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정용선 전 충남경찰청장

“섬김의 길에 낯설다 물러서는 분들에겐 더 낮은 섬김으로 다가가야지요” 서산시대l승인2018.08.08l수정2018.08.08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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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용선 전 충남지방경찰청 청장은 제31대 경기지방경찰청 청장, 제6대 경찰교육원 원장, 제7대 대전지방경찰청 청장 등을 역임했다.

<들어가는 문>

소문대로 매운 음식을 잘 드시지 못하셨다. “저만 계속 먹는 것 같아요. 좀 드세요.”라는 말에 “많이 먹고 있습니다”라며 아귀찜과 함께 콩나물 한 젓가락을 입안에 넣곤 연신 물만 드신다. “혹시 부모님께서 물고기 태몽을 꾸신 거 아니세요? 어쩜 그렇게 물을 많이 드십니까?” 기자의 웃음에 드시던 컵을 내려놓으며,

“이래봬도 광채 나는 용꿈을 꾸셨답니다.” 호탕하게 자신 있는 척 웃으시기에 함께 따라 웃었다. “그래서 성함이 용(龍)과 선(仙)자를 넣어 만드신 거군요.” 고개 끄덕이는 모습 뒤로 벽에 매달린 달력이 바람에 흔들린다.

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 시골에서 태어나 충남, 대전, 경기경찰청장을 역임한 정용선(53) 전 치안정감. 그는 현재 세한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경찰소방대학장이다. 학생들과 함께 캠퍼스에 머무는 시간이 더 없이 좋다는 말에 “혹시 나이 어린 학생들이 전직 경찰청장이라 벽을 치진 않습니까? 그래도 섬김의 정신으로 나갈 수 있나요?”라며 묻자 “이제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전직 청장인줄 압니다. 하지만 혹 나이 어린 학생들일지라도 여전히 귀한 섬김으로 나아갈 것이며, 그 길에 낯설다 물러서는 분들에겐 더 낮은 섬김으로 다가가야지요. 이것이 대한민국 모든 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진정한 삶이 아닐까요?” 기자의 물음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모든 행복의 첫 번째 단추는 서로에 대한 따뜻한 관심이에요.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치 않습니다. 그저 천천히 다가가 눈 맞추기, 그리고 다시 한 번 뒤돌아가 키 맞추기,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토닥토닥 ‘그동안 참 애썼습니다’라고 인정해주는 겁니다.”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이야기에 정신이 팔리다 보니 식당 아주머니의 움직이는 소리도 귓전을 빗나갔다.

“자리가 높아 질 때 마다 가슴속 따뜻한 소리가 무뎌질까봐 틈틈이 속담 한 자락을 되뇌었습니다. 「적덕은 백 년이요, 앙해는 금년이라」이 말은 곧, ‘좋은 일을 하고 덕을 쌓으면 오래도록 그 공이 남지만, 재앙과 손해는 얼마 가지 아니한다’는 뜻입니다. 생전 어머니께서 제 손을 꼭 잡아주시며 하셨던 말씀이거든요. 이제 세월에 빛이 바래고 먼 추억의 한 자락으로 남겨진 당신의 말씀이지만, 그래도 잊지 않고 늘 기억하며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날은 아스팔트를 녹일 듯한 뜨거운 날씨임에도 기자가 돌아오며 맞았던 바람은 온통 청량함이었다. 늦은 밤 마주하고 앉은 한 권의 책, 저자 정용선의 ‘낯선 섬김’. 이는 낯선 섬김이 아니라 따뜻한 섬김으로 붙여져야 옳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 들 정도의 글밥들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도 따뜻한 리더십을 배경으로 했던 내 이웃들의 이야기. 현재 5쇄를 목전에 두고 있으며 책 판매수익금은 범죄피해를 입은 소년소녀 가장들을 위해 (사)한국피해자지원협회에 전액 기부된다는 이야기에 결국 그를 향한 세레나데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 주려고 결심했다. 기자는 앞으로도 자주 안부를 챙길 것이며, 그의 앞날이 늘 발전되기만을 기원한다.

