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겐 가슴으로 낳은 두 딸이 있어요”

▲ 한화토탈 안전팀 이경하 과장

 

“제겐 가슴으로 낳은 두 딸이 있어요”

가족 아닌 또 하나의 사랑 ‘가족 모두 함께 해’

 

타인을 위한 도움은 도미노가 되어...

내 딸도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다는 ‘기적’

 

<인터뷰를 시작하며>

 

한화토탈 안전팀 이경하 과장을 만난 날은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에 바람 한 가닥 불지 않은 폭염 속이었다. 당시 그녀의 아버지도 오늘처럼 더운 여름날, 서울 볼 일을 마치고 내려와서 그녀를 만들었다 하여 ‘서울경(京) 여름하(夏) 이경하’라 이름 지었다. 어느 날 어머니께 “엄마, 인디언들이 이름 지을 때 태어난 날을 보고 이름을 만들었잖아요. 저도 어째 그런 느낌이 들어요.”

그녀의 말에 모여 있던 식구들은 동조하는 웃음보를 터뜨렸지만 어머니만은 마당에서 석유가 펑펑 쏟아지는 꿈을 꿨다며, 그래서 두 부부가 석유회사에 다니나 보다고 영험함을 자랑하셨다. 식구들이 아주 많았다는 그녀는 이 외에도 많은 얘기들을 하다 가끔씩 따뜻한 차로 목을 축이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곤 앞에 걸려있는 액자 속의 딸을 바라보며 눈이 시릴 때까지 바라보곤 했다.

그러던 그녀가 갑자기 “그런데 저는 우리 엄마를 닮지 않았나 봐요. 엄마는 자식을 다섯이나 낳았는데 전 딸 아이 하나밖에 낳지 않았으니 말예요. 그나마도 그 아이가 지금은 우리 부부 품에서 벗어나 유학을 갔네요. 갑자기 가족들 얘기하니 많이 보고 싶어집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이 자식인데 오죽할까. 한나절을 보내고 파김치가 되어 퇴근해 와도 자식만 보면 알 수 없는 힘 같은 것들이 가슴 저 밑바닥에서 차오르곤 하는데 말이다.

“그동안 봉사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서 취재를 많이 들어 왔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취재에 응할 정도의 사람이 아닌데,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싶어 부담스럽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죽을 때 까지 저의 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그냥 함께 손잡고 걸을 거거든요. 그리니 새삼스러울 것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대부분 사양(취재)했어요. 그런데 우리 기자님의 인터뷰는 정말 하고 싶었습니다. 기자님의 글을 참 좋아하거든요.”

세상 모든 힘듦과 쓸쓸함, 외로움, 그리움이 그녀의 아름다운 미소로 인해 벗어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처음을 시작하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 기본심폐소생술 교육을 하고 있는 이경하 과장

 

# 사람을 살렸다는 기분...느껴 본 사람만 알거예요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를 살리는 것이 나의 꿈’

 

“사실 제 업무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예요. 누구든, 어떤 환경에 있든, 저는 사람을 살려야만 하는 의무를 가졌습니다. 몇 해 전, 근무시간에 사람이 갑자기 쓰러져 일어나지 않는다는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가 왔어요. 저는 일단 앰블런스를 부른 다음 급히 응급장비를 챙겨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협력사 직원이었던 환자는 심근경색으로 인해 이미 의식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호흡도 약해져 가고 있었어요. 동료의 도움을 얻어 응급처치를 한 후 즉시 가까운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했습니다. 그곳에선 좀 더 큰 병원으로 가라고 권했고 저는 다시 신속히 서산중앙병원 응급실로 달렸지요. 정말 감사하게도 그분은 심폐소생술로 생명을 건질 수 있었고 함께 했던 우리 모두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이 산업안전공단의 사례로 나오면서 제가 갑자기 유명인사가 되어있더군요. 깜짝 놀랐습니다. 분명 저는 할 일을 한 것뿐인데 말입니다.”

“사람을 살렸다는 기분, 그것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실감할 수 없을 겁니다. 그동안의 노력과 고생들이 한꺼번에 폭풍처럼 보람으로 다가와요. 아마 봉사도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어떻게 아셨는지 요양병원에 계시던 친정어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주위 분들에게 하시더군요. 어릴 적 홍역을 심하게 앓아 모두들 죽는다고 멍석에 둘둘 말아서 밀쳐둔 우리 셋째 딸이 되레 사람을 살리는 일을 했다고 말입니다. 얼마나 부끄럽던지 어머니 입을 막으며 누구라도 그런 처지에 당면하면 다 그렇게 하게 된다고 했지요. 그래도 우리 어머니 참 뿌듯했던 가 봅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병실 분들에게 제 자랑을 하셨으니까요.”

