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쫓는 엄나무

김영선/부석면·시인 김영선l승인2018.04.27l수정2018.04.27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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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연 이틀 내리는 날. 주말을 맞아 이웃집 마실 가듯 지인 집에 놀러갔다. 하느님과 동기동창이던 아니던 비 온다는 핑계로 단합이나 해 보자는 심산이다.

다들 뜻이 통했는지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니 꽤나 사람 숫자가 늘었다. 손에는 나름대로 한 보따리씩 먹을 것을 싸들고 왔다. 시골에 뭐 특별한 것이 있을까. 개두릅, 멍이, 가죽나무순, 봄향기가 물씬 풍기는 봄나물이 한 상 그득하다.

여인네들은 두릅전을 부치고, 빠질 수 없는 것은 막걸리. 칼칼한 막걸리 한 사발씩 들이키니 세상만사 그렇게 좋을 수 없다.

노는 얘기를 하자는 건 아니고, 개두릅을 보니 가시 이야기를 해야겠다.

“보통 집 마당 한 켵에 엄나무를 심지만, 이 동네에선 집 근처엔 엄나무를 심지 않지. 그 이유를 혹 아는지?”

한 자리에서 세 사발이나 막걸리를 들이킬 정도로 호기 좋고 친환경을 고집하는 농부가 묻는다. 빙그레 미소로 답해 본다.

우리 주변에는 가시나무들이 꽤 많다. 한자리에 붙박여 움직일 수 없는 식물들은 자기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가시를 만든다. 하지만 가시달린 나무들은 대부분 겉모양과 달리 속살은 연약하며 독성이 없어 동물이나 사람에게 좋다.

‘가시’하면 떠오르는 나무들이 있다. 아까시나무와 찔레나무가 있고, 푸른 가시로 온몸을 싸고 있어서 생울타리로 많이 심는 탱자나무가 있다. 나무줄기에도 가지처럼 삐죽삐죽 가시를 뻗는 주엽나무 가시는 사뭇 위협적이다. 그렇지만 가시가 무섭기로 치자면 엄나무를 따를 게 없다.

가시 생김새가 하도 엄하게 보여 이름도 엄나무라 하지 않았다는가. 엄나무는 음나무로 불리기도 하는데 엄나무가 음나무로 바뀌어 불리게 되었을 것이다.

엄나무 가시는 줄기 껍질이 바뀐 것이라 불규칙하게 자라나는데 특히 어린 가지는 온통 가시로 빽빽하다. 대부분 새 가지나 어린 나무에 돋친 가시는 날카롭고 무성하지만 커가면서 가시는 차츰 없어진다.

“이른 봄에 돋아나는 엄나무 새싹은 대단히 맛있기 때문에 가시로 보호하지 않으면 온갖 산짐승의 밥이 되고 만다.”

천적들한테 시달림이 많거나 사람 손을 많이 탈수록 나무는 가시투성이로 자라난다. 무서운 가시로 무장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 시련이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골집들을 보면 가시 돋친 엄나무 가지를 문설주에 걸어 놓은 광경을 가끔 볼 수 있다. 그 거친 모양새가 귀신도 쫓을 만해서 일게다.

그러다보니 ‘귀신 쫓는 엄나무’가 되었고, 이게 문제가 되었다. 제삿날 조상이 들어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암튼 엄나무를 베고 나서 조상복이 들어왔다나 하는 그런 싱거운 이야기지만 다른 동네와는 사뭇 다른 해석이다.

대부분 마을은 가시 달린 엄나무를 대문 옆에 심어 집안으로 잡귀가 들어오는 것을 막고자 했다.

엄나무는 속껍질이 약재로 사용되며 그 맛은 쓰지만 성질이 평화롭다. 한약명으로는 해동피로 불린다. 허리가 아프거나 시릴 때, 혹은 풍습으로 인한 관절통, 습열로 인한 다리와 무릎의 통증 등에 사용하는 약재이며, 노인들의 퇴행성 관절질환에 자주 사용되는 약재다.

또한 일을 과다하게 하느라 몸을 많이 움직여서 생기는 젊은 사람들의 관절통에도 유용한 약재다. 그런 까닭에 닭을 요리할 때 인삼이나 황기 이상으로 많이 사용되는 식재료로써 약효는 물론이고 닭의 냄새를 제거하는 향신료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모두 닭 두 마리를 푹 삶아 엄나무의 효능을 톡톡히 보았다.

여인네들이 요즘 막 올라오기 시작한 어린 순을 잘라 끓는 물에 살짝 데친 다음 초고추장과 함께 내놓고, 엄나무순 부침개를 부치니 게눈 감추듯 입속으로 들어간다.

엄나무 순은 혹 먹고 남은 것이 있다면 간장을 달여 부어 장아찌로 만들어 두고 입맛이 없을 때 가끔 꺼내 먹으면 황후의 밥상이 부럽지 않다.

귀신을 쫒는 엄나무. 촌집에서 거리낌 없이 값진 약을 쓸 수 없으니 집 주변에 약이 되는 나무와 풀들을 심어놓고 때맞추어 음식으로 먹고 약으로도 먹었으니 엄나무는 분명 ‘귀신을 쫒는 나무’ 역할을 족히 했을 것이다.


김영선  noblesse055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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