최미향vmfms0830@naver.com

 

“섬김의 길에 낯설다 물러서는 분들에겐 더 낮은 섬김으로 다가가야지요”

정용선 전 충남경찰청장 “모든 행복의 첫 번째 단추는 서로에 대한 따뜻한 관심”

 

▲ 경찰대학 수석졸업을 축하하며 부모님과 함께 기념촬영

Q. 일전에 어르신들과 바닥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드시면서, 무슨 재미있는 얘기를 하시는지 서로 바라보며 웃으시던데... 어르신들은 꼭 기자의 어머니를 닮은 듯도 하고, 이웃집 나이 드신 친구 어머니를 뵈는 듯도 하여 뭉클해 진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는지요?

(정) “현직에 있을 때 어머니가 가끔씩 저에게 묻거나 당부하셨던 말씀은 ‘사람이 지위가 높아질수록 어려운 분들을 잘 돌봐야 하는 거야. 그러고 있지?’ 그럼 저는 ‘예 그래야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또 물으십니다. ‘조금이라도 억울한 사람 없게 해라’ 저는 또 ‘예’라고 대답하며 어머니 손을 꼭 잡아 드리곤 했습니다.”

어릴 적 우리 형제들은 자주 거지들과 밥상을 함께하며 자랐지요. 어린 저는 그 사람들의 숟가락이 제 입으로 들어오는 것 같아 이마가 절로 찌푸려졌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큰 맘 먹고 어머니께 불만을 늘어놓은 적이 있었어요. “어머니, 거지들한테는 그냥 밥만 쏟아 주셔요. 더러워서 정말 옆에서 밥 먹기 싫어요.”

어머니는 정색을 하시며 저를 몹시 꾸중하셨습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적덕은 백년이요, 앙해는 금년이란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그게 무슨 말씀인지 다 이해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조금 더 커서야 좋은 일을 하면 오래도록 그 공이 남으니, 재앙과 손해를 입어도 덕을 쌓으며 좋은 일을 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깨닫고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그때 어머님이 제게 해주신 말씀은 두고두고 가슴 정곡에서 저를 일으켜 주위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어요.

경찰관으로 근무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배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많이 가지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회적 지위가 낮다는 이유로, 서러움과 불편함, 억울함과 답답함을 겪으면서 우는 사람들을 보면 어머니 생각이 제일 먼저 납니다. 이런 분들의 눈물을 닦아드리고 손잡아 드리라는 것이 제가 해야 하는 일임을, 나아가 우리 경찰의 중요한 임무중의 하나임을 어머님의 가르침으로 배웠습니다. 제가 쉬지 않고 그 길을 일관되게 달려올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당신 덕분이지요. 비단 제어머니 뿐이겠습니까? 세상의 모든 어머님들의 마음도 한결 같으리라 생각합니다.”

 

▲ 경기남부경찰청장 퇴임식에서 가족과 함께

Q. 어려운 이들. 소외 받는 이들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많으시던데...기억나는 일화가 있다면?

(정) “그날 아침은 매우 추웠습니다. 겨울 동장군이 성급하게 발톱을 드러냈으니까요. 더구나 바람이 불고 눈까지 펑펑 쏟아졌던 날, 일곱 살 맨발의 소녀가 파출소 마당으로 들어 왔습니다. 마치 성냥팔이 소녀처럼. 그러나 소녀의 손에는 사람들에게 팔 성냥이 없어요. 소녀는 초롱초롱한 두 눈으로 우리 경찰관들을 바라봤습니다. 파랗게 언 소녀의 얼굴에 제복 입은 경찰들을 보자 안심하는 듯한 표정의 옅은 미소가 엿보였어요.”

“경찰관들이 놀라며 얼른 다가가 소녀를 안았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언 발을 두 손으로 꼭 감싸 입김으로 녹여 주기도 했구요. 소녀가 수줍은 듯 웃는 사이, 일부 경찰관은 또 슬며시 나가더니 금세 예쁜 털신을 들고 왔고, 따뜻한 양말을, 오리털 점퍼를 사 들고 옵니다. 이 들이 바로 소녀에게는 산타였지요.”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일선 파출소로부터 전해들은 며칠 후, 모녀를 대전경찰청장실로 초대를 했습니다. 그날은 바로 소녀 가족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어느 중소기업 회장이 소녀의 엄마를 당신 회사에 취직 시켜 주기로 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 전달식이 열리는 날이었지요. 지금 생각해도 ‘삭막하다’ 하지만 우리 세상, 아직은 살만한 곳인 것 같습니다.

