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 까지 배워야 하는 게 사람이지”

하루하루 즐거운 학교생활

하나하나 챙겨주는 학교친구들 고마워

▲ 81세에 중학생이 된 김복환 할아버지

“어려서 왜정시대에 초등학교를 다니다 중퇴했던 게 얼마나 서럽고 아쉬웠던지... 배우는 어려움은 잠깐이지만 못 배운 설움은 일평생 간다는 말이 사실이더군. 내가 배우지 못한 설움이 얼마나 컸는지 이 나이에 학교를 다시 다닐 생각을 했겠어.”

인지면 산동리 김복환(81) 할아버지는 올해로 중학교 2학년이 됐다.

지난 2일 부석중학교 2학년 1반으로 복학한 김복환 할아버지는 어린시절 농업에 종사하던 아버지의 일손을 돕기 위해 인지국민학교(현재의 초등학교) 졸업 후 진학을 포기했다. 당시는 일제의 통치 속에 일손 부족 등을 이유로 학업보다 생계유지가 어렵던 시기였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생계유지를 위해 부모를 도와 빠른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일부 학생들의 경우에만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대학을 졸업하는 이들은 더 희박했다.

“친구들 중에 대학을 졸업한 이가 있었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라. 똑 같은 사람이지만 학교를 어디까지 다녔는지에서 많은 것이 엇갈렸지.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지금까지 평생을 생각해왔어. 학교를 다니고 뭔가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 김복환 할아버지 방 한켠에 쓰여진 글.

김복환 할아버지는 그렇게 10대를 보내고 21세가 되던 1955년에 부석중학교 1학년에 입학했다. 당시에는 시기 상 만학도가 흔했지만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하나만으로 부석중학교에 입학해 그렇게 소망하던 학교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김복환 할아버지는 당시를 회상하며 “즐거웠다”고 말했다.

오전, 오후 매일 같이 논과 밭에 나가 일하면서도 지친 몸을 이끌고 호롱불 아래서 한문공부를 하던 그였기에 하루종일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그 때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시간이었다고.

하지만 김복환 할아버지에게 허락된 시간은 1년 정도 뿐이었다. 갑작스럽게 나온 입대 영장이 그의 발목을 붙들었다. 입대를 미루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 봤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입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고 약 3년간의 복무를 마치고 전역을 해야만 했다.

 

“늙으신 부모님 생각에 포기한 학업”

 

“전역하고 다시 학교를 다니려고 생각했었지. 하지만 늙고 쇄약해진 부모님이 농사일을 하실 걱정에 학교를 다니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어.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결혼도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책임감이 생기고... 진학에 대한 꿈은 뒤로 미뤄둘 수밖에 없었지.”

비록 진학에 대한 꿈은 미뤄뒀지만 저녁시간이면 쉬지 않고 공부했다. 한자와 한글을 공부했다. 하지만 독학만으로는 김복환 할아버지의 학업에 대한 목마름은 가시지 않았다. 그렇게 김복환 할아버지의 55년이 흘렀다.

그러던 중 김복환 할아버지는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이루지 못한 학업에 대한 꿈을 이루고자 진학을 결심한 노인의 이야기를 보며 자신 역시 잊고 지냈던 꿈을 다시 꾸기 시작했다.

김복환 할아버지는 복학에 대한 생각이 들자 곧바로 행동에 옮겼다. 어린시절 재학했던 부석중학교에 연락을 취해 사정을 설명했고 입학이 가능할지를 물었다. ‘늙은 나이에 학교를 다니며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을까’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김복환 할아버지의 열정이 앞서 있었다.

“학교에서 복학을 흔쾌히 승낙 해줬어. 이런 상황을 아들(김길성)에게 의논하니 오히려 발 벗고 나서 복학준비를 해주더군. 이제 됐다 싶었지. 60여년 만에 꿈꿔 오던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된거야.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결정을 했는지 몰라. 마을사람들과 관광 갈 때 노래만 시켜도 떨렸던 나지만 하나도 떨리지 않았거든.”(웃음)

 

“다시 찾아온 즐거움”

▲ 반 친구들의 이름을 써 놓은 공책을 찾는 김복환 할아버지.

김복환 할아버지는 나는 듯이 기뻤다고.

교복도 맞추고 책가방도 사고 학교갈 준비에 신이 났다. 남들이 보기에는 구부정한 허리에 가방을 메고 지팡이를 집고 등교하는 모습이 우습게 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늦은 나이에도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있어 실천하겠다는 의지가 더 값지다고 생각했다.

수 십년 만에 다시 밟은 교정은 새로웠다. 손주벌도 안되는 학생들과 어울려 강당에 모였고. 2학년에 복학했지만 입학생을 대표해 단상에서 연설도 했다.

“젊은 시절 부석중학교를 다니며 느꼈던 즐거움을 다시 찾은 기분이야. 더 기쁜 건 학생들이 내게 잘해준다는 거야. 늙은이라고 외면하지 않고 힘든 일이 있으면 도와주고 알려주고 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먼저 인사하며 다가오지. 이렇게 착한 아이들이 있나 싶어.”

이런 그에게 요즘 작은 숙제가 하나 생겼다. 반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외워야 한다는 것.

공책 한 켠에 학생들의 이름을 빼곡하게 적어놓고 시간이 날 때면 들여다보고 있다. 혹시라도 이름을 못 외우거나 몰라서 반 친구들이 서운해 하지 않을까하는 걱정에서 였다.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어제는 말이지 하굣길 날씨가 추웠는데 택시가 늦게 도착하는 거야. 어디에 있어야 할지 몰라 운동장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간월도 사는 반 친구인 김혜빈이가 쪼르르 달려와서 따뜻한 건물 안으로 안내해 주더라고. 고맙고 또 고마웠지.”

 

또 다시 꿈을 꾸다

 

“수십 년을 공부하고 싶은 마음만 끌어안고 살다가 이제야 소원을 풀었어.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야. 난 배우고 있고 앞으로도 공부할거야. 사람이란 게 태어나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는 거거든. 앞으로 욕심을 부리자면 대학생이 되고 싶다는 게 전부야.”

김복환 할아버지는 하루하루가 기대된다. 매일 새로운 수업들이 기대되고 반 친구들, 부석중학교 친구들과의 시간이 기대된다. 특히 시간이 허락한다면 고등학교, 대학교에도 진학하고 싶은 꿈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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