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극복의 삶】맑은샘 공예협동조합의 아름다운 여인들

최미향 기자l승인2018.08.22l수정2018.08.22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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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은샘 공예협동조합 회원들(왼쪽부터 방에스더, 이미현, 허정선, 오진영, 이은희, 한보람)

 

아름다운 엄마들의 당찬 ‘삶의 도전 이야기’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 보석임을 잊지 말았으면 해요”

 

Q. 여성으로 또 엄마로 새로운 꿈을 찾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재 하고 있는 일들의 계기가 있었다면?

 

▲ 허정선 맑은샘 공예협동조합 이사장

 

▶(허정선) 큰아이가 여드름이 심했어요. 좋다는 곳은 모두 다녀봤지만 그때뿐이었는데 우연히 길을 가다 골목길 끝에서부터 나던 향기가 절 이끌었고 그 향기로 아이는 여드름을 퇴치할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골목길 끝에서부터 나던 향기가 절 이끌지 않았다면 상상하기도 싫어요.(웃음) 하지만 아로마 테라피스트에게 치명적인 건 냄새를 못 맡는 거잖아요? 애석하게도 제가 그래요. 대신 전 향을 느낄 수는 없지만 눈으로 색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향취보다는 차가운 새벽녘의 작은 숲에서 만난 이슬 맺힌 초록색 풀잎을 떠올린다든지, 또는 축축한 길 옆 커다란 나무 곁에 흰색 레이스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나무 계단을 뛰어 오르는 모습 같은 거요. 이해가 되시나요?(웃음)

 

▲ 배지현 씨(수제도장 명작)

 

▶(배지현) 평소 ‘인생을 정말 가치있게 살자’라는 것이 저의 신조였어요. 그러다보니 육아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만난 것이 바로 수제도장이었지요. 힘들었지만 열심히 하다 보니 어느 날 문득, 아줌마가 아줌마를 이끄는 강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아줌마가 되었다고 해서 경력단절 여자의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지금 저에게 도장이란 감사 그 자체입니다. 작품을 만들면서 아이가 옆에서 계속 보챌 때는 ‘언제 이걸 다 끝내나’ 싶으면서도 하나 끝내면 기쁨과 보람이 너무너무 커요. 특히 <엄마와 아기>라는 작품을 할 때는, 옆에서 매일같이 칭얼대는 아이 때문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결국 완성하고 보니 언제 화를 냈는지도 기억이 안나는 작품입니다.

요즘은 주로 아이가 잠든 늦은 시간이 저만의 만찬 같은 ‘시작’이 됩니다. 모든 소리가 깨어있는 낮보다는 사실 밤에 더 (수제도장 작업) 집중하기에 좋지요. 이 땅의 많은 분들도 꿈을 꾸고 그 꿈을 위해 도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오진영 씨(나의 열두달 향기를 담다)

 

▶(오진영) 예전부터 캔들을 몇 개씩 레이어링해서 태우고, 욕실에 클렌징 관련제품을 여러 개 놓고 쓸 만큼 캔들과 비누제품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천연비누와 ‘소이캔들’을 알게 되었고, 또 그것을 배우면서 그 동안 써왔던 제품들보다 좋음을 느끼게 되었죠. 실제로도 그간 쓰다만 클렌징 제품 비누는 그대로 두고, 몇 달 전부터는 아예 제가 직접 만든 천연비누제품으로 샤워할 때나 세수할 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누군가에게 이 녀석들을 가르치고 있더라구요. 요즘은 알찬 수업을 위해 동생과 함께 연습하고 연구도 하고 있습니다.

