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록 한여현선생 기념사업회(회장 권오태)는 12월 5일 서산문화회관 소공연장에서 ‘호산록의 재조명’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이번 학술대회는 총 2부로 구성되었다. 식전행사로 조혜경 가야금 연주가 있은 후 1부는 이근호(충남대학교 국사학과 교수)의 개회사, 권오태 호산록 한여현 선생 기념사업회 회장의 인사말, 이완섭 시장의 격려사, 김옥수 충남도의회 의원의 축사로 진행됐다.권오태 회장은 “서산 지역의 훌륭한 문화유산인 「호산록」 학술대회를 개최하게 된 것은 우리 지역의 자랑거리이다. 우리 지역의 역사문화의 가치를 계승 발전
서산문화원(원장 편세환)은 9월 22일(금) 서산문화원에서 「서산지역 성리학과 정신보의 연관성 고찰」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세미나에는 이완섭 서산시장, 성일종 국회의원, 김맹호 서산시의회의장을 비롯해 서산정씨총진회, 정인경기념사업회, 향토문화연구회원 등 서산시민 약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진행되었다.서산지역에는 서산정씨의 원조인 정신보와 그의 아들인 정인경에 관한 유적이 관내에 분포되어있으며, 이에 따라 서산문화원은 서산지역의 성리학과 정신보 부자의 연관성 고찰을 통해 앞으로의 역사적 활용방안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논의
서산시문화도시사업단 산하기관인 원도심기록보관소 남양여관에서 열린 인문학 강좌 ‘스산학’이 참가자들의 지대한 관심 속에 진행됐다. 서산역사문화연구소 한기홍 소장의 매주 화요일 강의로 진행된 ‘스산학’은 낙토서산과 지역문화정체성, 상산삼매와 가야산의 폐사지, 호산록과 우리고장 서산, 안흥정과 굴포운하, 문화유적답사 순서로 총 5강으로 진행됐다.어릴적 친구들과 만나던 젓가락바위가 사실은 큰절의 당간지주였고, 무심코 걸어 다니던 길이 엄마 아빠 어릴적 물고기 잡던 냇가를 덮은 길이었다는 등 내 생활 주변의 이야기로 참가자들에게 서산의 역사
지난 10월 15일 서산문화원에서 개최된 임시총회에서 편세환 현 부원장이 제9대 서산문화원장에 당선되었다. 편 부원장은 원장선거에서 전체 71표 중 41표를 얻어 32표에 그친 한기홍 후보를 누르고 당선을 확정지었다.편세환 당선자는 “교육중심의 문화사업과 감성을 다스리는 인문학을 통한 인성교육을 강화하고 나아가 문화원 직원, 임원 등 모든 문화가족간의 적극적인 소통이 가능한 문화공간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아울러 지역의 다양한 향토문화를 연구 조사하여 전통문화를 활용·계승·발전시키는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편세환 부원장은 공무
충남 농공단지가 ‘2019 충남농공단지 경쟁력강화 워크숍’을 9월 6~7일 천안 상록호텔에서 개최된다. 양일간 열릴 이번 충남농공단지 워크숍은 국가산업단지와 일반산업단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농공단지의 경쟁력을 높이고 입주기업들의 성장과 발전에 대한 방안을 모색하고자 마련되는 자리다. 한편 농공단지는 지방자치단체가 스스로 재정을 확보하는 곳으로 지역의 소득을 높여 도시와 농어촌의 격차를 줄이는, 경제균형발전으로 조성된 공업단지다. 무엇보다 지역 주민이 현재 살고 있는 농어촌 지역에서 취업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워크숍 개최에 앞
【인터뷰】향토사학자 한기홍 선생 #프롤로그“문화란 인간 행위의 가치를 비준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문화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으면 존재가치 이외의 아무런 의미도 없다. 문화의 영역에는 반문화는 존재하지만 비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비문화는 자연 그자체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향토사학자 한기홍 선생(56).서양과 동양에서 사용되고 있는 문화의 개념은 자연과 대립되는 개념이 지배적이다.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역사의 산물 이것이 바로 문화다. 이처럼 인간의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되어 온 문화. 더위가 8월을 장식하던 지난 수요일, 기자
