만들었는데, 내가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심사하면서 자료를 보니 중간에 지나는 철 구조물에 용접이 허술하여 발생한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위의 두 경우 모두 안전 불감증이 원인이었다.

 

Q, 법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가) 국회의원이라고 하면 국민들은 정치인으로 안다. 사실 국회의원은 입법위원이다. 제일 중요한 것이 법을 만드는 일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법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고 하는 후보자들이 의외로 있더라. 물론 보좌관들이 있고 전문가의 조력을 받겠지만 그 한계는 분명히 있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법을 만들려면 법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법학을 가르치다보면 잘못된 법률이 하나씩 눈에 보인다. 늘 한계는 있겠지만 국민들 생활이 불편하지 않도록 시대의 필요에 따른 법안을 빠른 시일 내 심의하고 개정하여야 한다.

대한민국 국회의 제일 큰 문제는 입법을 하라고 선출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정쟁을 하느라 심의도 하지 않고 있다가 일괄처리로 법안을 몇 천 건씩 (한꺼번에)처리한다는 것이다. 제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은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다.

법은 국민들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그런 법들이 정치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어느 날 갑자기 한꺼번에 처리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후진국에서 일어나는 이런 일들이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정치의 기본은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정치인만 편하게 살지 말고 국민도 좀 편안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나. 기본적인 소양인 ‘나라를 위하고 국민을 위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정치를 해야 한다. 이 마음이 곧 국민의 마음이다.

 

Q, 서산시대 독자들에게 한 말씀

(가) 서산시대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언론은 사회적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 사회적 정의를 추구하는데 앞장서는 서산시대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독자들 또한 많은 이용은 물론이거니와 지켜보고 같이 후원하면서 정론집필하는 서산시대가 될 수 있도록 같이 키워 나가자. 몇몇이 만드는 것이 아닌 시민 모두가 함께 만드는 신문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조금 이른 감은 있지만 다가오는 추석에도 온 가족이 함께하는 행복한 명절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최미향 기자  vmfms083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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