 

▲ 이미현 씨(향기가 머무는 곳)

 

▶(이미현) 음식을 먹는 다는 것은 사람의 영혼을 알아 간다는 것이라고 누군가는 말했습니다. 이처럼 먹는다는 것은 어쩌면 힘들고 지친 영혼에게 마음을 푸근하게 만들어주는 유일한 통로 아닐까요? 곁에서 구워지는 고소한 빵 내음만 맡아도 저는 그만 아득해지는 그리움 같은 것이 막 가슴속에서 번져요. 그런데 그것이 혀끝에서 살아난다 생각해봐요. ‘아 미친다!’는 말이 바로 이때 쓰이는 단어가 아닐까요? 이런 이유로 제가 아직도 사족을 못 쓰고 덤비는 이유인 것 같기도 하구요. 아 참, 이것도 있네요. 특히 많은 사람들에게 잘못 알려져 있는 것들도 제대로 좀 알리고 싶은 마음? 왜 있잖아요 괜히 의무같은 거.(웃음)

 

▲ 이은희 씨(맑은샘 자연을 닮다)

 

▶(이은희) 육아와 함께 뭐 좀 참신한 것이 없을까 생각하며 이리저리 다녀도 보고, 잡지책도 사다보며 저에게 맞는 것을 찾기 시작했죠. 그때 제 머리를 훅 사로잡았던 것이 생활용품 접근이었습니다. 접근성도 좋잖아요.(웃음)

배우는 학생으로서 또한 강사로서의 과정은 녹록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지식을 다른 분들에게 전달하여 그분들의 배움에 조금이라도 즐거움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또한 저의 행복이기도 하단 생각이 들어요.

 

▲ 한보람 씨(캔들라미)

 

▶(한보람) 어렸을 때부터 손으로 그리거나 만드는 일을 무척 좋아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고등학교 때까지 디자인과를 다니며 미술학도를 꿈꾸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대학을 진학하려니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어요. 하는 수 없이 미대 진학은 포기하고 전혀 다른 학과를 다니게 되었고 졸업과 동시에 직장에 다녔습니다.

시간이 흘러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이곳 서산으로 오게 되었네요. 낯선 곳으로 오다보니 몸과 마음이 우울해졌어요. 그러던 어느 날, 신기하게도 다른 지역에서 공방을 운영하던 동창을 우연히 만나게 된 겁니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수다를 떨다 문득 ‘나도 취미 하나쯤은 가져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그 길로 당장 수강을 했죠. 수업을 하는 동안 좋은 향기와 함께 창작을 하는 내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어요. ‘아, 이 길이 내길이구나.’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틈틈이 배웠고 그러다 보니 자격증까지. 특히 ‘아로마캔들지도사범’과 ‘아로마심리상담사’ 2급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본격적으로 이 일에 뛰어든 겁니다.

 

Q. 육아. 엄마라는 길에서 느끼는 것들은?

▶(배지현) 저는 잊을 수 없는 단어를 말할까 해요. 그것은 바로 ‘처음’이란 단어입니다. 제게 엄마라는 이름은 처음 겪어 보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처음은 언제나 서툴지요. 제 아이도 엄마처럼, 자신의 인생에서 모든 일들이 처음 겪는 일들이라 상당히 두렵고 서툰가 봅니다. 호기심도 많구요. 저는 언제까지나 우리 아이 곁에 영원히 함께 있고 싶고 함께 하고 싶습니다.

▶(이미현) 연습없이 아이를 낳았습니다. 육아하는 과정에서는 대부분 엄마들이 답이 없다고 하잖아요. 저는 ‘그건 핑계일지 모른다’는 이유로 적절한 답을 찾기 바빴던 거 같아요. 그 과정에서 실망도 하고... 아이도 저도 참 힘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육아과정 중 아쉬운 부분을 말했네요.

▶(이은희) 저는 뭐 남들처럼 현모양처가 꿈인 적도 없었고 그저 열심히 주어진 생활에 만족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다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해서 어느 날 제 곁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이를 선물 받았어요. 연습없이 부딪치다 보니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하긴 저만 힘들었겠어요. 세상 모든 엄마들이 1인 4역 내지는 5역을 하니 전투 비슷무리한 것을 하죠.(웃음) 그렇지만 그 과정속에서 또 행복을 느끼고.... 이런 모든 것들이 인생인 것 같아요.

