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웅 나주투데이 편집국장

20년 넘게 지역에서 언론을 하다 보니 동네정치, 즉 지방정치의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가 많다. 직업의 특성상 일반인들 보다는, 그것도 속속들이 엿볼 기회가 많다. 1995년,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뽑는 완전 지방자치가 실시되던 해에 언론을 시작했으니까 지방자치의 산 증인이라 해도 별반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수차례에 거친 지방선거를 통해 내 눈에 비친 지역사회 지방자치 구성원들은 크게 두 집단으로 나뉘어 있었다. 동네정치에 대한 ‘무관심 집단’과 ‘적극적 집단’이다.

무관심 집단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 대한 애착이 미비하고 혹은 먹고 살기 바빠 정치에 관심이 없는, 지방자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신경을 거의 쓰지 않는 사람들이다. 즉 누가 당선되든 개의치 않은 사람들이다. 현재도 6.13지방선거가 시작돼 좋은 길목과 건물마다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예비후보자들의 현수막이 늘어섰지만 현수막에 적힌 이름 석 자가 생소한 사람이 절반을 훨씬 넘을 것이다. 예비후보자들이 내미는 명함을 무심코 받아보지만 이놈이 저놈 같고 저놈이 이놈 같다. 관심이 없기에 누가 시장 후보인지, 도의원 후보인지, 시의원 후보인지 조차 구분하지 못할 뿐더러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적극적 집단은 대부분이 지역사회 거주기간이 길고 거주지를 중심으로 주민 커뮤니티(community)에 밀착되어 있어서 지역사회 돌아가는 정보도 많이 알고 후보자들에 대한 정보도 나름 많다. 그들은 과거부터 현재로 이어지는 지역사회의 지방정치 특히 일정지역의 동네정치 계보를 줄줄 꿰고 있으며 나름의 판세분석까지 한다. 인정하건 말건 자부심도 대단해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까지 있다,

지금까지 지방정치는 대체로 후자에 의해 움직였다. 그들은 대부분 읍, 면, 동 기관사회단체 구성원이거나 시장, 도의원, 시의원 등 지방정치인과 개인적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평상시에는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유지’를 자처하며 거주지의 민원을 넣거나 마무리하고 로비를 통해서 숙원사업 등을 해결하기도 한다. 그들은 거주하는 동네의 소소한 대소사를 챙기며 행세한다. 그들은 공과(功過)를 떠나 우리 동네는 우리가 움직인다는 자긍심도 상당하다.

반면 무관심 집단은 지역사회 돌아가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다. ‘죽이 끓는지 밥이 끓는지’ 알바 아니다는, 누가 당선되든 나의 삶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선거 때가 되면 어떻게 알았는지 유무선 전화를 통한 여론조사가 걸려오고 길거리에서 후보자나 운동원들로부터 명함 등 홍보물을 받기도 하지만, 그때뿐이다. 다른 때는 아무도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동네정치에 대해 말해주지 않지만 선거 때가 되면 반짝 관심의 대상이 될 뿐이다.

얼핏 보면 세상 돌아가는 이치인 것도 같고 자연스런 역할분담 같기도 하다. 동네일에 관심이 더 많은 주민들이 동네를 건사하고, 동네일에 관심이 없는 주민들은 동네일을 잘 챙기는 이들의 ‘동네권력’을 은연 중 인정하는 방식으로 동네가 돌아가는 모양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무관심 집단이 적극적 집단보다 훨씬 수가 많지만 언제나 동네정치에서 ‘비주류’다. 먹고 살기 바빠 동네 대소사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보니 지역사회 돌아가는 일 등에 참여할 기회가 없거나 배제된다. 살고 있는 동네에 대한 관심이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무관심 집단이 숫자는 많지만 지역살림(동네살림)에서 숫자가 적은 적극적 집단의 ‘정치적 들러리’로 본의 아니게 전락한다.

여기에는 적극적 집단의 ‘팬덤(fandom)문화’ 현상(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의 문화현상)이 한몫을 하고 있다. 팬덤은 퍼내틱(fanatic) 의 팬(fan)과 ‘영지’, ‘나라’를 의미하는 덤(dom)의 합성어다 유명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한 덩어리로 묶어 부르는 개념이다. 이러한 개념이 정치와 접목되면서 정치 팬덤문화가 태동했다.

본격적인 정치 팬덤문화의 등장은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정치인 펜클럽이었다. 노사모의 지지가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의 탄생에 결정적 도움을 준 것은 물론이다. 또한 노사모라는 펜클럽 가입여부와 관계없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을 세간에서는 ‘노빠’라고 불렀다. 정치인의 성 뒤에 ‘빠’를 붙이는 빠문화의 시작이었다.

유권자들의 지지는 정치의 가장 기본적인 동력이다. 따라서 유권자들이 특정정치인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현상(정치 팬덤문화)도 그 자체로는 무척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동네정치에서 적극적 집단의 팬덤문화 현상은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동네권력’으로 치부되는 적극적 집단의 팬덤문화와 빠문화로 인한 특정후보에 대한 선악에 관계없는 묻지마 식 지지성향은 무관심 집단의 선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동네정치에서 무관심 집단은 다수를 차지하면서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우리 동네라는 공동체의식이 없어 그들의 의사를 대변할 후보나 정당에도 관심이 없다보니 투표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유인도 없다. 자의반타의반으로 적극적 집단의 부탁이나 지지성향에 따라 입후보자의 선악에 관계없이 무의미한 한 표를 내던지고 있는 상황이 선거 때마다 벌어지고 있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가 가장 좋은 후보를 선출하지 못하는 까닭은 선거가 이성의 제도가 아니라 감성의 제도이기 때문이다. 지방선거, 즉 동네선거에서 주민들은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으므로 합리적 선택을 할 것 같지만 비합리적 선택이 이뤄지는 경우가 더 많다. 적극적 집단의 팬덤문화와 빠문화가 무관심 집단의 눈을 흐리게 함으로써 부적절한 후보가 선택되는 경우가 많다.

공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을 가진 후보가 선출되기보다는 적극적 집단의 특정인에 대한 팬덤이 무관심 집단의 선택에 영향을 줌으로써 ‘좋은 후보’를 선택하기보다는 ‘적극적 집단이 선호하는 후보’가 ‘좋은 후보’로 각색되어 선택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6.13지방선거를 기점으로 동네정치에서 적극적 집단의 팬덤문화와 빠문화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 이와 함께 무관심 집단의 동네정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해야 한다. 지방정치, 동네정치가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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