 

▲ 정용선 전 충남경찰청장

Q. 어르신에 대한 공경이 남 다르다 들었습니다. 이유가 있으신지...?

(정) “많은 분들이 부모 손에서 큰 것이 아니라 조부모 손에서 자랐냐고 묻곤 합니다. 아마도 노인 분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진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께서는 어르신을 공경해야 함을 항상 강조하셨습니다. 무엇보다 몸소 본을 보여 주셨고요. 제가 했던 모든 일들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자연스러운 저의 일상입니다.”

“유난히 추웠던 2013년 11월 어느 날, 폐자동차 부품 도난사건으로 여든이 넘은 어르신이 조사를 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피해액이 그다지 크지 않았고 또한 피해자 역시 처벌을 원하지 않아 기소유예 처분으로 끝이 난 사건이었죠. 그런데 조사과정에서 강력반 형사들은 이 어르신이 거처하는 단칸방을 들여 다 볼 기회가 있었는데 너무나도 놀랐어요. 다른 집에서 먹다 남은, 상하기 직전의 음식들이 그분의 식사였던 것입니다. 당장 주머니를 턴 형사들은 쌀과 약간의 음식재료를 사서 넣어 드렸고, 그 어르신은 그냥 받는 것에 부담을 느꼈는지 현금 2만원을 차량에 몰래 놓고 가 버리셨고, 이를 안 경찰들은 할아버지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지라 다시 돌려 드렸더니 이번에는 사과 두 봉지를 사 들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 후에도 탁구공처럼 주거니 받거니.... 그러다 결국 형사들은 어르신이 남의 도움을 받지 않으시는 당당함에 두 손을 들어 버렸고, 그 돈으로 할아버지가 사시는 동네의 어르신들께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는 보기 드문 계기가 되었죠.”

“이처럼 당당함 속에 가려진 참 많은 외로움, 이는 대부분의 어르신들께 공존해 있는 또 다른 아픔입니다. 이 땅의 모든 어르신은 우리 모두의 부모님입니다. 마음 훈훈하고 정겨운 이야기는 경찰이 어떻게 활동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국민들 마음속으로 녹아들어 갈 수 있습니다.”

 

▲ 수사절차상 학대피해 장애인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식

Q. 경찰 역사상 처음으로 경찰청사에서 ‘중증장애인 생산제품 구매 박람회’를 개최하셨는데?

(정) 우연한 기회에 시각 장애인과의 인연으로 장애인 단체와 간담회를 갖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혹 그분들의 마음을 더 불편하게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까 상당히 염려를 했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눈 후 가장 답답하고 불편한 점을 묻게 되었는데 ‘청각장애인인데 교통사고가 난 적이 있었다’로 시작하는 말은 이랬습니다. ‘이건 누가 봐도 상대방이 잘못했는데 경찰이 오니까 그때부터 그 사람은 계속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입으로 말을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저도 연신 손으로 하는 수화를 했어요. 그런데 경찰관이 제 수화를 알아듣지 못하는 거예요. 그때 상대방 주장대로 사고처리결과가 뒤집힐까봐 정말 답답하고 속상했습니다. 신호대기 중에 진행신호로 바뀐 줄 모르고 잠깐 서 있으면 뒤에서 빵빵거리고, 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계속 있다 보면 쫓아와 삿대질하거나 심지어 욕을 퍼붓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래서 이런 억울한 일을 막고자 경찰관들에게 기초적인 수화교육을 하는 것은 물론, 수화통역사가 올 때까지 일체의 조사를 시작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청각장애인들의 운전 차량에는 청각장애인이라는 표지판을 나누어 주고 차량 뒤 유리창에 붙이도록 했습니다.

