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류종철

평창겨울철올림픽은 극적인 반전을 거듭하여 국민들에게 커다란 감흥을 준 의미 있는 대회다. 개최 불과 얼마 전까지도 한반도를 둘러싼 환경은 몇몇 국가가 대회 보이콧을 거론할 정도로 춥고 암울했다. 이 아름다운 나라에서 참혹한 전쟁이 벌어질 지도 모르는 상황에 언감생심 스포츠 행사는 국민의 관심 밖이었고 어찌 할 수도 없는 계륵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 먹구름이 비록 잠시일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사라지고 평화의 서광이 한반도를 감싸는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일부 수긍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외교는 오직 결과로써 평가되는 다양한 가능성의 예술이다.

스포츠는 과정의 예술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희생과 양보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투혼 등 힘든 과정을 극복한 모든 선수들의 노력과 불굴의 투지 그리고 희생을 알기에 메달의 색깔이나 순위 등 결과보다는 그 과정의 아름다움에 찬사를 보내고 함께 기뻐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이런 흥분과 감동은 패럴림픽에서도 이어져 장애를 극복한 많은 선수들의 긍정적 사고와 불굴의 노력이 우리를 감동시키고 있다. 그들은 우리와 다른 보살핌의 대상이 아니라 같은 생활을 할 수 있는 우리의 이웃 동반자들임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

이런 과정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스포츠에 결과를 떠나 우리를 아쉽게 하는 경우가 있다. 실수나 과정의 시행착오가 화려한 성공과 영광의 그늘아래 잊혀 질 수도 있으니 가치관의 혼돈을 바로잡기 위해 활발한 토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특히 김 보름 선수의 여자 3,000m 팀 추월 경기에서 팀워크를 무시한 왕따 사건은 뿌리 깊은 파벌문화와 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 고스란히 드러나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특정 선수에 대한 무차별적인 SNS 테러 또한 그의 잘잘못을 떠나 집단 이지메의 뒤떨어진 문화를 보여주는 것 같아 역시 마음이 편하질 않다.

나는 이 승훈 선수가 좋다. 그는 쇼트트랙에서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종목을 바꾸고 8년 전 올림픽에서 혜성과 같이 나타나 빙속의 마라톤인 10,000M에서 우승을 일구어 낸 우리의 영웅이다. 서양 선수들의 우람한 체구들 속에서 가녀린 몸매에서 뿜어 나오는 강인한 투지와 노력으로, 우리같이 신체적인 핸디캡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정상에 설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그가 더욱 영웅인 것은 금메달 획득 4년 후 다시 도전한 올림픽에서 아쉽게 4위를 한 후 여론의 관심에서 사라지고 있었음에도, 또한 이미 성취한 영광과 명성이 대단함에도 만족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은 불굴의 의지를 보여 주었다는 것이다. 나는 금메달을 딴 선수가 다음 대회에서 메달 획득에 실패한 후 다시 8년 만에 다시 도전하는 그 과정을 존경한다. 그는 비록 이번에도 10,000M에서 메달 획득에 실패하였지만 이미 그는 결과를 떠나 스포츠의 참 의미를 우리에게 보여 준 진정한 영웅이다.

그의 위대함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는 않지만 또 다른 종목 메스스타트에서의 과정은 그의 금메달이라는 결과에 영 개운하지 않은 뒷맛을 남긴다. 정 재원, 그는 약관 만 16세에 메스스타트 결승에 오른다. 그는 선배 이승훈을 위해(물론 정확한 분석은 아닐지 모르나 정황으로는 거의 모든 국민들이 알고 있다) 개인을 희생한다. 소위 페이스메이커, 앞장서서 온 몸으로 바람의 저항을 받으며 선두를 이끌어 다른 선수들의 오버 페이스를 유도한 후 장렬히 본인을 희생한다. 이 작전은 단체전에서는 전술적 가치가 있다. 마라톤 등 장거리 종목에서 에이스의 승리를 위해 희생되는 사석과 같은 존재로 정 재원은 이승훈의 우승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면서 사석으로 국가에 헌신한 셈이다. 그것을 알기에 이승훈은 경기 후 승리의 인터뷰에서 정 재원에게 많은 고마움을 표했다. 그런 그의 솔직함과 후배의 희생에 대한 고마움, 배려의 표현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정 재원의 얼굴에서 발견되는 진한 아쉬움에 나의 마음이 편하지 않다. 국가를 위한 개인의 희생은 국가제일주의 전제주의 사회에서 추앙받던 가치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나 출생신고 전에 의무가 강요 되던 시대의 극복해야 될 유산이다. ‘국가의 행복은 개인의 행복의 총합이다’라는 개념은 국민 개개인의 권리와 인권을 중하게 여기는 문화 선진국의 확립된 정의다.

어느 누구도 국가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고 강요할 수는 없다. 그 것은 자율에 의한 결과물이어야지 강요될 의무는 절대 아니다. 개개인의 행복추구권은 국가를 위해 양보 되거나 강요될 수는 없다. 정 재원선수 자신은 그에게는 어느 누구보다도 존귀한 존재로, 타인의 행복을 위해 희생을 강요받을 수 없다.

이승훈 선수를 존경하는 사람으로 그의 노력의 결과물, 그리고 또 다른 도전에 존경과 감사를 보낸다. 그리고 희생한 후배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의 표현도 사랑한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 결정권과 개개인의 인권이 존중받는 사회,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아름다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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