 

# “내 딸은 어려운 사람 그냥 지나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제 들어도 무디어진 마음결이 저절로 부드러워는 어머니 말씀

 

“저는 어머니를 참 존경합니다. 어머니 얘기를 하면 저도 모르게 울컥하고 눈물이 나려고 해요. 1남 4녀를 둔 우리 어머니는 사람을 참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가 누구이든 어머니에겐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어요.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어릴 적, 우리 집에는 ‘거지밥상’이란 게 있었는데 들어보셨어요. 거지밥상?”

“우리 집의 일상들이 사실 별로 신기한 건 없지만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거지밥상은 존재했다고 언니들이 말해주었어요. 그런데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거지들이 우리 엄마를 보고 누나라고 부르는 겁니다. 저는 그게 너무너무 싫었어요. 어느 날 엄마에게 막 신경질을 부렸어요. 엄마가 거지 누나냐고 말이죠. 그때 엄마는 씩씩대는 저를 꼭 안고 머리를 쓰다듬더니 ‘우리 딸 경하야, 속상하니? 그런데 말이다. 세상에는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단다’라고 하는 겁니다. 저는 엄마 품에 안겨 그냥 대성통곡했던 것 같아요. 엄마의 말씀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부끄러운 제 자신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지금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 집안이 유복하게 살진 않았지만 그래도 밥은 먹고 살았나 봐요. 거지들이 오면 우리 엄만 평상에 밥상을 차려주고, 그들이 갈 때가 되면 새로 밥을 해서 가득 담아주시곤 하셨으니까요. 모르긴 몰라도 아마 그 영향을 제가 좀 받았나 봅니다. 그냥 좀 안된 사람을 보면 지나치지를 못해요. 참 웃기지요. 그 영향을 또 우리 딸이 받았고요.”(웃음)

“돌아가시기 전에 우리 엄마는 다섯 가지를 당부하셨어요. 열심히 배워야 한다. 직업이 있어야 한다. 여성으로서 태만하지 마라. 반드시 성장해야 한다. 남에게 봉사해야 한다”고.

어느 날 제 두 손을 꼭 잡으시며 “경하야, (요양원을 보면) 돈을 가지고 있는 환자는 신경 잘 써 주고, 자식들이 찾아오지도 않거나 좀 뜸한 환자들에게는 조금 터부시하더라. 설마 우리 딸은 그러지 않겠지? 우리 넷째는 절대 그렇게는 하지 마라. 내 딸은 주위 어려운 분들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어머니의 말씀을 떠올리면 언제 들어도 무디어진 마음결이 저절로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지금은 먼 나라에서 자식들의 이웃에 대한 사랑의 손길을 바라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겠지요? 우리 엄마의 뜻을 생각해서라도 이 세상 다할 때까지 사랑 나눔 실천을 생활화하며 살아야지요. 그것이 바로 부모님께 효도하는 길인 것 같습니다.”

 

▲ 딸 ‘가현’ 양

 

# “모든 사람에게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

잠시 귀국 길에도 봉사를 하고 오는 딸이 대견해

 

“우리 딸은 아주 작은 아기로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제 몸속 혹 때문에 자라지를 못했지요. 그 작은 아이가 크면서 인권에 눈을 뜨기 시작하더군요. 그때부터 모든 사람들에게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며 봉사를 하는데 저것이 내 속으로 낳은 아이가 맞나 할 정도로 신기했습니다. 야무진 건 말 할 것도 없고 누구를 케어 하던 간에 어찌나 세세하게 잘 챙기는지 어떨 땐 멀리서 딸이 일하는 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볼 때도 있었다니까요. 살갑게 하는 것은 물론 그분들을 옆에서 보듬어주는데 저보다 낫더라고요.”

부럽다는 말과 함께 소문에 의하면 전교 수석을 하는 아주 똑 부러진 친구였다고 하자 “어디서 그런 말씀을 들으셨습니까?” 화들짝 놀라는 기색이다. 모른 척 시치미를 뚝 떼며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우리 가현 양이 워낙 발자취가 따뜻했잖아요.”

함께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에 벽에 걸린 서너 개의 작품이 들썩인다.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인권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딸아이는 남을 도우는 일들이 그냥 일상이었어요. 다른 또래 친구들이 봉사시간을 고민하면 이해를 못할 때가 솔직히 많았답니다. 미국에서도 가현이는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에 대해 알리는 교육봉사를 했어요. 향후에도 그 아이는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리려는 포부가 있는 것으로 알아요. 기특한 건 미국에서 잠시 한국으로 나올 기회가 생기면 서울 도착하자마자 그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집으로 오곤 해요. 장거리 비행으로 힘들만도 한데 제 딸이지만 그럴 때는 참 기특합니다.”

