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초밥달인 『명인』 강희재 대표

서산시대l승인2018.06.30l수정2018.06.30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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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의 달인 新 일식 4대문파 강희재 명인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노력하면 꿈을 이룬다’

新 일식 4대문파 강희재 명인 “초밥은 생명줄이다”

 

『나이는 꿈을 막을 수 없다.

인연은 초밥이었지만 난 여기서 머무르지 않는다.

초밥은 어제와 오늘의 수고 속에 영글어진 열매!』

 

초밥달인을 향한 끝없는 도전 강희재. 그를 배우러 길을 나서다.

“초밥에 대한 책임이 있다. 그러기에 오늘 하루도 결코 멈출 수 없고, 멈춰서도 안된다“며 연신 분주히 손을 움직이시는 명인초밥의 달인 강희재(45)대표. 미식가들이 즐겨찾는 명인 초밥집의 독특한 맛은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도 유명하다.

▲ 新 일식 4대문파

초등학교 3학년시절,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바쁜 부모님과 형제들의 식사를 위해 쌀을 씻어 밥을 했고, 쌀 씻은 물을 가지고 김치를 총총 다져넣어 찌개를 끓였다. 온 식구가 둘러앉아 맛있게 먹어주는 날이면 다음 요리 메뉴를 위해 어린 나이에도 고심을 했을 정도다. 이것이 오늘날 ‘강희재’라는 이름을 대한민국에 알리는 서막이 되었다.

군 제대와 동시에 평소 그의 손맛을 부러워하던 선임의 손에 이끌려 23살 피 끓는 나이에 일식집 문을 노크했다. 부푼 꿈과는 반대로, 눈코 뜰 새 없는 하루하루를 버티기에는 강 대표도 그리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직 하나, ‘언젠가는 초밥 명인이 되리라’는 꿈이 있었기에 묵묵히 감내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매사 열정적인 그의 성격 탓 때문인지 강 대표는 남들이 15년 걸릴 것을 10년만에 일식집의 상징인 앞 주방, 일명 ‘다찌’에 입성하게 되는 영광을 안았다.

처음 손님과 마주했던 날은 대책없이 가슴이 마구 떨렸다고 했다. 하지만 그때 스승님의 말씀이 강 대표를 진정시켜 주었다.

“너가 제일 잘하는 것은 초밥이고 소바다. 또 하나, 너의 무기는 잠재력이다. 이 세가지만 가지고 가면 너는 무조건 성공한다.”

지금도 그는 고마우신 스승님을 비롯하여, 은퇴하신 선후배님을 손수 챙기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성지와도 같은 앞 주방에 서기까지 강대표의 고생담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많았다. 최고의 초밥을 만들기 위해 월급으로 받은 당시의 거금을 주방장(오야봉)에게 주며, 3년 안에 모든 지식을 전수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했다.

그 덕분에 주방장이 가르쳐 주는 것은 날밤을 새우면서까지 연습을 했고, 미처 눈 비빌 사이도 없이 새벽 6시에 다시 출근하여 주방장이 해야 할 일을 시키지도 않았지만 가지런히 준비해 놓았다. 하지만 제 아무리 완벽하게 해 놔도 꼭 한 가지는 빠뜨리는 것이 있었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주방장의 고의라는 것을.

주방장은 잘 가르쳐 주다가도 정말 중요한 무언가를 넣어야 할 때는 그에게 다른 양념을 가져오라는 심부름을 시켰다. 그 사이 주방장은 비밀의 레시피를 넣었고 결국 강 대표는 하나를 배우기 위해 길게는 3개월까지도 걸렸다고 한다.

주방장의 머리속에 있는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3년 동안 빨래며 다리미질까지 안 해 본 것 없이 모두하며 고통을 감내한 강 대표. 초밥 명인이 꿈인 청년에게는 그마저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어느 날, 이런 노력들이 하나하나 쌓이면서 강희재라는 이름이 일식업계에서 입에서 입으로 오르내리는 이변이 생겼다. 본인 스스로도 ‘이만하면 충분히 됐다’라는 자신감이 붙기 시작할 무렵, 드디어 부푼 꿈을 안고 고향에 일식집을 차렸다. 하지만 보기 좋게 실패라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이유는 단 하나. “저의 입맛을 제가 맹신한 겁니다. 한마디로 참 많이 거만했죠.”

초라함을 깨닫기도 전에 그는 다시 스승님을 찾아 갔고, 그 앞에서 피같은 말씀을 들어야 했다고 한다. “실력은 있되 두서가 없다.”

그날부터 다시 9개월 동안, 스승님이 계시는 주방에 동상처럼 서서 ‘두서’를 배우기 시작했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아침 9시부터 밤 8시까지 로봇처럼 서서 주방의 흐름을 머리로 그려 나갔다. 그가 움직이는 것이라곤 눈치껏 살짝 양념통을 손으로 움직여주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그는 다시 두 번째를 시작으로 일곱 번째 가게까지 오픈했지만 신은 야속하게도 그의 편이 아니었다. 연이은 실패와 함께 했던 일곱 번의 아픔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아픈 지팡이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그는 무너지지 않았다. 7전 8기 불굴의 의지로 여덟 번째 일식집 지금의 ‘명인’을 운영하게 되었다. 밤 10시면 문 닫는 시간이지만 주로 저녁 9시 전이면 이미 재료 소진으로 문을 닫아야 하는 요즈음, 그렇지만 그는 자만하지 않는다.

강 대표는 간판이 명인이지 자신은 명인이 되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손사래를 쳤다.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는 초밥일진 모르지만 아직도 부족하여 한 달에 두 번은 전국을 다녀본다는 강희재 대표.

20여년이 되어보니 이제야 조금, 그때 못 본 걸 보는 것 같다며 수줍게 웃었다.

아직은 가르치는 재미보다 배우는 재미가 훨씬 크다는 강희재 대표. 그의 앞길에 건강과 행운이 함께 하길 기원한다.

▲ 강희재 명인

>> 인터뷰 일식집 ‘명인’ 강희재 대표

 

“그들은 신기해서 보지만, 나는 아직도 가슴이 떨린다”

 

■ 초밥이란 무엇인지 한 줄로 말한다면?

‘초밥은 생명줄이다’

■ 일식 요리사를 꿈꾸는 이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요즘은 셰프 전성시대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관심에 비해 화려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힘든 가운데도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꾸준히 하다보면 반드시 빛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 집 TV 옆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나는 아침마다 집을 나서기 전에 그 글귀를 읽어보고 나온다.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노력하면 꿈을 이룬다.’

노력하면 된다. 그 꿈이 어디까지인지는 모르지만 꿈이 있다면 반드시 그 꿈은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 고향을 위해 하고자 하는 꿈이 있다면?

우리 서산에는 타 도시에 비해 먹거리 특산물이 많다. 서산의 특산물을 이용한 ‘요리경연대회’를, 주말 ‘해미읍성’에서 개최하고 싶다. 과제도 서산에서 생산되는 특산품이어야 한다는 조건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경연대회 옆에는 지역 특산물 판매, 맛집 선정(부스)등 이로써 서산시의 홍보는 물론 위상까지도 더 높아질 것으로 확신한다.

최미향 기자 vmfms083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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