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웅 편집국장

요즘 농촌 들녘은 모내기철을 맞아 준비에 부산한 모습이다.

우리 농촌에서 일 년 중 가장 바쁜 시기는 모내기철이다. 오죽 바빴으면 부엌의 부지깽이가 거들고 죽은 중이 꿈적이고 발등에 오줌 싼다고 했을까.

하지만 농촌엔 일손이 없다.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우니, 모내기철마다 시름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객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까지 불러 모으지만 생업에 눈코 뜰 새 없는 자식들인들 어디 간단한 일인가.

지금은 달력에 표시조차 되지 않지만, 매년 5월 넷째 화요일은 농사를 권장하고 증산을 도모하기 위해 정부가 주관하는 ‘권농의 날(勸農日)’이었다. 올해 달력으로 치면 5월22일인데, 석가탄신일과 같은 날이다.

권농일은 광복 후 일손이 부족한 농촌의 모내기를 지원하기 위해 시작됐다. 정부는 1959년까지 6월15일에 권농일 기념식을 치르다 모내기를 하는 시기가 차츰 빨라지자 1960년부터 1972년까지는 6월10일로 앞당겨 치렀다. 모내기 일손을 더 쉽게 지원하기 위해 1973년부터는 6월 첫째주 토요일로 권농일이 바뀌었고, 1984년부터는 5월 넷째주 화요일로 또다시 날짜를 앞당겼다.

권농일이 이처럼 정부가 주관하는 공식 기념일 가운데 하나였다. 학창 시절마다 모내기 봉사활동에 나섰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학생이나 군인까지 모두 동원되는 중요한 날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불과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아 그런 날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다. 물론 정부가 1996년 권농일을 폐지하고 대신 ‘농업인의 날(11월11일)’을 공식 기념일로 제정한 것이 결정적인 이유이지만, 우리 산업에서 농업의 비중이 줄고 먹을거리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 자체가 엷어진 것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대표적인 권농행사는 선농단 친경(親耕)을 꼽을 수 있다. 예전에 임금들은 봄기운이 완연한 경칩 이후 길한 해일(亥日)에 서울 동대문 밖 선농단에서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에게 제를 올리고 몸소 농사일을 했다고 한다.

선농단 친경은 일제강점기 직전까지 행해졌으며 우리가 즐겨 먹는 설렁탕이 선농제를 지내고 끓여 먹은 탕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왕비가 몸소 누에를 치고 고치를 거두던 일련의 의식인 친잠(親蠶)도 부녀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중요한 권농행사였다.

이처럼 농업을 만업의 근본으로 중시하는 역사적 바탕 위에서 우리 정부는 모내기철이 시작되는 무렵으로 권농일을 정해 농사를 장려했고, 때로는 대통령이 직접 농촌을 찾아 농민들과 함께 모내기를 하며 농업의 소중함을 강조했던 것이다.

이미 폐지된 권농일을 되살린다고 해서 우리 국민이 갑자기 농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고 농업의 위상이 높아질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런 기념일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이 땅에 농업이 필요한 이유를 온 국민이 알아야 하며 농업 수호에 대한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들녘에서는 모내기가 한창이다. 권농의 날은 사라졌지만 농촌일손돕기는 사라지면 안될 일이다. 이젠 우리의 기억 속에서마저 희미해져 가고 있지만, 농사일을 권장하고 먹을거리를 귀하게 여기던 상부상조의 정신적 유전자만은 변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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