▶(한보람) 결혼까지 친정 엄마가 반대를 많이 하셨습니다. 저희 신랑이 글쎄 8남매의 외동아들이거든요. 그러니 일곱 명의 시누이들이 있는 집에 저를 시집보낼 수 있었겠어요?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했습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시누들이 저희 신랑에게 “결혼하고 아이 둘 낳을 때 까진 집에 발도 들이지 말라”고 하셨대요.(웃음)

 

Q. 가족들은 나의 새로운 꿈을 위해 어떤 도움을 주나?

▶(허정선) 한동안 이번 전시로 인해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상당히 걱정을 했습니다. 스스로 ‘괜찮아. 잘 할 수 있어. 다른 선생님들이 계시잖아.’ 하지만 여전히 두려운 건 마찬가지라 쉽게 잠을 못 잤어요. 어느 순간 저 빼고 다른 분들은 척척 진행되는 걸 보면서 ‘누구 말처럼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놓으면 되겠네.’ 싶어 안도감도 들었구요.

얼마 전 아들이 멍하게 있는 저를 보며 “엄만 할 수 있잖아. 지금까지 잘 해 온 것만 봐도 그림이 딱 나오네.” 고마웠습니다 아주 많이.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가장 큰 조력자이자 또 때로는 아주 조금이지만 방해꾼인 울 아들이네요.(웃음)

▶(배지현) 많은 시간을 아이에게 투자하지만 그래도 남는 시간은 저의 꿈을 위해 시간을 배려합니다. 옛말에 ‘남편은 반찬 타령 하지 않고, 사고만 치지 않으면 도와주는 거다’라고 어디선가 들었어요. 저는 그 말이 갑자기 와 닿네요.(웃음)

▶(오진영) 비누와 캔들을 가지고 뭘 표현하지? 걱정이 턱 앞서더군요. 막연하고 너무 넓은 ‘시작’이라는 주제에서 떠오른 생각은 파티였습니다. ‘파티’라는 단어가 파티 테이블이라는 카테고리를 생각하게 하고 거기에 맞게 떠오르는 몇 개의 이미지를 스케치 하다 보니 생각은 한계의 벽에 부딪혀 버렸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동생에게 제가 생각한 주제와 스케치들 그리고 이미지들을 툭 던져 놓으면, 동생은 거기에 피와 살을 그리고 최종적으로 색을 입혀가지요. 이런 작업 방식은 이미 우리 자매에게는 익숙한 일입니다.

디테일을 살리지 못하고 벽에 부딪히면 예민해지는 것이 저의 단점입니다. 함께 이 길을 걷는 동생은 이런 언니의 단점을 보완해 주면서 묵묵히 작업을 도와주죠. 물론 다투기도 하고 의견이 안 맞을 때도 있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가며 작품을 준비하다 보면 행복하기까지 했습니다. 아직은 일적인 면의 대화가 익숙하지 않은 우리 자매지만 이번 전시회를 통하여 좀 더 단단한 무언가가 만들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미현) 가족들은 제가 좋아하는 일이니 배울 수 있게 지원은 해 줍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인 거 같아요. 아 참, 이번에는 조금 감동받은 경험이 있네요. 작품이라기 보단 전시회 준비로 반드시 배워야 할 부분이 있었는데 운전미숙으로 걱정했거든요. 그때 남편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직접 데려다 주면서 3시간 넘게 밖에서 기다려줬어요. 얼마나 고맙던지.

▶(이은희) 우리 가족은 감사하게도 묵묵히 지켜봐주며 지금의 제 일을 꿈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도와줍니다. 특히 우리 아들이 제 작품을 인정해 주기도 하죠. 지난번엔 이런 일이 있었어요. 제가 작업하는 것 중에 꼭 케이크와 화과자를 빼다 박은 작품들이 있어요. 과자가 아니니 절대 먹으면 안 되는 것인데 먹성 좋은 울 아들이 “와~~맛있겠다. 내 간식이죠?” 라며 먹으려고 하는 겁니다. 너무 놀라 “안돼. 먹는 거 아니야 그건” 고함쳤더니 먹지도 못하고 그만 멀뚱멀뚱 엄마의 눈치를 보는 거예요. 좀 미안했지만 먹으면 큰일 나잖아요. 그 뒤론 엄마의 작품을 보면 “엄마 최고야” 우리 아들이 저 힘내라고 도와주는 거 맞죠(웃음)