취허당(聚虛堂) 한기홍의 서산갯마을 전번 호에서 서산의 시장과 그 변화상에 대하여 언급(시장의 변화와 추억의 가게들-1)했다. 금번에는 한 때 서산의 명동거리라고 불렸던 중앙통(번화1로, 번화2로) 일원의 유명한 가게들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1990년대의 중앙통은 서산에서 가장 화려한 지역이었다. 당시의 유명메이커 의류 가게가 즐비했다. 서산의 핵심 상권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상권이 이동해 한 집 건너 한 집이 빈가게일 정도이지만 약 20년 전에는 이곳이 소위 핫플레이스였던 것이다. 이에 역사와 전통이 있는 중앙통 가게들에 대
현재 서산의 대표적인 전통시장은 동부시장이다. 그런데 동부시장이 형성되기 이전에 구장뻘(구시장)이라 하여 지금의 번화로 한가운데(현 윤은아트홀 건너 서해주차장 일원) 시장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서산읍성 안에 시장이 있었다는 사실은 거의 모르고 있다. 필자가 쓴 「서산 원도심 이야기」를 바탕으로 2회에 걸쳐서 서산의 시장과 추억의 가게들에 대하여 연재하며 서산 원도심의 지난 추억을 되살려보고자 한다. 서산에는 두 곳의 성터가 있었다. 하나는 현재 서산초등학교 자리에 위치한 활성과 다른 하나는
취허당(聚虛堂) 한기홍의 서산갯마을 조운선의 대표적 난행처로 알려진 곳인 안흥량(安興梁)은 좁게는 안흥 앞바다를 일컫는 말이지만 넓게는 태안군에 접한 바다 전체를 의미한다. 『조선왕조실록』에 안흥량(安興梁) 400리 뱃길 이라는 구절로 미루어 보건데 일반적인 견지에서는 안면도 영목 앞바다에서 방이도 앞바다를 넘어 대산의 황금산 앞까지의 넓은 바다를 일컬었다.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는 안흥량(安興梁), 명량(鳴梁), 노량(露梁) 사량(蛇粱), 견내량(見乃梁), 칠천량(漆川梁), 화량(花梁) 등 량(梁)자가 들어가는 익숙한 지명이 많다
취허당(聚虛堂) 한기홍의 서산갯마을 순성진(蓴城鎭)은 충남 서산시 팔봉면 진장리에 소재한다. 지금은 폐교되었지만 구) 고성초등학교 뒤편의 야산에 있는 골프연습장 주변에 위치해 있다.순성진은 조선 초기인 태조 6년(1397)에 지방의 군제개편에 따라 설치되었다. 서산과 태안지역의 지정학정 중요성에 따라서 서해안 방어를 위한 목적으로 설치되었으며 태안반도가 그만큼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사례이기도 하다. 한양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황해도와 충청도는 「⊃」 형태로 서해 바다쪽에서 들어오는 입구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황해
취허당(聚虛堂) 한기홍의 서산갯마을 기록을 통해서 확인해보면 서산에는 2곳의 봉화대가 있었다. 한곳은 서산시내 주산(일명 북주산, 부춘산, 봉화산)에 있었던 봉화대이고 다른 한곳은 부석 도비산 정상에 있었던 봉화대이다.봉화는 옛날에 널리 쓰인 통신 수단이다. 요즘의 유무선 통신수단으로 유전전화와 핸드폰 같은 역할을 수행하였다. 우리는 이를 봉수, 봉화, 봉수대, 봉화대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부른다. 봉화의 신호체계는 밤에는 횃불을 피워 불빛으로 알리고, 낮에는 연기로써 이쪽 산봉우리봉화대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저쪽 산봉우리 봉화대로
가야산을 중심으로 하는 내포지역은 항상 사람과 물류가 북적였다. 중국과 거리도 가깝고, 남부지방과 북부지방을 오고가는 항로의 중간 기착지인데다, 과거에 연안 항로가 발달하였기 때문에 오고 가는 사람들로 항상 붐볐다. 이러한 자연지리적 특성으로 인하여 이곳에서는 새로운 정보도 손쉽게 접할 수 있었다. 이런 환경은 가야산을 중심으로 하는 내포지역에 자연스럽게 진취적이고 역동적인 다양한 기운을 불어넣었다.삼국시대에는 불교가 정치ㆍ사회ㆍ문화를 주도했다. 고려조에는 미륵신앙이 들어와 민초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했다. 여말선초에는 유학(성리학)이
『서산 원도심 이야기』를 발간하는 과정에서 파악한 서산의 화교이야기를 3회에 걸쳐서 게재 합니다. 서산에서의 화교들의 삶 또한 우리고장 서산의 중요한 역사의 한 단면입니다. 한국사가 중국사와 긴밀한 관련 속에서 이루어지듯이 서산의 향토사 속에도 화교들의 삶이 있었음을 본고를 통해 알리고자 합니다. -서산 화교의 교육서산화교소학교가 읍내동 239-7번지에 개교하여 1970년대 말까지 운영된다. 지금도 화교학교 자리는 읍내동 진국집 뒤편에 운동장으로 사용되던 곳이 일부 남아있다.화교학교를 통해 화교사회에서 2, 3세대에 대한 교육에 큰