 

▲ 희망나누기 하계캠프 모습

 

# “제겐 가슴으로 낳은 두 딸이 있어요”

가족 아닌 또 하나의 사랑 ‘가족 모두 함께 해’

 

“남편 분을 참 많이 사랑했나 봅니다?”

기자의 물음에 입가로 살포시 손을 가져다 미소 지은 입술을 막는다. “그이는 참 좋은 사람입니다. 세상에 그런 사람을 아직 찾아보지 못했어요. 물론 살다보면 서로의 단점이 왜 없겠어요. 그래도 그 사람은 많은 부분을 참아주고 함께 해 줍니다. 제겐 가슴으로 낳은 두 딸이 있어요. 남편은 크리스마스 날 출근 전에 하얗게 내리는 눈을 뚫고 아무것도 없으면 슬플 아이들을 위해 인형을 사다가 잠든 문 앞에 두고 오는 사람입니다. 너무 행복하데요. 그 사람은 비록 입김이 얼어버릴 정도의 찬 기운이지만 그날은 종일 두 딸들이 웃을 걸 생각하면 가슴이 따뜻해진대요.(웃음) 미국에 있는 우리 딸 가현이도 늘 저에게 두 딸들의 안부를 물어요. 동생들 잘 챙기고 외롭지 않게 보살펴 달라고요.”

두 아이들과 그 아이의 엄마가 사는 집에는 혼자 가냐는 기자의 물음에 “남편이랑 함께 가요. 혹시 또 모르니 저 먼저 들어가라고 하면서 ‘가현 엄마, 나는 여기 있을 테니까 안에 들어가서 이야기하고 와. 내가 여기서 충분히 기다릴 테니까 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혹시 내 손이 필요한 것들이 있으면 얘기해주고’ 그래요. 이렇게 말해주며 정말 긴 시간을 기다려 줍니다.” 기자가 참 시집 잘 갔다고 말하자 “저 그건 인정해요. 남들이 모두 그럽니다.”(웃음)

기자는 생각한다. 생애를 돌아봐도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을 그런 사람을 만났다는 건 분명 전생에 나라를 구한 그녀가 확실하다고 말이다.

 

▲ 무료의료봉사에 나선 이경하 과장과 동료들

 

# 타인을 위한 도움은 도미노가 되어...

내 자녀도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다는 기적

 

“제가 생각할 때 봉사는 도미노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남편이 그러더군요. ‘우리 딸 먼 이국땅에서 아프고 힘들 때, 그때마다 누군가가 도와주었잖아’라고요.”

그녀는 가현 양이 겪었던 아주 놀라운 얘기를 해 주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떠나는 날, 좌석을 잘못 배정한 항공사가 그녀의 딸을 퍼스트클래스 석으로 안내하여 편안히 10시간 이상을 갈 수 있었던 일. 학교 교정을 지나는 딸이 누군가가 던진 야구공에 머리를 맞아 안경은 물론 치아와 입술까지 성한 데가 없이 상처를 입었지만, 병원에 근무했던 한국인의 도움으로 병원치료는 물론 학교와 병원을 데리고 다니는 일에서부터 미음을 끓여 주었던 일. 그리고 그밖에 다양하게 일어났던 여러 가지 일들. 딸이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가현 양은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고, 주위의 따뜻한 시선으로 지금까지 행복한 학업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이건 분명 미라클이예요. 우리가 누군가를 도와주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는 또 우리 딸을 도와주고 있다고 전 믿어요. 야구공에 맞았던 가현이가 일주일 후 한국으로 화상전화를 했습니다. 퉁퉁 부었지만 환한 미소의 딸은 ‘나를 도와주신 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줬으면 좋겠어’라고요.”

하지만 아이 얼굴을 보는 순간 너무 속이 상했습니다. 딸아이가 혼자 끙끙 앓을 때 한국의 부모인 저희는 그저 아무것도 모른 채 웃으며 생활했다 생각하니 말입니다. 전화하지 그랬냐는 저의 말에 “내가 전화하면 간호가 전공인 엄마가 더 속상하잖아. 내 걱정은 하지마. 좋으신 분들이 나를 도와주고 있으니까.”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였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이를 미국으로 보내고 난 후 많이 힘들었습니다. 걱정과 보고픔으로 하루하루가 힘들었지요. 그때 신부님이 그러시더군요. ‘지금부터 마음을 밝혀서 하늘에 맡겨 둡시다. 이제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저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사시면 됩니다’ 얼마나 귀에 쏙 와 닿던지 바로 저와 약속을 했습니다. ‘아이가 떠나던 그날처럼 이곳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사랑을 실천하리라’ 우리 부부가 남을 위해 열심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 분명 누군가는 또 홀로 당당히 걸어가고 있는 우리 가현이에게 반드시 도움을 줄 것이란 걸 확신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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