▶(한보람) 이 분야는 무궁무진해서 계속 배우며 실력을 쌓고, 또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 줘야 하는 일이기에 상당한 금액이 지출됩니다. 저희 신랑은 감사하게도 금전적, 시간적으로 힘든 일인 줄 알지만 “배워야 할 때는 배워야 한다.”며 지원도 아낌없이 해주는 편이예요. 힘쓰는 일이 생길 때도 늘 앞장서서 도와구요. 이 자리를 빌려 항상 고맙단 말을 하고 싶어요.

 

Q. 이번 ‘8월의 시작’ 전시회를 열면서 느끼는 점이 있다면?

▶(허정선) 만들다가 실패해버린 향이 있었습니다. 버려야겠다 생각하고 차안에 넣어 두었는데 날씨가 덥다 보니 숙성이 지나쳐 터져버린 거예요. 그런데 차 문을 열 때마다 향이 얼마나 좋던지 깜짝 놀랐습니다. 그 아이가 바로 ‘수’라는 향이예요. 하마터면 영영 세상에서 사라질 뻔한 아이였죠.

‘수’처럼 우리 협동조합 식구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만들어진 작품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는 어쩌면 기억에서, 또는 이리저리 사라질 수도 있는 작품들이 있을 수 있어요. 이번 ‘8월의 시작’에 출품하여 많은 분들과 공유한다 생각하니 너무 짜릿합니다.

▶(배지현) 저 매순간 절실함과 간절함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제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구나! 지쳐가는 이들에게 제가 그들의 희망이 될 수도 있구나!’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작업대에 앉습니다. 저의 작품들이 그들에게 삶의 희망으로 보였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리고 이 말은 꼭 해주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보석임을 잊지 말았으면 해요”라구요. 물론 이 말은 제 자신에게도 가만히 들려주고픈 이야기기도 하구요.

▶(오진영) 전시회라는 단어가 부담스럽게 다가왔었던 건 사실입니다. 그래도 같은 길을 걷는 공예 선생님들과 같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기대감과 설레임이었습니다. 작품을 준비하는 내내 하루에도 수십번 ‘이 걸 왜 하고 있나? 이게 과연 잘 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내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눈을 뜨면 전시회와 작품을 생각하는 조합식구들을 보며 이 또한 즐기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참 아이러니 하게도 힘들지만 즐거운 작업입니다.

▶(이미현) 공예라는 것이 막연하게만 느껴졌는데 이렇게 사람들에게 우리가 만든 작품을 전시회로 알릴 수 있다는 것이 뿌듯해요. 처음 시도되는 ‘8월의 시작’이라 많이 부담되는 전시회지만 좋은 선생님들 만나 서로 정보공유도 할 수 있고, 또 제가 부족한 부분은 배울 수 있는 알찬 기회인 것 같아 참 멋져요. 아 이건 꼭 말해야 돼요.(웃음) 이렇게 참여할 수 있게 해 주신 ‘맑은샘’ 가족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은희) 이번 준비를 하면서 모두가 잠든 새벽에 작업을 했습니다. 그것도 짜릿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말예요. 모든 일들에 있어 쉬운 시작은 없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앞서지만 오랜만에 설레는 느낌, 기분 좋아요. 정말 그날이 기대됩니다.

▶(한보람) 그동안은 저를 위해 작품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이웃을 위해 만든다는 점이 무엇보다 뿌듯합니다. 아픈 분들에게 제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평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이번 ‘맑은샘’ 공예협회에 가입하고 전시회를 시작하면서 미력하나마 저도 ‘어려운 이웃을 웃게 만들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에 엄청 행복했습니다. 24일 전시회를 필두로 앞으로도 더 열심히 작품을 구상하고 만들어야겠단 생각을 하게 되네요.