취허당(聚虛堂) 한기홍의 서산갯마을 『서산 원도심 이야기』를 발간하는 과정에서 파악한 서산의 화교이야기를 3회에 걸쳐서 게재하고자 합니다. 서산에서의 화교들의 삶 또한 우리고장 서산의 중요한 역사의 한 단면입니다. 한국사가 중국사와 긴밀한 관련 속에서 이루어지듯이 서산의 향토사 속에도 화교들의 삶이 있었음을 본고를 통해 알리고자 합니다. -서산 화교거리의 형성서산에 화교가 이주하여 정착하는 과정에는 육로와 바다를 통해 들어오게 된다. 중국의 산둥반도는 한반도에 가장 인접한 지역이다. 특히 우리 서산과는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밀접한
취허당(聚虛堂) 한기홍의 서산갯마을 서산 원도심 이야기를 발간하는 과정에서 파악한 서산의 화교이야기를 3회에 걸쳐서 게재하고자 합니다. 서산에서의 화교들의 삶 또한 우리고장 서산의 중요한 역사의 한 단면입니다. 한국사가 중국사와 긴밀한 관련속에서 이루어지듯이 서산의 향토사 속에도 화교들의 삶이 있었음을 적시하여 알리고자 합니다. -서산의 화교서산에는 작은 차이나타운이 있었다. 흔히 차이나타운은 한 도시에 중국인들이 모여 사는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차이나타운에 모여 사는 중국인들을 화교라 부른다. 화교란 말에는 중국의 이주민이란 의
취허당(聚虛堂) 한기홍의 서산갯마을 서산의 지명 중에서 성터와 관련된 지명이 활성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활성동(活城洞)이 있었는데 지금은 동문2동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그러니까 동문2동(구 활성동)의 어원은 활성에서 비롯된 것이다.활성은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 의하면 통일신라시대에 축성된 토성(土城)이다. 조선환여승람 고적조(古跡條)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活城(활성)在瑞山面市場南端(재서산면시장남단)高三尺袤八十間(고삼척무팔십간)諺傳新羅時農城(언전신라시농성)『
취허당(聚虛堂) 한기홍의 서산갯마을 ② -태조시대(1392~1398)태조 4년에 경상도 조운선 16척의 난파사고로 인하여 지중추원사 최유경을 시켜 운하개착 가능지를 파악토록 명 하였으나 땅이 높고 굳은 돌이 있어 공사가 어려움을 피력함으로 인하여 운하개착 공사에 돌입하지 못하고 포기한다.이어서 남은에게 명하여 운하개착 가능지를 재차 탐색하게 하였으나 남은 역시도 땅 속의 돌로 인하여 공사가 불가능하다는 보고하기에 이른다. 이에 조정에서 굴포운하(堀浦運河)의 개착 여부를 논의하였으나 불가능한 것으로
① 서산시와 태안군에 걸쳐 있는 태안반도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리아스식 해안으로 육지부가 바다 깊숙이 들어가 곶(串)을 이루고 있다. 충청남도의 서북단 끝부분에 위치해 있으며 안면도 고남, 안흥, 파도리, 구름포, 소근진, 학암포, 내리 및 서산시 대산읍 독곶의 황금산 등은 부채살처럼 펼쳐진 금북정맥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곳이다.그리고 지금은 안면도가 육지와 연륙된 섬이지만 과거에는 뭍이었던 곳으로 안면곶이었다. 육지였던 곶에 인공적으로 운하를 개착하여 지금의 태안군 안면읍 창기리와 남면 신온리 사이에 바닷물이 통수됨으로써 섬이 된 것
취허당(聚虛堂) 한기홍의 서산갯마을 흥인교(興仁橋)는 서산시 부석면 가사리와 태안군 태안읍 인평리를 이어주는 다리이다. 일명 ‘흔진다리’라 일컬어진다. 지금은 서산과 태안간의 간선도로가 인지면 차리와 팔봉면 어송리, 진장리를 거쳐서 태안으로 이어지지만 옛날에는 달랐다. 이 길은 과거의 서산과 태안을 이어주는 고로(古路)로써 서산군청-여기정-흥인교-태안군청으로 이어지는 제일 큰 길이었다.흥인교의 위치는 현 서산시와 태안군의 경계 지점에 해당한다. 그런데 일반인들은 지금의 서산과 태안을 이어주는 간선도로 위에
취허당(聚虛堂) 한기홍의 서산갯마을 가야산은 내포지방의 중심에 있는 서 있는 어머니와 같은 산이다. 차령산맥에서 떨어져 나온 금북정맥이 홍성의 월산과 예산 덕숭산을 거쳐 가야산 주봉을 만들고 그 지맥이 북서쪽으로 흘러 태안의 지령산에 이른다. 이렇듯 가야산은 내포의 대표적인 산이라 할 수 있고 가야산의 동서남북에 서산시, 당진시, 홍성군, 예산군 등이 위치해 있다.내포지역의 지리적 특성은 비산비야(非山非野)라 할 수 있다. 산도 아니고 들도 아니라는 뜻의 이 말은 내포를 한마디로 설명해 주고 있다. 가야산은 표고 670미터 정도의