다른 한 분은 ‘우리가 언제까지 휠체어에 앉아 남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야 하나요. 이것이야 말로 가장 비참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열심히 물건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 물건이 팔리지 않는 겁니다. 장애인이 만들었다고 쳐다보지를 않아요. 판매할 방법이 없다 보니 자활 의지가 꺾입니다.’

간담회에서 들었던 간절한 외침, 그것이 경찰 역사상 처음으로 경찰청사에서 ‘중증장애인 생산제품 구매 박람회’를 개최하는 행사를 탄생하게 만들었고, 덕분에 또 세상에는 아직 아름다운 손길을 가진 분들이 도처에 계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Q.경찰관서장으로 부임하실 때마다 가장 먼저 식사를 모시는 분들이 있다는데?

(정) “그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을 가지신 분들, 바로 관사를 위해 청소와 조경 등 시설관리를 하시는, 궂은일의 주인공 분들이지요. 임기를 마치고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날 때에도, 시간이 촉박하여 간부들과의 식사는 못하더라도 이 분들과는 반드시 송별회식을 하고 떠나 왔었습니다. 떠나기 전, 저는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NASA를 방문했을 때의 일화를 얘기하는데 닉슨 대통령의 일화는 이렀습니다. 어느 날, 즐거워하며 일하는 청소부를 보며 뭐가 그리 즐겁냐고 닉슨 대통령이 물었죠. 이때 그 청소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지금 우주선을 달나라로 보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청소부가 하는 일은 NASA 건물의 청소를 하는 일이었지만 넓게 생각하면 많은 연구원들이 집중해서 일을 할 수 있도록 건물을 아름답고 깨끗하게 가꾸어 주는 것,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하시는 일이 바로 그런 일입니다. 여러분은 교육생을 직접 가르치는 교수님들 못지않게 경찰관들에 대한 교육을 통해 대한민국 경찰을 발전시키고 계신 분들입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 얼굴을 뵈니 여러분의 가슴 속에도 그분들 못지않게 자긍심이 가득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정성껏 일해 주시고 지금처럼 여러분의 일을 소중하게 생각해 주시면, 우리 대한민국 경찰이 무궁한 발전을 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분들과의 소박한 약속 두 가지는 집무실을 구경시켜 드리는 것과 따뜻한 봄날이 되면 교육원 내 가장 경치 좋은 곳에서 점심으로 김밥을 먹자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손을 가지신 분들과의 약속을 지키며 제가 더 행복했고, 제가 더 많이 웃었던, 생애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기억으로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 “모든 행복의 첫 번째 단추는 서로에 대한 따뜻한 관심”이라는 정용선 전 충남경찰청장

Q. 경찰생활 중 잊을 수 없는 사연이 있다면?

(정) (잠시 침묵을 하던 그가 갑자기 눈가를 촉촉이 적시며) “주책입니다. 그날의 일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팍이 뻐근합니다.”

“불굴의 의지를 가진 특별한 두 분의 교육생이 있었습니다. 한 분은 한 쪽 눈이 보이지 않았고, 다른 한 분은 암 투병 중이었습니다. 암 투병중인 교육생이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교육을 받던 도중 자택으로 급히 후송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그 교육생은 재 입교를 희망하였고, 당시 교육원장이었던 저는 그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일주일간의 짧은 교육이기에 별도의 수료식을 하지 않는 관행을 깨고, 교육생 천여 명이 모인 가운데 두 분의 쾌유를 비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료식』을 개최했습니다.”

“생각만으로도 가슴 아픈 전남청 여수경찰서 박희삼 경위, 그는 당시 현장에서 범인이 뿌린 염산을 뒤집어썼고, 그들이 휘두른 칼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수갑을 채워 인계 후 병원으로 후송되었지만 결국 한 쪽 눈을 실명하고 말았습니다. 또 한 분의 살아있는 영웅 충남청 최완재 경사(현재 서산시 지곡치안센터 근무). 2012년 2월, 충남 서산의 한 공장에서 엽총으로 직장동료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범인은 그와 동료 경찰 한명에게 엽총을 난사했고, 그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사건발생 50분 만에 범인을 검거했습니다.”