 

Q. 앞으로의 꿈과 계획이 있다면?

▶(허정선) 단기적으로는 ‘맑은샘’ 공예협동 조합이 잘 되는 것입니다. 작품으로는 식물을 이용한 다양한 것들을 시도해 보고 싶어요. 식물이 주는 수천 수만 가지의 위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거든요. 아무리 심술궂고 험상궂은 사람도 작은 들꽃송이에 미소 지을 수 있는 게 바로 식물의 힘입니다. 그것들이 뿜어내는 향기는 근본적인 치료를 해주구요. 광범위한 공부가 되겠지만 더 공부하고 연구해서 식물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배지현) 자가면역질환 백혈병을 진단 받은 지 4년째입니다. 기다리면 돌아오는 그 계절이 마지막이 될까 늘 두렵습니다. 하지만 오늘처럼 폭염이 건너간 후에 맞는 세상은 활기를 불어 넣어줌과 동시에 새로운 일상을 선물해 줍니다.

제 자리는 한사람의 아내입니다. 한 아이의 엄마도 제 자리입니다. 제자리에서 제자리걸음 하는 것이 남들과는 조금 다른 아득한 삼십대의 중반을 살아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저는, 진짜 바쁜 이시대의 그녀들다운 삶을 누구보다 사랑합니다.

꿈과 계획이라고 물으셨지요? 건강한 아내와 건강한 엄마로, 사랑하는 가족 곁에 언제나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 길에 수제도장은 저를 지탱시켜 주는 아주 소중한 친구구요. 특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이와 함께 여건이 허락되는 대로 이웃을 위해 발걸음도 떼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오진영) 서산이라는 곳은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곳입니다. 흔히 서산 토박이라고들 하죠. 서산이 참 좋지만 가끔은 염증도 아쉬움도 느끼곤 해요. 뭘 배우고 싶어도 학원은 물론 변변찮은 정보도 없는 실정입니다. 그러다보니 타 지역으로 다니면서 ‘서산에는 왜 이런 게 없을까?’ 라는 안타까운 생각을 매번하게 되었죠. ‘적어도 비누와 캔들을 배우고자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멀리 가서 배우지 않고 내가 자란 이 곳에서도 충분히 질이 높은 수업을 배우게 하면 좋겠다’라는 절실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 하루도 열심히 배우고 익히며 많은 분들에게 저의 배움을 나누고 있습니다.

▶(이미현) 지금까지 남편의 아내로, 아이들의 엄마로 정말 쉼없이 달려왔습니다. 하지만 뭔가 계속 마음 한 구석이 허전했어요. 나중에 보니 그것이 바로 지금 제가 즐겁게 하고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빵 만드는 이미현’이란 이름을 세상에 내보이며 사회라는 곳에 다시 나가보고 싶어요. 아내와 엄마라는 이름도 물론 중요하죠. 하지만 사회활동을 열심히 하며 제 꿈을 위해 노력하는 엄마의 모습도 중요할 거 같아요. 교학상장이란 말처럼 열심히 배우고 제가 배운 것을 또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저의 작은 계획이자 꿈이랍니다.

▶(이은희) 저는 제 작품들이 누군가에겐 아픔을 치유하는 목적이 되고, 꿈이 없는 분들에겐 배움의 길로 나가게 할 수 있는 초석이 되었으면 해요. 꿈과 계획치곤 너무 거창한가요? 앞으로도 주어진 시간 안에서 더 열심히 노력하여 많은 분들에게 행복을 전해주는 전도사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지난번 폭염 속에서도 동복을 입고 학교에 가는 학생 얘기를 듣고 정말 마음이 아팠어요.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사각지대에 놓여 진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번 전시는 그 친구에게도 아니면 세상 모든 힘들고 아픈 분들에게도 힘내서 꿋꿋하게 헤쳐 나가자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요.

▶(한보람) 제 꿈은 지금 사는 이곳에서 예쁜 공방하나 만들어 좋아하는 선생님들과 어려운 이웃을 도와가며 생활하는 거예요. 앞으로도 조손가정 뿐만 아니라 저의 손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제 작품을 통하여 끊임없이 도울 예정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시는 많은 분들, 앞으로도 늘 힘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최미향 기자  vmfms083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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