“그 해 5월, 그는 동료와 함께 명예로운 특진을 하였고 ‘사는 것이 행복하고 경찰관이라는 것이 뿌듯하다’며 정말 기뻐했었죠. 그런데 기쁨도 잠시,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신장암 3기라는 진단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강력계 형사로 센척하려고 속 시원하게 한 번 울어 보지도 못했다는 그에게 암 선고는 두려움이었고 절망이었습니다.”

“저는 감성개발센터에 그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들 것을 제안했습니다. 우리의 작은 영웅이자 동료인 그들의 상처와 병마가 하루 빨리 달아나기를, 또한 절대 지치지도 용기도 잃지 말라는 동료들의 작은 소망을 담아서 말입니다. 함께 모인 천여 명은 흐르는 눈물을 미처 닦지도 못하고 울었고, 그들의 아픔은 곧 모든 경찰관의 아픔이었습니다.”

 

▲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파수꾼으로서의 현장

Q. 경찰의 임무중 시위진압도 많았을텐데...어떠하셨는지요?

(정)「참을 수 없는 그러나 참아야만 하는 고통이 있다. 굳이 노블레스오블리주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위험한 현장일수록 지휘관을 비롯한 간부들이 앞장서 위험에 대처해야 직원들의 신뢰도 얻을 수 있는 법이다.」제 신념이죠.

“1990년 당시 대학가 주변에는 화염병과 돌, 쇠파이프가 날아다니는 불법 폭력시위와 이에 맞서는 경찰의 최루탄이 난무했었습니다. 저는 당시 기동중대장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이 같은 폭력시위 현장에 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진압부대 맨 앞에서 지휘를 했고, 이는 지휘관이 대원들 뒤에 숨어 지휘를 한다는 것은 비겁하고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팔다리에 타박상은 일상이었고, 오른 발 엄지발톱이 피범벅이 되어 빠진 적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돌에 맞아 앞니가 부러지기도 했습니다.”(그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가 환하게 웃는 웃음 사이로 왠지 어색한 의치가 당시 부러진 치아였다.)

“경찰서장으로 있을 즈음, 화물연대의 불법차량시위 움직임을 보고 받고 직원들 비상소집 지시를 하면서 운전하는 의경과 단 둘이 요금소로 올라가는 진입로에 서장차를 먼저 가로로 주차시켜 놓고 그 차 앞에 혼자 섰습니다.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지만 물러서지 않았어요. 차단하지 못하고 뚫려서 망신당하나, 화물연대 회원들에게 얻어맞아 망신당하나 망신당하기는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주어진 임무는 하늘이 무너져도 책임감 있게 완수해야지요. 그것이 제 자신에게나 국민들에게 떳떳하지 않겠습니까?”

“2013년 7월 20일 저녁, 울산 현대차 집회관리를 위해 지원 갔던 대전경찰청 소속 기동대원 3명이 부상당했다는 사실을 보고 받았습니다, 시위대의 무차별 폭력으로 인해 치아가 네 개나 부러진 경찰관도 있고, 팔목이 부러지고 살이 찢겨 봉합 수술을 한 경찰관도 있었죠. 시위대들이 현대자동차공장 내로 진입하기 위해 공장관계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다가 이를 제지하던 경찰관들에게 죽봉과 쇠파이프를 휘둘러댄 결과였습니다. 화가 치밀어 밤새 뒤척이다 보니 다음 날 아침까지 머리는 아프고 정신은 멍했어요.”

“집회와 시위는 분명 헌법상 보장된 중요한 권리이지만, 어디까지나 합법적이고 평화적이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설득력도 있고, 제3자도 귀 기울이는 것 아니겠어요? 집회시위는 자신의 생각이나 요구를 표현하고 주장하는 선에서 끝이 나야지 상대방이나 제3자에게 자신의 주장을 받아들이라고 협박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일은 범죄일 뿐 아니라, 결코 용납되어서도 안 된다고 봅니다. 그 마음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누구를 위한 폭력입니까? 부상당한 경찰관들, 아니 그 가족들과 나이어린 자녀들에게 어떻게 설명하고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참담했습니다. 기동대가 복귀한다는 보고를 받고 부대로 달려가서 대원들을 맞이했어요. 땀 냄새 속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대원들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고였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경찰관 기동대가 앞장서는 바람에 의경들로 구성된 방범순찰대는 다친 대원이 없었다는 거예요. 위험한 상황인데도 기동대장부터 솔선수범할 줄 아는 든든한 모습에 목이 멨습니다. 우리 대원들 긴 시간동안 집에도 가지 못하고 힘든 고초를 겪었다 생각하니 또 울컥 눈물이 나더군요. 그러고 보니 경찰에 몸담으면서 참 많이 울었네요.(웃음) 이 땅에 더 이상 불의가 행해지지 않고, 폭력시위도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심정입니다.”

 

▲ 정용선 전 충남경찰청장은 6.13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 충남지사 예비후보로 출마했다.

Q. 지난 6.13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 충남지사에 출마를 하셨는데, 어떤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정) “정치를 시작하면 그동안 친하게 지내던 분들도 자신의 성향에 따라 돌아서기 때문에 ‘정말 내가 해야 하나?’ 라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죠. 지난 7월, 제가 어느 잡지에 보수와 진보를 주제로 기고를 했습니다. 보수나 진보는 분명 어느 쪽도 절대적으로 옳고 그른 것이 아니고 상대적 개념이지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분들이 보수나 진보가 무엇인지도 잘 모른 채 자신의 성향을 분류하고 상대를 적대시 하더군요. 「나는 무조건 옳고 너는 무조건 틀렸다」는 식의 생각을 갖는 모습들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어쨌든 이분법적으로 분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저는 자유민주주의와 공정한 시장경제라는 우리의 헌법적 가치를 존중합니다. 사람들 대부분은 개인의 경제·사회적 이익에 따라 행동하기 쉬운, 다소 불완전한 존재들이지요. 그러므로 굳이 성향을 말하라면 저는 보수에 가깝다고 봅니다. 지난 연초는 자유한국당이 궤멸 상태였습니다. 특히 우리 충남에는 도지사 후보로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러던 차에 제게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하니 출마해 달라는 권유가 있었습니다. 고심하고 있는데 2월 13일을 전후하여 중앙일간지에 ‘보수 정당이 충남도지사 후보 없이 설 명절을 쇠는 것은 처음’이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우리 사회의 이념이나 가치 편중은 바람직하지 않기에 자유한국당 사람들이 참 비겁하고 무책임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설명절 기간에 형님들과 상의를 해서 출마를 결심했습니다. 물론 3월말의 자체 여론 조사였지만, 제가 후보가 된다면 여당 후보들(당시 2명으로 압축)과 오차범위 내 접전양상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아무튼 후보가 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은 당시로선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의 심경은 독자여러분들의 상상에 맡기고 싶습니다.(웃음)”

 

▲ 2017년 4월부터 세한대학교 경찰소방대학 학장으로 재직중이다.

Q. 정치인으로, 또 학장으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궁금합니다?

(정) “옛 선비들이 관직에서 물러나면 고향에 내려와 후학을 양성했던 것처럼 30년간 공직생활을 통해 배우고 경험했던 일들을 후배들에게 전수해야겠다는 생각에서 고향 당진에 있는 세한대학교로 왔습니다. 저와 같은 길을 가고자 하는 학생들이어서 보람도 있고 가르치는 재미도 있었지요. 지난 번 지방선거에서 충남도지사가 되고 싶었는데, 출마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때가 아니었나 봐요.(웃음).”

“도지사가 된다면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았거든요. 충남의 인재들이 우리 사회 곳곳으로 잘 진출하여 충분히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충남인들의 구심점을 만들고 충남의 결속력도 높이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엄마들과 아이들이 행복한 충남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잠시 쉬면서 지인들을 만나며 책도 읽고 글도 쓰며 한량처럼 지내고 있는데, 9월에는 대학으로 돌아가 다시 학생들을 가르칠 예정입니다.”

최미향 기자 vmfms083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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